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더 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팬픽션

* 호비 브라운 x 그웬 스테이시 커플링

* 이전에 쓴 Intimacy와 아마도 이어질 내용

* 선동과 날조 가득

 

 
  한가한 오후였다. 간만에 햇살이 따사롭게 비쳐드는 오후, 살아있는 화분을 그러모아 얼마 없는 일광욕 기회를 즐기도록 보트 천장에 줄줄이 올려놓았고, 바람 한 점 없는 부두에 매어 둔 배는 땅 위에 서 있는 것마냥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호비는 소파에 앉아 빈 악보지를 바닥에 늘어놓고는 기타를 튕기며 부지런히 작곡중이었고, 그웬은 그런 호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호비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하나를 뒤적거리는 중이었다. 펑크의 역사를 다룬 책이었는데 그웬은 흥미있는 부분만 가려 읽으며 성의 없이 페이지를 넘겨댔다. 실상은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사이 집중한 호비의 얼굴을 훔쳐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듯 했다. 호비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도 무릎을 벤 그웬의 머리가 흔들리지 않게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곡을 쓸 때의 호비는 무대 위에서와 비슷한 눈빛을 했다. 혹은 수트를 입고 적과 맞서 싸울 때 같은 눈을. 오직 하나의 목표를 갖고 집요하게 끝을 향해 달리는 자의 눈빛. 그의 안에서는 이 모든 게 같은 행위이기 때문인 걸까? 그웬은 어느 새 책은 가슴 위에 엎어 놓고 호비의 얼굴을 가만히 구경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호비, 키스해도 돼?"

 

  다소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호비는 그웬이 ‘밥 먹을까?’ 하는 질문을 한 것마냥 놀란 표정 하나 없이 그웬을 가만히 내려다 보더니, 아주 잠깐 틈을 두고는 짧게 대답했다.


  “안 돼.”

 

  그 짧은 간격은 뭘까. 가볍게 던진 질문이지만 빈말은 아니었고, 호비가 거절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그웬의 눈썹이 비죽 올라갔다.


  “진짜?”
  “응.”

 

  호비는 대답만 마치고 다시 기타와 악보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웬은 호비가 시선을 피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것 봐라? 그웬의 손이 호비의 턱끝을 붙잡았고, 강하지 않은 손길로 살짝 당기자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그웬을 다시 향했다.


  “호비, 날 좋아해?”
  “어.”

 

  잠시도 고민하지 않은 즉답. 그웬의 심장 속도가 빨라졌다. 언젠가 물어보려던 질문이긴 했다. 너는 왜 내게 잘해줘? 왜 내가 부탁하기도 전에 모든 걸 해결해줘?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정하게 굴어? 점점이 쌓인 질문은 하나의 근원적인 질문으로 수렴했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넘치기 직전의 물잔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듯, 마음이 흘러나온 것이다.


  “그럼, 키스는 왜 안 된다고 해?”

 

  호비의 눈빛은 참 읽기 어려웠다. 그웬이 아직 그를 잘 모르는 걸까. 혹은 그의 눈빛이 담은 감정이 늘 한결 같아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오직 그웬을 향해서만 유독 다정한 눈빛. 지금도 그는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만히 그웬을 내려다 보고 있지만, 눈빛만은 언제나처럼 따듯했다.

 

  “네가 날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뭐든지 아는구나, 너는.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수치심인지, 미안함인지, 당혹감인지. 그웬은 벌떡 몸을 일으켜 호비에게 등을 돌려 앉았다. 가슴 위에 놓여 있던 책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에게 내뱉은 말이 스스로를 찌르는 유리조각처럼 돌아와 가슴을 찔렀다. 어째서 여태까지 그 당연한 질문을 못했던가. 그것은 그웬이 그에게 돌려줄 대답이 없었기 때문인 것을.


  “그웬디.”

