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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숭고의 시대

 

  그의 장례식은 영웅의 장례식이었다.

  테다스의 그 어느 엘프도 개러헬, 네 번째 대재앙의 영웅만큼 웅장한 의식 속에 잠든 이는 없을 것이다. 황량한 테다스의 겨울 대지를 가로질러 왕과 황제들이 장례식에 참석하려 줄을 이었고, 혹자는 왕자나 마지스터를 대신 보내기도 했다. 제단을 위한 향료와 귀한 나무들도 쏟아져 들어왔다. 마침내 당일, 맑고 청량한 차가운 스탁헤이븐의 야외에는 세상의 내노라 하는 명사들 전부가 어떻게든 자기 존재를 표시하려 모여든 든 보였다.

  그들은 그의 시신을 닦아, 눈처럼 하얀 아마포로 감싸 제단 위에 눕혀놓았다. 마도사와 템플러, 회색 감시자, 개러헬의 전우들 모두 엄숙한 얼굴로 늘어서 있었다. 돌의 사생아들과 주인없는 자들, 무너진 탑의 일원들 역시 그들을 추방한 다른 모든 이들과 동등하게 자리했다. 물론 루비 드레이크 역시 은빛 갑옷을 입고 애도의 검은 면포를 두른 아마디스와 함께 자리했다.

  굽은꼬리는 제단 위 주인의 발치에 몸을 말고 누워있었다. 털을 고르게 빗고 얼룩무늬 섞인 하얀 날개로 심한 상처를 덮어서 가려놓아, 녀석은 그저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털이 무성한 왼쪽 굽은 귀가 곧게 위로 뻗어있어, 다시 들을 일 없는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값비싼 향유와 단 향의 약재가 마른 장작 주위를 두르고 있었다. 죽은 영웅을 위한 웅장한 흑요석 제단 아래, 악마의 군주의 뿔 중 가장 큰 한 쌍이 전리품 삼아 놓여있었다. 이세야는 그것들이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 치워졌다가 개러헬의 무기와 갑옷과 함께 와이스하웁트로 보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회색 감시자들은 동생을 위한 기념관을 만들 것이다. 용기와 희생과 그의 이름 위에 붙일 그 모든 가치들을 기리는 성소로.

  로브를 걸친 성가대가 제단 주위로 둘러서서 창조주를 찬양하는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회색 머리의 챈트리 주교가 푸른 연기가 나는 향로를 기울이며 성구를 읊었다. 이세야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보고 있지 않았고, 귀로 들으면서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홀로 애도하는 중이었다. 이 날 모인 이들이 아무리 예를 다해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한들, 테다스는 지금 슬픔이 아닌 기쁨과 환희를 누리고 있었다. 악마의 군주가 죽었다. 네 번째 대재앙이 끝났다. 긴 악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눈앞엔 평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동생과 누구보다 가까웠던 아마디스조차도, 눈물을 뒤로 한 채 앞으로 전진해야 할 자신의 책무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스탁헤이븐과 루비 드레이크가 그를 필요로 했고, 그의 그리폰 스모크는 굽은꼬리와의 사이에서 생긴 알을 배고 있었다. 그의 앞날에는 광영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세야에겐 그렇지 않았다.

  악마의 군주의 죽음은 그 엘프의 육체를 잠식하는 타락을 늦추는데 조금도 도움되지 않았다. 마지막 머리 한 올까지도 다 빠져버렸고, 오염의 회색 얼룩은 머리통을 뒤덮었다. 머릿 속을 채우던 광기의 속삭임은 훨씬 미약하고 흐려져, 다급한 외침 같던 예전에 비하면 먼 꿈결에서 들리는 웅얼거림 같았지만...여전히 그곳에서, 조용한 순간이면 다시 그를 사로잡았다.

  머지 않아 그는 콜링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는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그 생각은, 이제는 차라리 반갑기까지 했다. 형용할 수 없이 무거웠던 그 짐을 내려놓고, 마침내 쉴 기회가 오는 것이다.

  멀지 않았어. 이세야는 성화 봉송자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과, 붉은 불꽃이 동생을 감싸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멀지 않았어.

 

* * *

 

  한 달이 지나자, 그 안식의 약속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졌다.

