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신년'과 '축제'.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스카이홀드 광장 가운데 커다랗게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로 축제가 한창이다. 퍼렐던의 신년 축일은 오를레에 비해 가볍고 쾌활한 분위기이다. 사람들은 축일 오전에 짧은 예배를 드리고 서로에게 덕담을 건넨다. 마을 공동체 단위로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밤이 오면 묵은 해의 액운을 부적에 담아 불태우는 의식을 치르며 새로운 해의 운을 기원한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나무 둥치에 앉은 솔라스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활기가 그에게까지 미처 전해지지 않은 듯 그의 표정에선 특별히 들뜬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고요한 그의 시선 끝에 라벨란이 있다. 그녀는 류트 반주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무리 한 가운데서 함께 춤을 추고 있다. 평소 단정하게 차려입던 예복이 아닌 가벼운 평상복 차림을 한 그녀는 축제를 맞아 그녀의 무거운 책무를 내려놓은 듯 한껏 신이 나 있다. 자유롭게 풀어헤친 머리칼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새빨갛게 상기된 두 뺨 위로 모닥불 불빛이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잔뜩 흥에 겨워 누구든 앞에 있는 사람과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도는가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는다. 심문회 사람들은 그들의 인퀴지터가 신분이나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럼 없이 어울려 오는데 익숙하다. 사실, 왼손의 빛나는 앵커와 데일리시 특유의 발라슬린을 제외하면 그녀를 일반 사람들과 구분지을만한 특별한 특징은 없다. 지금처럼 평범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때면 더더욱.

 

  "반짝이고, 바스락거리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 손에 잡힐 듯 다가와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귀 옆에서 익숙한 속삭임이 들려오고, 솔라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의 친구를 돌아보았다. 콜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라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아. 기꺼이 손 안에 머물 거야."

  "네, 맞습니다. 콜."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연민의 영이 이해하기엔 너무 복잡했다. 연주하던 음악이 끝나고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사이에서 라벨란이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숙여 인사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이 솔라스를 발견하고, 만개한 꽃 같은 미소가 그 얼굴 위로 순식간에 번졌다. 라벨란은 어둠 속에 있는 그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와 아직 가쁜 숨을 잘게 내쉬었다.

 

  "솔라스, 난 당신이 방에서 쉬는 줄 알았어요. 함께 어울리지 않을래요? 당신이 춤추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지만."

 

  솔라스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라벨란은 기대도 안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신 손을 내밀었다.

 

  "아니면, 같이 좀 걸어요. 너무 뛰었더니 지치네요."

 

  콜은 어느샌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솔라스는 라벨란의 손을 마주 잡고 성의 외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느라 바빠 인퀴지터의 공백 쯤은 눈에 띄지 않을 터였다. 달빛을 조명 삼아 걷는 두 사람 사이엔 편안한 침묵이 함께했다.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라벨란에게 솔라스가 질문을 던졌다.

 

  "클랜에서는 신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평소 라벨란은 솔라스가 데일리시에 대해 물을 때면 늘 약간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녀의 대답에 뭐라도 꼬투리를 잡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다소 방어적인 태도로 말하곤 했지만 오늘은 축제의 기분에 취해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요? 보통 새해 전야에 사냥꾼들끼리 다 함께 사냥을 나가 제의를 위한 사냥감을 잡았어요. 운이 좋을 땐 동면 중인 곰을 잡기도 했고, 보통은 여우나 산양 정도로 그쳤죠. 그렇게 잡은 사냥감 중 가장 큰 녀석을 제의에 올려 새해의 운을 기원하는 게 풍습이었어요"

 

  솔라스는 그 풍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퍼렐던, 오를레, 티빈터 어디든 간에, 엘프든 인간이든 드워프든 간에.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람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한 해를 나누고, 그들의 마음을 새로 다잡고 목표를 정할 수 있게 기념할 날을 정한다. 고대 알라산에서도 그들은 비슷한 의식을 치렀다. 수백, 수천의 엘프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공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렸다. 그 옛날의 기도 중에는 펜하렐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현대의 데일리시는 그의 이름을 찾지 않는다. 오직 적의 이름을 저주할 때만 불리는 배신과 경멸의 이름.

 

  "그러고보니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 새해맞이 땐 늑대를 잡았어요. 늑대를 잡는 해는 특별하다고들 해요. 펜하렐의 마수를 피하는 한 해가 될 거라고 키퍼가 축복해 주셨는데, 이렇게 여기 와 있는 걸 보면 그 축복이 효과가 있던 건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옛날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달을 올려다 본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직접 잡은 늑대를 제단에 올리던 그녀는 스카이홀드에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새해를 맞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키퍼의 축복은 그녀를 콘클라베에서 살아남게 했을 지 모르겠지만 펜하렐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진 못했다. 그 아이러니에 웃음이 났지만 솔라스는 익숙한 가면 아래 표정을 숨겼다. 그는 섣부른 위로의 말 대신 화제를 돌리는 쪽을 택했다.

 

  "조금 있으면 자정입니다. 이번에는 사냥감 대신 부적을 만들지 않았던가요? 사람들과 함께 태우려면 슬슬 돌아가야겠군요."

 

  그의 지적에 라벨란은 그제야 생각난 듯 품 안을 뒤적여 그녀의 부적을 꺼내었다. 사람 형태의 지푸라기 인형 안 쪽에는 새해의 소망을 적은 쪽지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의 시선이 인형 사이로 삐져나온 쪽지 끝에 머무는 것을 눈치 챈 라벨란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무슨 기원을 적었습니까?"

  "비밀이예요. 남한테 말하면 부정 탄다고 했어요."

 

  '정말로 믿는 건 아니지만,' 하는 단서를 말꼬리에 흘리면서 그녀는 총총거리며 앞서 걸어간다. 솔라스는 그를 두고 멀어져가는 라벨란에게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그녀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게 두어야 한다. 혹여 그녀가 머물기 원하더라도 그는 잡아선 안된다. 그들은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하지만 라벨란은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그를 돌아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같이 안 가요? 부적은 안 태워도 옆에 있어줄 수는 있잖아요. 춤 추자고는 안 할테니까 가요."

 

  언제나 먼저 다가서는 쪽은 그녀이다. 먼저 손을 내민 것도, 먼저 입맞춘 것도. 하지만 솔라스는 그에게 언제나 물러설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그는 내밀어진 손을 마주 잡는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가까워진 그녀를 에워싸 품 안에 가둔다. 그녀가 사냥한 늑대는 펜하렐의 제단에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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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소리뼈님(@soribone)과 연성교환 하기로 했던 글을 너무 늦게 썼습니다ㅠ 분량도 짧네요...솔라스 시점에서 보는 라벨란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포스타입 201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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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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