 

  등 뒤에서 호비가 나직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웬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떤 얼굴로 그를 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웬디, 괜찮아. 날 봐.”

 

  어깨 위에 올라온 손이 그웬을 달래듯 다독였다. 그웬이 꼿꼿하게 버티며 등돌리고 있을 기세이자, 작은 한숨과 함께 호비 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웬 앞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 그웬과 눈높이를 맞춘 호비가 얼굴을 가린 그웬의 두 손을 붙잡았다.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 제스쳐를 따라 그웬은 순순히 호비의 손에 잡힌 두 손을 스르륵 내렸고, 붉어진 눈시울로 호비를 마주 봤다.


  “미안해, 호비. 난…”
  “하지마, 그거.”
  “응?”
  “사과 할 일 아니잖아.”


  그웬은 호비의 표정에서 씁쓸함이나 아쉬움, 책망 같은 흔적을 찾아보려 했으나 그의 얼굴은 지극히도 평온했다. 마치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방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데, 네게.

 

  “있잖아, 호비. 내가 아까 말한 건…”
  “키스, 해도 돼?”
  “...뭐?”

 

  너무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그웬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얼빠진 반문을 흘렸다. 하지만 호비는 진지해 보였다. 그의 큼직한 손이 그웬의 뺨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웬은 잠시 뭐라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눈을 감았다. 호비의 얼굴이 가까워지며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고,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그웬에게 닿아왔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입술 위를 달싹인 호비가 이내 뒤로 물러났다.

 

  “...네가, 안된다며?”
  “나는 안된다고 했고, 너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다고 한 적 없는데, 나도.”
  “거기서 눈 감으면 괜찮다는 신호인 건 전우주 공통이야, 그웬디.”

 

  장난스레 씩 웃는 호비의 얼굴에 그웬도 마주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긴장돼 있던 마음이 한결 느슨하게 풀렸다. 동시에 굉장히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웬디, 난 네가 여기 묵고 있는 상황을 착취할 수 없어. 네 마음이 취약해진 틈새를 이용할 생각은 더더욱 없고. 네가 돌이켜 후회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여전히 한쪽 뺨을 붙든 손이 부드럽게 그웬의 얼굴을 쓸었다. 소중한 걸 다루는 듯한 조심스러운 손길. 모른 척 했던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 그웬은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방금 키스한 건...나는 언제나 네게 키스하고 싶은데, 지금 정도는 너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고, 아마?”

 

  번지르르하게 잘 말하다 말고 마지막에 말끝을 살짝 흐리는 것이, 어째 그웬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아서 그웬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간만에 느낀 다른 사람의 온기가, 그를 향해 온전히 쏟아지는 무조건적인 애정이 그웬을 느슨하게 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안 해, 후회.”
  “다행이네.”
  “누가 혹시 널더러 날 착취한다고 하면, 내가 덮쳤다고 해. 그럼 괜찮지 않을까?”
  “아아, 우리 그웬디의 명예를 위해 결코 그럴 수는 없지. 그러느니 내가 파렴치한이 되는 게 차라리 나아.”

 

  극적인 톤으로 과장하는 호비의 태도에 그웬은 그의 어깨를 찰싹 아프게 때렸다. 하여튼 거미들은 말만 참 잘한다니까. 그 기세에 떠밀려 뒤로 털썩 주저 앉은 호비는 뭐가 또 웃긴지 실실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
  “그냥,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호비는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생각하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웬이 재촉하듯 눈을 치켜떴지만, 그는 그저 하하, 웃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듣지 못한 말이 궁금했지만, 어쩐지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호비의 얼굴에 그웬은 마주 미소지었다. 평화롭고 한가한 오후였다.

'Spider Man:Across the Univer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timacy (4)  (4) 2023.08.13
Intimacy (3)  (0) 2023.07.24
Intimacy (2)  (0) 2023.07.16
Intimacy (1)  (0) 2023.07.09
Posted by 깜장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