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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 10 추위

Mass Effect 2014. 9. 3. 10:24
C님이 던져준 소재로 솊개러스 쓰려던게 걍 노르망디 일상물이 돼버렸다 어째설까...

네타 없는 ME1 배경. 뻘함 주의.



*


"조커, 다시 한번 확인해줘. 몇 도라고?"

방한복 지퍼를 목끝까지 끌어올리며 묻는 셰퍼드의 질문에 통신기 너머로 조커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하 20도 맞습니다, 커맨더. 스키 타기 딱 좋은 지형인 것 같네요."

"다음에 꼭 함께 데려가줄게. 잊지 말라고."

킬킬대는 조커의 웃음을 한귀로 흘리며 통신기를 끈 셰퍼드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마코 문을 열고 올라 타려는데 어쩐지 등뒤가 당기는 느낌에 돌아서니 질린 표정의 두 외계인이 어울리지 않게 애처로운 시선을 셰퍼드에게 보내고 있었다.

"커맨더,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투리안은 추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 생김새를 보면 알겠지만, 크로건은 변온동물이야. 이런 곳에선 활동하기 힘들다고."

아머 헬멧 너머로 눈만 보이는 개러스와 렉스의 눈빛은 셰퍼드의 동정을 구하고 있었지만 셰퍼드는 그 간절한 눈빛을 못 본척 고개를 돌렸다.

"둘 다 그만. 영하 25도는 어떤 종족에게든 힘든 온도인 거 알지? 제비뽑기는 공정하다고. 자신의 불운을 탓해."

난 제비 뽑을 기회라도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린 셰퍼드는 뒤에서 들리는 앓는 소리를 무시한 채 마코 조종석에 자리잡았다. 지형이 험난한 곳이라 그나마 멀미를 덜하는 두 사람이 뽑힌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방한복으로 꽁꽁 둘러싼 세 사람을 태운 마코는 잠시 뒤 강하지점에 접근하자 가차없이 그들을 떨어트렸고, 마코의 단단한 장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추위와 눈보라에 오래 지나지 않아 마코 안의 세 사람은 덜덜 떨리는 이를 부딪혀야 했다. 목표지점은 멀지 않았다. 게스 신호가 나오는 기지를 추적해 신호기를 파괴하고 돌아오면 끝이었다. 조커가 불쌍한 스쿼드 멤버를 위해 최대한 신호범위를 추적해 강하지점을 골랐으니 산등성이 두어개만 타넘으면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마코는, 난방장치 같은 건, 없는 겁니까?"

"그런, 세심한, 장치가, 있을 거였으면, 충격완화장치부터, 있지 않겠어?"

어차피 두터운 아머 때문에 소용도 없을 텐데 뒷좌석에서 최대한 서로 붙어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두 외계인의 모습에 셰퍼드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빨리 도착하려는 마음에 전속력으로 속도를 냈더니 평소의 배로 흔들리는 것 같았다. 골이 울리는 느낌이었지만 셰퍼드는 몇번의 조종을 거친 뒤 제법 적응한 바였다. 추위로 떠는 와중에도 투덜거리는 소리가 몇마디 들려왔지만 셰퍼드는 그 또한 적응한 지 오래였다.
산등성이를 넘어 평평한 대지가 나타났고 레이더 상에 신호 발신지가 표시됐다. 거의 도착한 것 같았다. 좀 더 속력을 밟으려던 셰퍼드의 귀에 송신기 너머 조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커맨더, 앞쪽은 얼음호수입니다. 기온이 기온이니만큼 깨질 염려는 없지만 마코를 타고 가기엔 좀 불안할 것 같군요.

조커의 무전은 기어코 셰퍼드 입에서도 욕이 튀어나오게 했다. 맙소사, 이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라고? 500m정도 떨어진 곳에 어렴풋이 붉은 빛이 보였다. 호수 너머에 기지를 짓다니, 이 얼마나 사악한 종족인가, 하는 탄식과 저주를 속으로 삼키며 마코를 세우고나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

"..."

"왜들 그러고 있어? 내려야지. 빨리 끝내야 한시라도 빨리 노르망디로 복귀하는 거라고!"

뻔뻔한 표정으로 재촉하던 셰퍼드도 막상 마코 출입문 스위치를 누르기 직전엔 심호흡을 해야했다. 문이 열리자 헬멧 너머로 금세 눈보라가 시야를 가려버렸다. 신호추적기를 옆구리에 달고 마코에서 뛰어내린 셰퍼드를 선두로 어기적거리며 내린 개러스와 렉스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바닥은 얼음이라곤 믿을 수 없을만큼 단단하고 견고한 느낌이었다. 걷는동안 한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았지만 셰퍼드는 다들 이를 악물고 있어서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보통 날씨였다면 10분이었으면 도착했을 거리를 천년같은 기분으로 걸어서야 목표했던 게스 기지가 눈에 들어왔다. 금속 재질의 도어락 앞에 선 세사람은 비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손에 쥐었다. 얼어붙은 손끝에 거의 감각이 없어 몇번 주먹을 쥐었다 펴야 했다.

