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퀴지터 합작에 제출했던 작품입니다.

 

 

새로운 커플이 탄생했다고 할 때, 으레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떤 점이 좋아?' '언제부터 끌렸어?'같은 류의, 호기심을 채우면 그만인 가벼운 질문에서부터 '결혼 생각은 있어?' '그 남자 지참금은 있대?' 같은 다소 무례할 수 있는 질문까지.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스카이홀드 안에도 크고 작은 연애사는 어디에나 있었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이들의 연애사는 술자리 안주거리로 그만이었기에 새로운 커플이 탄생하면 한동안은 이런 시덥잖은 질문으로 가십을 나누곤 했다.

 

"그래서,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데?"

 

물론, 테다스를 구하기 위해 창조주가 보낸 그들의 구세주, 안드라스테의 전령이라 불리는 심문관 카라스 아다르에게 이렇게 서슴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건 배릭 테스라스 뿐이었다. 배릭의 개인 숙소는 두 사람, 한 명의 드워프와 한 명의 쿠나리를 수용하기엔 좀 비좁은 감이 있었고, 찻잔과 원고뭉치를 앞에 두고 앉은 배릭의 맞은 편에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한 자세로 앉은 카라스 아다르는 배릭의 심문에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글쎄요. 특별히 어느 부분이라고 말하기엔...그녀는 심문회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료이고...언제든 등을 맡기고 싸울 수 있는 훌륭한 전사이고...또..."

 

"이봐, 누가 그런 고지식한 대답을 듣고 싶은 줄 알아?"

 

배릭이 던진 구겨진 원고뭉치가 아다르의 왼쪽 뿔에 맞고 튕겨나왔다. 타격감은 전혀 없는 그의 항의에 아다르는 괜시리 뿔끝을 긁적였다. 얼굴도 좀 붉어졌을 테지만 쿠나리의 튼튼한 피부 위로는 티가 잘 안나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참, 애초에 당신이 말해달라고 졸라서 처음부터 다 말씀드렸잖습니까. 당신이 이걸 알고있다는 걸 카산드라가 알면 절 죽이려고 할 거라고요."

 

비밀을 털어놓기에 배릭 테스라스만큼 위험한 사람도, 그만큼 안전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다르는 카산드라를 위한 꽃과 양초를 준비하고 시집을 고르는 과정부터 배릭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 조언을 얻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꽃이라고 하면 가시 모양의 세장짜리 붉은 꽃잎을 가진 꽃은 독을 가졌으니 먹으면 안 된다, 부은 상처 위에는 잎 끝의 색이 연한 참엘프뿌리를 빻아서 붙이면 좋다, 이상으로 아는 게 없었고, 시라 하면 발로카스에 있을 적 허풍쟁이 자칭-시인 카리스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외설스런 소설집에서 골라 읊어주는 것 외에 들어본 적도 없는 아다르였다. 처음 배릭에게 상담할 땐 그저 마음 가는 사람이 있다고 돌려말했지만, 이미 ‘검과 방패’ 사건 이후 카산드라와 아다르 사이의 미묘한 감정 교류를 눈치챈 배릭의 집요한 추궁을 피해 둘러대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가 구애하려는 대상이 카산드라임을 알게 된 배릭이 배를 잡고 웃어대는 바람에 거의 화를 낼 뻔도 했지만, 배릭과 카산드라의 복잡하고 깊은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할 법한 반응이었다. 어쨌든 배릭은 맹렬하게 폭소한 뒤 태도를 바꿔 사뭇 진지하게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툭별한 꽃말을 가진 낭만적인 꽃들을 추천해준 것도, 심문회에 납품되는 고급 양초장인을 소개해준 것도, 아다르가 구해 온 시집 안에서 적절하고 매력적인, 다소 은근하기까지 한 사랑시를 골라준 것도 전부 배릭이었다. 물론 그 뒤에 홀로 숨어서 시를 외우다 들켜 한참 더 비웃음을 산 건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오, 이게 책으로 나온다면 그 땐 정말 추적자 양반이 날 죽이러 올 테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아무튼 좀 더 극적인 느낌이 필요하다고. 결정적으로 이거다, 하고 느낀 순간이 있을 거 아냐? 헤이븐에서 구하러 왔을 때? 아니면 서부진입로에서 탈진해서 쓰러진 자네를 들쳐메고 끌고 갔을 때? 아니, 이건 별로 로맨틱하지 않군."

