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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트, 사랑해

Mass Effect 2014. 7. 5. 15:28
"셰퍼드, 나도 이제 짝을 찾을 때가 된것 같다."

그런트의 말은 시끌벅적한 주변의 소음에 묻혀 셰퍼드에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린콜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은 희석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도수가 높아 셰퍼드는 취기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런트의 퇴원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는 렉스를 비롯한 알라라크 컴퍼니의 크로건 병사들이 초대되어 제법 요란한 것이 되어있었다. 흥분한 크로건들이 아파트 기물을 파손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주의를 기울이던 셰퍼드도 한잔두잔 술이 들어가자 어느새 느슨한 표정으로 벽난로에 던져지는 술병따위에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우리 그런트 정도면 여자들이 줄을 설 거야!"

셰퍼드는 킬킬거리며 그런트의 등을 두들겼다. 그런트는 셰퍼드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며 그릉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셰퍼드가 내 상대였으면 좋겠다."

순간, 이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거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 저, 그런트.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방금 뭐라고?"

아주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셰퍼드 주위의 손님들은 마치 아무것도 못들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어 자신들의 화제로 돌아가 억지로 정적을 깨트렸지만 셰퍼드는 모두의 귀가 둘의 대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트는 그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한 듯 당당한 태도로 직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얼드넛 바카라가 그랬다. 크로건은 가장 강한 상대와 짝을 이룬다고. 내가 아는 여성 중 가장 강한 건 내 배틀마스터인 셰퍼드 당신이다. 그러니 내 짝은 셰퍼드여야 한다."

오, 바카라. 좋은 정보 감사해요. 너무 고마워서 꽃이라도 보내드리고 싶네요.
셰퍼드는 말문이 막힌 채 빠르게 머릿속을 굴렸다. 그런트는 답지않게 셰퍼드의 눈치를 보는 태도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그녀가 그런트한테 청혼을 받은...아니, 크로건은 결혼문화가 없다지만 말하자면 그 비슷한 상황인 거지? 셰퍼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침만 꿀꺽 삼켰다.
주위는 다시 슬그머니 조용해진 채 다들 눈만 굴려가며 셰퍼드와 그런트를 흘끗거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속닥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리아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방금 그런트가...맞으니까 조용히 해요, 탈리. 하지만 크로건은 파충ㄹ...쉿!

"그런트, 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다니 무척 기쁜데...혹시 오키어의 탱크에 종족간의 교합에 관한 정보는 없었어? 그...번식이나 그런..."

취기가 확 달아나는 바람에 때이른 숙취가 오는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셰퍼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탱크의 지식엔 제노페이지에 관한 내용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투창카에서 아사리와 함께 있는 크로건을 봤다."

차르. 일리움의 푸른 장미 운운하며 시를 읊던 크로건을 떠올린 셰퍼드는 기어코 이마를 감싸쥐었다.
주변의 쑥덕임이 커져갈 무렵,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렉스가 셰퍼드를 위해 나섰다.

"그런트, 크로건과 인간 사이엔 번식이 불가능하다. 아사리는 특수한 경우야. 그 경우에 나오는 자식은 크로건이 아니고."

셰퍼드가 그런트와 함께 트레셔 모우를 쓰러트린 후 그들에게 번식 제의가 전해졌다는 소식에(셰퍼드까지 포함해서!) 웃어넘겼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렉스는 비죽 웃었다. 물론, 셰퍼드는 크로건의 기준으로도 모자람 없는 훌륭한 전사였다. 다만 그 사실이 종족차를 뛰어넘게 해주진 못했다.
그런트는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되자 충격을 받은듯 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셰퍼드?"

어쩌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셰퍼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렉스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야. 그런트."

"그럼 나는 최고의 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인가?"

그런트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섭섭함과 아쉬움에 셰퍼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뻔 했지만 가까스로 충동을 억제한 그녀는 함께 안타까워 하며 대답했다.

"너무 실망하지마, 그런트. 누가 뭐래도 넌 크로건 최고의 전사잖아. 너에게 걸맞는 짝이 분명히 있을 거야."

렉스가 다가와 셰퍼드가 건네는 린콜 잔을 받아 마시며 옆자리에 자리잡았다.

"어쩐지, 부족 여성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있다 했더니 그런 거였군."

심지어는 오는 여자까지 거절했단 말이지...셰퍼드는 멋쩍은 기분에 볼을 긁적였다.
그런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손님들은 다시 관심을 돌려 각자의 화제로 돌아갔다. 이따금 그들을 흘끔거리며 속삭이는 이들도 있었다.

"있잖아, 그런트. 날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인간만 아니었어도 기꺼이 네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야. 정말 유감이야."

내가 아사리가 아닌게 그나마 다행이군, 하는 내면의 속삭임을 속으로 삼킨 셰퍼드는 최대한 상냥한 태도로 그런트를 다독였다.

"...그 말, 진심인가?"

그런트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어느정도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았다. 셰퍼드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런트. 넌 내가 아는 크로건 중에서 가장 멋있고 훌륭한 전사야."

옆에서 렉스가 뭐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셰퍼드는 한귀로 흘려들었다. 그런트는 그 말을 잠시 곱씹더니 이내 만족스럽게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기다려, 셰퍼드. 내가 머지 않아 내게 맞는 짝을 찾아서 소개해주겠다. 내 자식은 반드시 너보다 훌륭한 전사로 키우겠어."

확실히 사랑 고백 같은 건 아니었다보니 회복이 어렵지 않은듯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셰퍼드는 저 너머에서 그녀를 보며 키득거리고 있는 노르망디 선원들을 보자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승선하면 기필코 조커와는 마주치지 말아야겠단 다짐을 하며, 셰퍼드는 렉스와 그런트에게 린콜 병을 기울였다.

*

그런트 귀여워 사랑해 그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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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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