셰퍼드는 투덜거리면서도 꿋꿋하게 따라온 두 사람에게 씩 웃어보였다.

"이 날씨에 이 고생을 시킨 녀석들을 곱게 보내줄 수는 없겠지? 가자고."

개러스는 뻣뻣하게 굳은 어깨를 이리저리 비틀어 몸을 풀었고 렉스는 두 팔로 가슴께를 쿵쿵 두들겨서 온몸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눈빛만으로도 기지를 무너뜨릴 것 같은 분노가 두 사람에게 느껴졌다.

"그래, 뭔가를 부셔야 좀 열이 날 것 같군."

"동감이야, 렉스. 이 별에 존재하는 무기체를 싹 쓸어버려야 추위를 좀 잊을 수 있겠어."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번 임무의 최대 난항은 험악한 날씨 뿐이었다. 보초병 몇 개체를 제외한 게스 개체들은 대부분 동면 상태로 잠들어있었고 중앙에 위치한 신호기를 부수고나니 이내 기지 내의 모든 생체신호가 사라졌다.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난 전투에 맥빠진 한숨소리가 들렸다. 기지 안은 결코 따듯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몰아치는 눈폭풍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아늑한 느낌이었다. 동면 중인 게스 포드를 향해 산탄총 몇발을 쏘아댄 렉스는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표했다.

"고작 이런 녀석들을 없애려 이 눈보라를 헤치고 왔다는 건가? 차라리 마코 캐논을 몇방 날렸으면 편했을 뻔 했군!"

신호기를 부수며 같은 생각을 했던 셰퍼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임무에 신중을 기하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이건 지나치게 허무했다. 그 때 남은 잔당이 없나 확인하러 갔던 개러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셰퍼드를 불렀다.

"커맨더, 이 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타이머가 있는데, 아까 신호기를 부순 시점부터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길 빠져나가야할 것 같은데요!"

세 사람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고, 이어 신속하게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자폭장치나 그런 종류의 것일 터였다. 기지 내에도 시끄럽게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고 급박하게 달려 렉스를 마지막으로 출입문을 빠져나온 순간 뒤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세사람의 헬멧 위쪽으로 후끈한 열기가 스쳐갔고, 다행히 파편에 맞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휴, 잘 끝내놓고 엄한 데서 골로 갈 뻔 했군. 고마워, 바카리안."

주먹으로 가볍게 개러스의 어깨를 쳐서 인사를 표한 셰퍼드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 모든 위험이 사라진 걸 확인했다. 이글거리는 불길에 휩싸인 기지의 잔해는 이 날씨 앞에 오래 가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고, 노르망디로 복귀하고 나면 임무는 무사히 끝나는 셈이었다. 폭발의 열기에 추위가 조금 가신 세 사람은 한결 가벼운 얼굴로 멀리 보이는 마코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얼어붙은 호수 위를 반쯤 걸어 마코의 검은 형체가 시야에 들어올 때 쯤, 선두의 렉스가 우뚝 멈춰섰다.

"셰퍼드, 방금 들었나?"

따라 멈춰선 셰퍼드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얼음이...갈라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크로건의 청력을 의심하는 바보같은 일을 할 생각은 없던 셰퍼드와 개러스는 렉스의 말을 듣자마자 조심스럽게 발밑을 확인했다. 도무지 깨질 것 같지 않은 두께의 얼음이었지만 아까의 폭발이 영향을 줬을 수 있었다.

"어...달려서 빨리 벗어나자고 하기엔 좀 많이 남은 것 같지?"

"네, 커맨더. 조심해서 가야할 것 같습니다."

다시 세 사람 사이에 무언의 눈빛이 오갔고 이번엔 셰퍼드가 앞장서 아까보다 더 느릿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깨질 위험이 있는 얼음 호수 위를 안전하게 걷는 법'같은 것은 얼라이언스 교본에도 따로 나와있지 않았기에 한발한발 내디는 발걸음이 몹시 불안했다.

그리고 눈앞에 대지의 경계가 보일 때쯤, 반쯤 마음을 놓았던 셰퍼드의 귀에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찌이익 하는 불쾌한 소리는 셰퍼드를 둘러싸고 퍼지는 듯 했고, 그녀가 뭐라 주의를 던지기도 전에 셰퍼드의 발밑이 무너졌다.

"커맨더!"

"셰퍼드!"

두 사람의 외침 너머로 아머 너머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수 없는 수준의 한기가 엄습했다. 물속으로 잠겨드는 그녀의 어깨를 붙드는 손길이 느껴졌고 모든게 슬로우모션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 보였다. 어지러운 시야가 물속과 바깥을 번갈아 비췄고 셰퍼드는 물속에서 그를 붙드는 개러스와 그런 두 사람을 한꺼번에 붙잡아 끌어올리는 렉스를 바라보다가 눈앞이 깜깜해졌다.



