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게이더의 도리안 팬픽션(...)의 번역입니다
원문은 데이빗 게이더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edium.com/@davidgaider/the-final-conversation-d6258fa6cbdb)
장례식으로부터 세 시간이 지났다.
티빈터의 장례식은 독특한 것으로, 마지스터가 죽었을 경우엔 더욱 그러했다. 이번의 경우, 마지스터 할워드 파부스의 시신은 웅장한 지하 영묘의 한 가운데 거대한 돌 위에 뉘여 있었고, 돌로 된 벽들은 수 세기의 세월에 걸친 연기와 슬픔으로 그을려 있었다. 홀의 기둥을 따라 줄지어 선 화로에서 일렁이는 불빛에 그림자들이 가장자리에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 마지스터는 이미 죽은지 몇 주가 지났지만, 눈으로 봐선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가슴 위로 겹쳐진 팔과, 뺨을 두른 생생한 빛깔이 마치 편하게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형상 위로 간간이 반짝이는 마법의 기운만이 그가 보존된 방식을 짐작하게 했다. 그날 저녁 영묘로 옮겨지기 전까지 그의 시신은 파부스 영지에 전시되어 있었다. 전통에 따라,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은 매일 같이 방문하여 그 침대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그가 마치 들을 수 있는 것마냥 대화를 나누었다.
실질적으로는, 도리안이 생각하기에, 그 전통이란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이 죽은 이가 실제로, 분명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거기엔 환상이나, 어떤 불운한 노예의 시체를 변형시킨 환영 같은 게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아마도, 먼 옛날에는 마지스터들이 죽음을 가장하는 일이 흔했으리라.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적수와의 전투에서 패배해가고 있을 때 손쉽게 끝맺기 위해. 그들은 밤 중에 슬그머니 사라져 적절한 순간에 다시 돌아왔으리라. 이유가 무엇이었든, 지금은 연고가 있는 친척이라면 연락 없이 갑자기 나타나든,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이든 간에 그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들이 속지 않았음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파부스 영지는 끝없는 방문자들로 혼란의 소용돌이였다. 레이디 아퀼레아 파부스는 이 모든 걸 어떻게든 감당해냈고, 장례식 동안 그녀는 티빈터의 으스스한 전통에 따라 그녀의 의무를 충실히 다했다. 죽은 남편이 뉘인 단 옆에 우뚝 선 감시자로서. 수 시간 동안 그녀는 돌석상처럼 굳건하고 조용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녀의 시선은 와인잔을 손에 들고 상류층들의 여느 모임에서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손님들 너머를 응시했다. 그들은 수다를 떨고, 정치 공작을 하고, 이따금 농담에 맞춰 왁자지껄 웃어댔다. 주위를 돌아다니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할워드 파부스가 지명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자신이 그 마지스터 자리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확신시키려는 가문의 방계 사촌들이 적어도 한 명은 넘는 듯 했다.
이따금, 손님들 중 한 명이 무리를 벗어나 도리안의 모친을 향해 다가가, 위로와 공허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녀는 거의 본 척도 하지 않거나, 필요한 경우에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 외엔 그녀의 귀족 가문이 요구하는 위엄을 품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혹자는 그녀의 얼음장 같은 태도를 냉정함으로, 혹은 깊은 슬픔을 단단히 감추느라 여유가 없는 것으로 여겼으리라.
도리안은 그보단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은 분노였다.