 

아다르는 배릭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도 된다고 한 게 과연 잘한 결정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저 어차피 심문회의 전설적인 업적도, 그 중심에 있던 심문회 구성원들의 무용담도,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 후대로 전할 것이었고, 그렇다면 차라리 이야기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가깝게 모두를 관찰한 배릭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 물론 아다르가 그의 ‘챔피언 이야기’의 열렬한 팬인 것도 결정에 한몫을 했다.

지금 배릭이 쓰고 있는 글은 심문회 이야기가 아닌 오로지 인퀴지터 아다르와 그의 일대기라고 했다. 이렇게 써 놓더라도 제대로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올지 어떨지는 모르는 거라며, 배릭은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아다르를 방으로 불러 시시콜콜한 그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연애담을 들려주는 건 여간 민망하고 멋쩍은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봐도 아다르는 배릭의 질문에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산드라의 어떤 점이 좋냐고? 그는 카산드라의 모든 점을 좋아했다. 이쯤 되면 거의 숭배에 가깝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강인한 성품과 굳건한 신념도, 그 안에서 드러나는 부드러운 유연함도, 다른 사람들에겐 잘 드러나지 않는 낭만적인 감성도, 무엇 하나 싫은 구석이 없었다. 사랑에 빠진 바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아다르는 카산드라가 그에게 자꾸 의미없이 유혹하지 말라는 말을 할 때까지도, 그가 하고 있던 게 ‘유혹’이라는 걸 깨닫지조차 못했다. 쿠나리와 인간의 문화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다르 개인의 경험부족 탓이 컸다. 아다르는 살면서 그의 부모님과 발로카스 용병단의 동료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본 일이 없었다. 가벼운 친구 관계든, 진지하고 깊은 연인 관계든. 그저 끌리니 다가가고, 마음에 차는대로 생각하는 말을 내뱉었을 뿐인데, 그 감정에 어떤 특별한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란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카산드라가 정중하고 단호하게 그에게 선을 긋고 돌아선 순간에야, 이게 다른 친구들에게 느끼던 친밀감이나 호감과는 다른 감정이란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인 것 같아요.”

 

긴 고민 끝에 내놓은 아다르의 대답에 배릭의 펜이 우뚝 멈췄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대답이었다. 스스로 말해놓고 나서도 어이가 없어서 아다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 사람 취향 하고는...손목에 수갑 차고 목에는 칼이 들이밀어진 상황에서? 나도 비슷한 거 당해봤는데 그거 참 가슴 떨리는 일이긴 하지. 사랑으로 착각할만큼.”

“물론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첫만남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건 상황이 그럴만 했지 않습니까?”

 

킬킬거리는 배릭의 비웃음을 피해 아다르는 그의 말을 되받았다. 과히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챈트리 성당 폭발 후에 발견된 쿠나리 마법사라니. 카산드라가 그에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줬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아다르 본인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날이 선 터라 카산드라와 그다지 우호적인 관계로 시작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모두가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흔들림 없이 신념을 따르는 강인한 의지. 개인의 사욕을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믿는 정의를 추구하는 고결한 성품.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쨌든, 그녀는 아름답잖아요."

 

"켁!"

 

이번에는 급격한 기침소리가 터져나왔다. 배릭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잔기침을 하며 숨을 골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는 듯한 반응에 되려 아다르가 이마를 찌푸렸다.