- 와, 진짜 스쿼드 멤버에 렉스가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죠.

"크로건은 만능이 아니다. 나까지 빠졌다면 아마 얼음호수 안에 세 종족의 얼음동상이 박제됐겠지."

-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두 무사하잖아요. 중요한 건 그거죠.

익숙한 수다스러운 목소리와 묵직한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셰퍼드는 감았던 눈을 떴다. 직전까지 느꼈던 한기가 꿈인 것 마냥 그녀가 있는 공간은 온기가 가득했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차콰스 박사가 셰퍼드와 눈이 마주쳤다.

"오, 일어났군요. 셰퍼드. 좀 어떤가요?"

셰퍼드는 몸을 일으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조금 뻣뻣한 느낌은 있었지만 크게 이상한 곳은 없었다. 주위를 살피자 끝쪽 침대에 멀뚱히 앉아있는 렉스와 그녀의 옆자리에 누운 개러스가 눈에 들어왔다.

"별 문제 없어요. 어떻게 됐던 거죠?"

렉스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앞쪽 얼음이 깨지며 셰퍼드 네가 물에 빠졌고, 저기 물불 안가리는 투리안 녀석이 널 건지겠답시고 가까이 가다가 얼음이 더 갈라지는 바람에 같이 빠졌다. 다행히 내 쪽 바닥은 무사해서 내가 너희 둘을 건졌고, 추위에 쇼크가 왔는지 둘다 뻗는 바람에 마코까지 둘 다 끌고가느라 고생을 좀 했지. 마코 운전은 생각보다 할만하더군. 역시 셰퍼드 네 운전실력이 별로인 것 같다."

무뚝뚝한 렉스의 말투 덕에 셰퍼드는 잠시 뒤에야 그의 농담을 깨닫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바보같은 해프닝이었지만 렉스 말대로 자칫 큰일로 이어질 수 있을 뻔했단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고마워, 렉스. 덕분에 살았어. 개러스는 아직인가?"

"...좀 전에 깼습니다. 일어날 타이밍을 못 잡아서 듣고 있었어요. 고맙군, 렉스. 위험할뻔 했는데."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킨 개러스는 하악을 작게 팔락이며 시선을 내렸다. 투리안의 감정표현은 익숙치 않았지만 아마 꽤 멋쩍은 듯 했다. 렉스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고 셰퍼드는 그런 그에게 피식 웃어보였다. 차콰스는 개러스와 셰퍼드의 체온을 한번씩 체크하고 몇가지 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고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세 사람을 향해 돌아봤다.

"좋아요. 둘 다 체크했을 때 큰 이상은 없었으니 좀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고생들 했으니 보상으로 좋은 걸 드리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차콰스가 세 사람에게 내민 것은 쟁반 위에 놓인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세개의 머그잔이었다.      

"와, 초콜릿이네요. 노르망디에 이런 것도 실려있었어요?"

머그잔을 집어든 셰퍼드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코코아 가루는 얼라이언스 보급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당연히 아니죠. 내 개인물품이니 고마운 줄 알아요. 참고로 개러스 건 탈리 조라 양에게 받았어요. 두 사람 소식에 놀라서 올라오더니 개러스를 위해 선물로 두고 갔어요. 함께 못 나가서 미안하다더군요."

렉스는 낯선 느낌의 음료에 냄새를 확인하곤 머그잔을 입안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그에게선 드물게도,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였다.

"흠, 인간의 음식 중엔 제법 괜찮은 편이군."

개러스 또한 자신의 머그를 집어들고 후후 분 다음 조심스럽게 한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셰퍼드는 달콤하고 쌉싸름한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다가 문득 생각난 사실에 개러스를 바라봤다.

"바카리안, 투리안은 수영을 못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수영할 줄 알아?"

셰퍼드의 질문에 개러스는 눈을 옆으로 한번, 위로 한번 굴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못 합니다."

"무슨 배짱으로 날 따라 물에 빠진 거야? 아니, 빠질 생각은 아니었겠다만...너무 무모하잖아."

"상황이 위급해보여서, 생각 없이...죄송합니다, 커맨더."

언젠가 조커가 '노르망디 크루들이 점점 커맨더를 닮아서 점점 무모해지는 것 같아요'하고 불평했던 걸 떠올리며 셰퍼드는 미소가 입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어차피 같은 상황이었으면 셰퍼드도 그다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을 알았기에.

"어쨌거나, 좋게 끝났으니 다행이야. 두 사람 다, 수고 많았어."

셰퍼드는 건배하듯 머그잔을 치켜들었고, 렉스와 개러스도 가볍게 잔을 들어보이고 이내 진료실 안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추위에 관한 크로건식 농담과 투리안식 괴담이 오가는 가운데, 노르망디의 하루가 무사히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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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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