그의 모친이 바라보고 있는 황금으로 수놓아 반짝이는 로브와 보석을 걸친 수많은 남녀들 중 분명 그녀의 남편의 죽음에 연관된 이가 있을 터였지만, 당장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력함과, 로드 할워드의 장례식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하는 임무가 사실은 그의 후계자 - 그녀의 아들의 역할이라는 사실에 분노로 속을 끓이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기다렸다. 그녀는 손님들이 하나씩 묵직한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사이에도 기다렸다. 그녀는 늦깎이 손님 몇몇이 어색하게 그녀의 헌신을 칭찬하고 떠나가 영묘가 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모두가 떠나자, 그녀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는 엘프 시종들이 눈에 띄게 그녀를 피하는 태도로 다가와 화롯불을 대부분 정리하는 사이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그들이 마침내 자리를 피했을 때에도 조금도 움찔하지 않았다. 레이디 파부스는 어둠 속에서 세 시간 동안 그녀의 아들을 기다렸고, 그녀의 조용한 분노가 마치 갑옷처럼 그녀를 둘러쌌지만, 결국 그녀는 치맛자락을 정리한 뒤 방을 떠나고 말았다. 단단한 돌바닥 위로 울려퍼지는 그녀의 구둣소리가 음울한 결말을 알렸다.
그리고나서야 도리안은 그의 부친과 단 둘이 남겨졌다.
그는 어두운 위층 회랑에서 의식을 지켜봤다. 그는 굳이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 이 특별한 모임에서라면, 그런 행위는 지붕 꼭대기에서 그의 존재를 소리쳐 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고, 바로 그 덕에 잠깐이지만 매우 끌린 선택지이기도 했다. 진주가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나 아연실색한 이들의 속삭임 같은 건, 그랬다간 그의 모친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충분히 가치 있을 터였다.
물론 그가 그랬어야만 했다는 걸, 그는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도리안의 비겁함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는 그 어두운 눈과, 그 안에 담겨 있을 질책과 마주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모친의 차갑고 질식할 것만 같은 질책은 말 한 마디 없이도 언제나 그들 사이에 자리해 왔고, 오늘 일은 그녀가 수 년간 간직해온 보이지 않는 기나긴 계산서에 한 줄 더해질 내용일 뿐이었다. 드래곤과도 대적할 수 있는 그였지만, 이것만은 아직 마주할 수 없었다. 아직은.
부친의 일이 우선이었다.
이건 도리안이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티빈터의 전통 중 하나였다. 코뮤타투스 울티마, 혹은 "마지막 대화"라 부르는 것. 강령술 의식 중 하나로, 마지스터에게 그의 후계자와 마지막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주술...원한다면, 무덤 속의 비밀이 영원히 지켜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살인자의 이름이 밝혀질 수도, 가문의 비밀이 전해질 수도, 후계자에게 그 마지스터가 생을 마감하기 전 미리 적어서 남겨놓지 못한 무엇이든 간에 전해줄 수 있는 기회였다. 기술적으로야 물론 금지된 것이라지만, 티빈터의 많은 것이 그러하듯,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만큼 오래 사용되어 온 주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버지."
광대한 영묘 안에 그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눈앞의 단 위에 누운 차가운 형상으로부터는. 육신을 보존하고 있던 주술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제는 부패가 시작되고 있었고, 시신의 얼굴도 점차 창백한 형상이 되어갔다. 조금 있으면 여사제들이 찾아와 그의 부친을 아래쪽 터널로 싣고 가서 마법으로 불태운 뒤, 지나치게 화려한 유골함에 그 재를 옮겨담을 것이다. 그들은 그 유골함을 먼지 쌓인 선반 위에 올릴 것이고, 그 이전에 있던, 이제는 어둠과 그 견고한 자존심으로 점차 조용히 잦아들어가는 파부스 마지스터들과 함께 놓일 것이다.
의식 자체는 간단했다. 도리안이 강령술을 특화해서 배운 이유는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그것이 마탑에서 은근히 배척받는 기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영혼과 생에 관련된 기술의 대가가 되는 것. 그의 선택을 밝혔을 때 그들이 던진 시선은 따라 붙는 덤 같은 거였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며 시질(sigil)들을 먼지 쌓인 제단 바닥에 내려놓고 오래된 주문을 외웠다. 피부를 타고 에너지가 울려왔고, 조용하던 영묘 안의 공기에 전류가 흐르며 의식을 완성시킬 마지막 성분이 더해지길 기다렸다. 피. 이곳 티빈터에선 모든 게 피였다. 생명을 제공하고, 에너지를 제공하고, 누군가의 조상과의 연결을 제공하는 피. 부친이라면 분명 죽기 전 필요한 의식을 진행해뒀을 터이니...