 

"왜요, 이상합니까? 드워프의 미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인간 기준으로 봐도 카산드라는 아름답잖아요. 아닙니까?"

 

얼굴까지 빨개져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배릭이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아다르의 확고한 표정에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카산드라가 '그' 카산드라 펜타가스트이지만, 그와는 다소 악연으로 얽힌 사이이지만, 그 성품을 생각하면 차마 쉽게 나올만한 말은 아니지만, 그녀는 인간 여성의 기준으로 미인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뻔뻔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눈하나 깜짝 않고 말하는 아다르의 태도라니.

 

"흠. 크흠. 그래. 얼굴, 그거 중요하지. 맞아, 인정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만났다 해도 얼굴은 눈에 들어올 수 있지. 아무렴."

 

얼굴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고 항변하기엔 변명이 궁했기에 아다르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마 이 이야기가 배릭의 손을 거쳐 한 권의 책이 될 쯤에는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여기사를 위해 세상을 구하는 쿠나리 영웅의 로맨스 스토리가 돼있을 게 뻔했지만, 그에겐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할만한 근거도 없었다.

 

"아무튼 전 가봐야겠습니다. 몽틸리예 대사님이 저녁식사 전에 잠시 들러달라고 했어요."

 

어쩐지 이야기 할 때마다 비웃음만 잔뜩 사는 느낌이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가감없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게 썩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하며 아다르는 작은 의자에 구겨져있던 몸을 일으켰다. 문고리를 잡는 아다르의 뒤통수에 배릭이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충고를 흘리듯 던졌다.

 

"이봐, 인퀴지터. 방금 한 얘기,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이 흔들렸다는 말, 꼭 카산드라한테 말해주라고. 반응이 볼만할 거야."

 

*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최근 시작한 글쓰기에 열중해 있었다. 종이 위로 꼼작않고 고정된 시선과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펜 끝에는 검을 들고 적을 마주할 때와 같은 집중력이 서려있었다. 아다르는 그가 온 줄도 모르고 생각에 몰두해있는 카산드라의 옆모습을 천천히 감상했다. 해질 무렵의 타는듯한 붉은 태양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역광을 드리웠다. 아다르는 하루 종일이라도 그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있었다.

 

"아, 카라스? 왔으면 부르지 그랬어. 무슨 용무라도?"

 

문가에 선 그를 발견한 카산드라의 얼굴에 순식간에 미소가 번졌다. 최근 렐리아나가 카산드라의 그런 미소는 처음 봤다며 놀리던 일이 떠올랐다. 오직 그 한사람만에게만 보이는 미소. 아다르는 자신이 멍하니 바라보느라 대답도 않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아니요. 용무는 아니고...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카산드라는 궁금한 듯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아다르는 그녀가 잉크병을 닫고, 깃펜을 내려놓고, 종이뭉치를 갈무리 해두고 그에게 다가와 설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숨결이 느껴질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아다르는 손을 뻗어 카산드라의 뺨을 감싸안았다. 다른 한 손은 가깝게 붙어 선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가벼운 입맞춤이 오가고, 간질간질한 분위기에 카산드라가 킥킥 거리며 그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냈다.

 

“그래서, 할 말은?”

 

아다르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배릭의 말을 따라 카산드라를 찾아왔지만 막상 입을 열려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지껏 한 번도 이렇게 말한 적 없다는 게 이상할만큼, 그는 진심으로 카산드라를 경외하고 흠모했다. 아다르는 온기를 품은 부드러운 갈색눈을 마주한 채 그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한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카산드라.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다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붉게 물드는 카산드라의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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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퀴카산 달달한 이야기를 쓰려 했으나 내내 아다르와 배릭만 나왔습니다. 카산드라님 얼빠인 제 마음을 아다르에게 200% 투영했지만 카산드라님은 아름답고 존엄합니다. 반론은 받지 않습니다.

 

드에 합작 주소는 https://sleeplazycat.wixsite.com/dacollab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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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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