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스, 생일이 언제예요?"

  로툰다의 작은 소파에 드러누워 보고서를 건성으로 들춰보던 라벨란이 지나가듯 질문을 던졌다.

  "잊어버렸습니다."

  "에이, 생일을 어떻게 잊어버려요? 또 귀찮아서 대충 얼버무리는 거죠?"

  "따로 기념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 돼서 그렇습니다."

  "또, 또, 엄청 나이 많은 척 한다. 하긴, 나이 먹을수록 생일이 달갑지 않아진다고는 하던데. 나는 아직 생일이 좋은 거 보니 철이 덜 들었나봐요. 남의 생일도 이렇게 신나다니."

  얼마 전 황소돌격대와 함께 아이언 불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전령의 숨결에서 떠들썩하게 먹고 마신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녀는 황소돌격대가 즐겨 부르는 단순한 곡조의 응원가를 연신 흥얼거렸다. 책상에 앉아 책을 넘기는 솔라스는 자신의 공간에 라벨란이 찾아와 느슨한 태도로 시간을 죽이는 데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영생을 살던 고대의 엘프들도 생일을 챙겼을까요? 막 천 년씩 사는데 매해 기념하긴 귀찮았을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친구들이랑 모여서 맛난 것도 먹고, 선물도 주고 받고 하는 날이 있으면 좋긴 할 텐데."

  라벨란은 솔라스가 그녀의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도 늘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걸 내심 즐기고 있었다. 아니다 다를까, 고대 엘프에 관한 질문에 솔라스는 책에서 눈을 떼고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생일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죽음을 기념하곤 했습니다."

  "죽음이요?"

  호기심이 동한 라벨란은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솔라스 쪽으로 방향을 틀어 앉았다. 그는 옛날 이야기를들려주는 키퍼처럼 잔잔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은 아닙니다. 우세네라, 삶의 고락을 누리고 영원한 잠을 택하는 이들은 의식을 행하기 전 오랜 친우, 친지를 초대해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하고 인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들은 떠나는 이에게 영계에서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고, 보물 같은 지식을 얻어 영혼을 온전하게 하도록 축복을 남겼습니다. 그 옛날 우리는 생이란 예기치 않은 때에 불가피하게 주어지는 것이라 여겼고, 우세네라에 접어드는 것을 영혼을 완성시키는 삶의 축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건 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려던 말은 자연스레 혀 끝에 먹혔다. 어떤 키퍼도 알지 못하는 옛 이야기를 어제 본 것처럼 말하는 그의 화법에는 익숙하다. 라벨란은 그녀가 마법사였다면, 그가 하듯 영계의 비밀을 탐구할 수 있었다면 언젠가 그렇게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우세네라에 들어가도 죽는 건 아니라고 했죠? 그럼 아직도 어딘가에 잠에 빠진 이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요? 알라산이 몰락한 줄도 모르고, 영계의 비밀을 탐구하면서."

  그 말에 솔라스의 눈에 어떤 슬픔이 지나쳐 가는 것을 라벨란은 미처 보지 못했다. 언제나 고요한 그의 얼굴 위로 아주 짧은 순간, 세상의 모든 비탄을 담은 것 같은 상실감이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럴 지도요. 하지만 대부분 우세네라에 들어간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혹여 누군가 남아 있더라도, 지금 같은 세상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게 낫겠지요."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라벨란은 그 안에 답긴 씁쓸함만큼은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영생을 누렸던 고대 엘프의 삶을 알지 못하기에, 지금 이 테다스의 엘프들의 삶이 그들 눈에 얼마나 충격적일 지 미처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챈트리를 대표하는 안드라스테의 전령이라는 낯간지러운 호칭이 데일리시 엘프 출신인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현실에는, 우세네라에서 돌아온 수 천년 전의 엘프라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네요. 그래도 막상 지내보면 괜찮은 점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도 가끔 쓸모 있는 건 있으니까요."

  라벨란은 덧붙이듯 가령, 아침 잠을 깨우는 홍차 같은 거? 하고 말하고는 가볍게 찌푸려진 솔라스의 이마에 깔깔거리며 입을 맞췄다. 솔라스는 가벼운 입맞춤으로 돌아서려는 연인을 붙잡고, 조금 더 길게 제대로 입을 맞췄다.

  "예시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군요. 이 세상에도 좋은 점은 있을 겁니다."

  다시 마주 한 솔라스의 얼굴에는 오직 라벨란만이 볼 수 있는 따스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라벨란은 보고서를 돌려주러 방으로 가기 전, 다시 한번 연인의 뺨에 입을 맞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원형돔을 벗어났다. 여느 날과 같은, 스카이홀드의 짧은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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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네라 설정은 날조입니다.

포스타입 20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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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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