...물론 그랬다. 도리안은 손 위로 작은 생채기를 냈고, 할워드 파부스의 육신을 둘러싼 에너지가 순식간에 뭉쳐들더니 붉은빛 안개를 형성했다. 그것은 시신 위로 떠다니는 형상을 이루었고, 유령처럼 보이는 그 모습을 도리안은 어슴프레한 빛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아들아. 그 목소리는 말이라기보다는 도리안의 마음 속에 내려앉는 것처럼, 스스로 생각할 때의 목소리보다 아주 조금 더 잘 들리는 수준의 속삭임에 불과했다. 그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음을 정돈시켜 최대한 조용하게 만들었고, 팔 위를 타고 오르는 소름끼치는 느낌은 무시했다. 이 재회가 혈마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아이러니를 그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당장은 그런 일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왔구나. 네가 올 줄 알고 있었다.
"정말로, 아셨다고요? 저는 확신하지 못했는데요."
어쨌든 너는 여기에 있지 않느냐. 불그스레한 형상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마치 그 표정이 슬픈 미소를 짓는 것만 같았다. 위안이 되기보다는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실. 떠나간 생명의 메아리를, 아주 짧은 시간동안 현실로 불러들이는 것.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코뮤타투스를 사용했고요, 아버지."
형상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아마 그는 도리안을 확인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몰랐다, 그를 재보며. 그것이 단에서 내려와 도리안을 향해 한 발 다가서자, 그는 한 발 물러섰다.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고, 그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머물고, 다가오지 말라는.
너는 아주 많이 달라보이는구나.
"그리고 당신께선 제 기억보다 아주 많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요."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내용이 많다. 네가 파부스의 자리를 맡는다면, 너는 우리의 적이 누군지 알아야만 한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죽인 주문을 사용했고, 내 죽음에 복수하는 건 네 역할이 될 것이다.
"당신의 죽음에 복수하라, 이 말입니까?" 도리안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너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게냐?
"정말로 제가 그것 때문에 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너에겐 의무가 있다, 나나 네 어미에게가 아닐지라도, 네 이름 위에.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가문이다, 도리안. 네가 그 마지스터의 로브를 걸치기로 결정한 이상, 내가 해줄 말은 너무 많고 우리에겐 시간이 너무-
도리안은 손을 들었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는 이곳에 준비하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왜 제게 그 자리를 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혹은 왜 제가 그걸 원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요. 저는 이 끔찍하고 지루몽매한 삶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걸 분명히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만약 유령의 형상으로도 눈썹을 찌푸릴 수 있다면, 그는 분명 그리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논쟁에 들어서기 직전에 부친이 보이던 전형적인 표정이었고, 도리안은 보지 않고도 능히 알 수 있었다. 그걸 말하기 위해 온 거냐? 이 모든 걸, 그는 도리안의 주문을 따라 여전히 강렬하게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시질을 손짓했다. 여전히 네가 반항하고 있다는 걸 선언하기 위해?
"아직 마치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요, 당신과 저는."
더 할 말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씁쓸한 어조로 말하려던 건 아니었음에도 그는 그러고 말았다. 유령의 형상은 다시 단으로 돌아가 여지껏 서 있던 것마냥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나는 죽었다, 도리안. 그의 부친은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냐, 우리를 위해?
"그럼 말해보시죠." 도리안이 말을 끊었다. "왜 지난 번 이야기할 때, 여전히 제가 후계자이길 원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신 겁니까? 수많은 위협과, 그만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제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어가라고요? 나이가 드시니 마음이 약해지셨나보죠, 아버지? 결국 후회란 게 발목을 붙잡던가요, 당신께 파부스의 횃불을 건네줄 자식이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나는...많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도리안은 몸을 돌렸고, 이 순간에 어울리는 극적인 퇴장을 위해, 그 유령의 형상이 슬픔에 빠져 무로 돌아가버리도록 하기 위해 발을 내딛으려 했으나...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는 깨달음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서 그는 어마어마한 의지를 쏟아 겨우 다시 몸을 돌렸다. "말해보십시오." 그는 느릿하게 말했다. "왜 아직도 제가 이 길을 따르길 원하는지."
너는 내 아들이다.
"제가 티빈터를 떠날 때 하신 말씀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요. 저는 당신의 그 작은 계획을 발견한 뒤 민라투스로 갔습니다. 술독에 빠져 모든 걸 잊으려 했고, 그리 자랑스레 말할 수 없을만한 일도 몇 가지 저질렀지만, 그래도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었다고요, 예?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저는 분명 무언가 실수가 있었을 거라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랬을 리가 없다고, 설마 그런, 그렇게나 믿을 수 없으리만치 악독한, 당신이 제게 가르쳐온 모든 굴레를 벗어나는 짓을 하려 했을 리가 없다고. 그래서 저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 곳에서 제가 존경해온 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도리안, 다시 그 이야기를-
"당신은 제가 돌아온다는 이야길 당연히 전해 들으셨죠. 아마 제가 수도에서 저지른 수많은 일들도 전부 전해 들으셨을 겁니다. 당신은 경비견이라도 된 듯 대문을 지키고 선 채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저를 환영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걱정했다는 말도, 당신이 제게 저지를 뻔한 일에 대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사과 또한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아버지?"
유령의 형상이 고개를 수그렸다. 너는 선을 넘어섰다, 마침내 그가 대답했다.
"제가 선을 넘었다고요! 당신이 아니라, 제가요. 선이라는 게 그어져버렸고, 저는 그 반대쪽에 서 있었지요. 저는 저의 이기적인 선택을 포기하고 가문에 추문을 일으키는 걸 그만두지 않는 한 당신의 집에, 당신의 집에 발에 들일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 대답은 대충 이런 거였죠, '하지만 이건 제 가족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약간의 추문은 이용해 먹을 수도 있다고요!' 좀 뻔뻔했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너무 급작스러웠으니까요. 그 다음 말은 기억하십니까?"
그의 부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유령의 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좋아요, 제가 대신 말해드리죠. '이건 네 가족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리고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영묘는 조용했고, 제단 양 옆에 불씨가 남은 화로 두개만이 이따금 불똥 튀는 소리를 냈다. 도리안은 반응이 있길, 뭐라도 있길 기다렸으나, 그의 도전에 대한 부친의 유일한 반응은 - 언제나처럼 - 엄격한 침묵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였다.
"거기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결국 끝이 난 거구나, 결국 이렇게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만 거구나!' 저는 당신이 원하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옳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아 숨쉬는 실망거리였고, 언제든 내칠 수 있는 존재였고, 제가 그저 당신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대신 차라리 바꾸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 속에서 도리안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손쉽게,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자신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게 싫었고, 심지어 이제는 무덤 너머에서조차 그러고 있었다. "저는 적어도 그 기준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심문회로 저를 찾아오셨고, 그건 제가 제국 밖에서까지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었죠, 대신, 당신이 저와 대화를 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팔짱을 끼었다. "그러니 대화를 해봅시다. 왜 내가 당신의 자리를 이어 받아야 하는지 말해 보십시오, 아버지. 만약 그 이유가 그저 '네가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일 뿐이라면, 저는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왜 언제나 이런 식이어야 하는 거냐, 도리안?
"오, 글쎄요. 고집 때문이겠죠, 아마도?"
유령의 형상이 단에서 일어섰다. 그는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오랫동안 도리안을 응시했고, 이어 할워드 파부스의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손을 뻗었으나, 일렁이는 안개는 육신을 그대로 통과해 버렸고...그는 비틀거렸다. 도리안에게 등을 돌린 채로, 그는 마침내 굴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가 내 뒤를 이어 마지스터가 되길 바라는 이유는, 그는 느릿하게 말했다, 네가 나보다 훨씬 나은 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도리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제가 잘못 들은 게 분명하겠죠."
나는 많은 걸 후회하고 있다, 도리안. 내가 무엇보다 후회하는 것은 바로...그 아비보다 큰 용기를 지닌 아들을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다.
그 유령의 형상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가 다가섰고, 이번에는 도리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가까워진 거리 덕에 안개처럼 흐릿한 부친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던 많은 일들을, 내가 살 수 있던 그 삶을, 나는 내 의무를 새장이라 여긴 탓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거기서 벗어나는 모습에 기뻐하는 대신, 나는 너를 미워했다. 나의 아들을. 어떻게 네가 감히 새장을 열고 벗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난 그게 잠겨 있는지 확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도리안은 동요했지만,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즉석에서 생각해낸 것 치곤 괜찮은 비유로군요, 아버지. 인상적이에요." 그는 가까스로 웃음을 터뜨렸지만, 공허한 웃음이었다.
나이가 들면 네게도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이 생기겠지. 네가 스스로 생각한만큼 강력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는 걸 깨달을 시간이. 네 아들이 네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단한 일들을 이뤄낼 거라는 걸 깨달을 시간이, 그리고 그 이유가 결코 네가 가르치고 전수한 것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친은 손을 뻗었고, 도리안은 물러서지 않았지만 그 손은 중간에서 멈칫한 뒤,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을.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리안은 부친의 모습을 한 유령이 이어 말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이어 도리안은 그가 해야할 수많은 말을 떠올렸으나, 그 냉정하거나 재치 있는 말들은 전부 부적합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는 어깨를 으쓱한 뒤, 눈물이 결코 떨어지지 않도록 눈을 깜빡였다. "당신은...언제나 그렇게 끔찍했던 건 아니에요, 아버지."
나는 스스로 최선이라 생각한 일들을 행했다. 나는 너를 바꾸려 했고, 그게 네가 겪을 고통을 줄여주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대신 훨씬 끔찍한 고통을 네게 주고 말았지. 내게도 너와 같은 용기가 있었어야 했다, 도리안.
"당신은 가족을 지키려 했던 거였죠. 저는...저도 그걸 이해했습니다. 제가 그걸 이해한다는 사실을 증오했죠."
너는 내 가족이다.
유령의 형상은 다시 제단으로 돌아갔다. 시질의 빛이 꺼져가고 있었고, 도리안은 붉은 안개가 흩어져 간다는 걸 깨달았다. 벌써 끝이란 말인가? 가슴을 요동치는 혼란은 예기치 못했기에 날카롭게 닥쳐왔다.
나보다 잘 하거라, 도리안. 되도록 덜 후회하며 살고, 가능하다면 어리석었던 아버지를 용서하거라.
그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됐어야 했던 그런 마지스터가 되거라, 다른 모든 이들이 두려워할 만한.
그와 함께, 주문이 끝을 맺었다.
도리안은 그 자신의 생각과, 제단 위에 곱게 놓인 부친의 시신과 함께 영묘 안에 홀로 남았다. 그의 머릿 속을스친 생각은 과연 그 환영이 진짜였을까 하는 점이었다. 어쩌면 그게 그냥 영이었을 수도, 그가 듣길 원할만한 말을 들려주기 위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모든 의식이 전부 그런 거였을 수도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도리안의 마음 일부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그가 사랑해온만큼 증오했던 이와 이렇게 작별했다는 사실보다 더 받아들이기 편하고 진짜 같다고 여기는 걸까?
정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는 돌바닥 위에 놓인 차갑게 식은 시질을 신발로 문질러 지워냈다. 바로 떠나려던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 대신 도리안은 허리춤에서 은빛 플라스크를 꺼내들었다. 뚜껑을 연 그는 제단을 향해 잔을 들어보였다.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과," 미뤄뒀던 감정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느낌에 그의 말은 반쯤 목이 메였다. "더 적은 후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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