  이세야는 그 자신의 유령과의 싸움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길 그 무엇보다도 원했으나, 지금 그는 레바스를 타고 와이스하웁트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폰 때문이었다. 대재앙이 끝난 뒤, 녀석들은 기묘하게 굴고 있었고, 감시자들 중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상현상은 헤인 요새에서 머물던 녀석들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수석 감시자는 이세야를 안더펠스로 불러들였다. 콜링을 위해 떠나기 전, 그 엘프가 그리폰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길 바라며.

  이세야는 자신이 달리 도와줄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가 뭐였던 간에, 헤인 요새의 개체들로부터 이미 널리 퍼져나간지 오래였다. 게다가 레바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그리폰들은 이제 타락이 급속도로 진행된 그를 회색감시자보다는 어둠의 피조물에 가깝게 여겨 경계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명령은 명령이었고, 사실 그 영광스런 야수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기에, 그는 명령을 따랐다.

  하지만 와이스하웁트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한 때 그리폰이었던 것들의 음울한 모사품이었다.

  둥지는 거의 비어있었다. 어느 정도는 잔인했던 지난 몇 년 간의 손실 때문일 터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회색 감시자들이 여전히 테다스 전역에 흩어져, 갓 피어오르는 평화의 시기 앞에 각 국가와 새 협정을 맺으러 다니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쳐도, 와이스하웁트의 산 둥지가 이렇게 많이 비어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고, 둥지지기에게 들은 그 이유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놈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습니다." 남자가 설명했다. 그는 둔세인이란 이름의, 작달막하고 옹골진 체구와 그을린 갈색 피부를 가진 사내였고, 얼굴엔 곰보자국과 미소 위를 가로지르는 칼자국이 있었지만, 성품만은 유순한 편이었다. 그는 젊은 신병 시절, 배고픈 그리폰의 부리에 왼손 손가락 세 개와 엄지의 일부를 잃고도 손으로 직접 먹이를 줘가며 그 녀석을 회복시켰다고 했다. 삽십 년도 더 된 그 사고 이후로도, 이 날개달린 피조물을 향한 그의 애정에는 변함이 없는 듯 했다. 둔세인은 일평생을 와이스하웁트의 그리폰을 돌보며 살아왔고, 이세야는 그의 얼굴이 이토록 슬퍼보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뜻입니까?" 이세야는 물었다. 엘프는 후드를 이마까지 눌러쓰고 검푸른색 스카프로 얼굴 아래쪽을 가리고 있었다. 흉물을 가리려하는 나병 환자 같은 모습이었지만 진실이 오히려 더 끔찍했고, 그는 오랜 친구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이세야는 마지막 품위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따라오십시오.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이세야를 데리고 관리가 안된 계단을 따라 올라갔고, 두 사람의 그림자 위로 은빛 겨울서리가 덧씌워졌다. 발 아래 사락사락 밟히는 눈을 딛고 높은 성벽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자, 그리폰들이 식사를 하는 마당 아래 감시자들이 염소나 양을 던져놓는 돌로 된 넓은 그릇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염소나 산양은 들어있지 않은데도, 연회색 돌바닥 위에 갓 흘린 듯한 김이 올라오는 선혈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하얗게 내리쬐는 햇살 사이로 눈을 가늘게 뜬 이세야는, 한 마리 그리폰이 마당 주위로 뱅뱅 돌며 다른 한 마리를 쫓는 모습에 둘이 놀고 있는 거라 생각했지만 - 다른 한 마리의 피가 허공으로 치솟는 순간 그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왜 싸우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둔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무력한 태도로 답했다. "숫놈들이야 때때로 발정기가 온 암놈이 근처에 있을 때 싸운다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둥지엔 암놈이라곤 없었습니다. 새끼를 근처에 둔 어미들도 때때로 싸우곤 하지만, 그 역시 없던지가 꽤 됐고요. 허기 때문에 싸운다기엔 음식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놈들은 보통 이곳이 공동구역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놈들이 서로와 싸워대고, 그 정도도 매일같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상대로 싸우는데 그쳤는데, 한 2주 전부턴 사람들까지 공격하더군요. 부상이나 사나움 때문에 잠재워야 한 개체가 열둘은 되는 것 같습니다."

  등 뒤를 쓸어내리는 차가운 손가락처럼, 어떤 불안감이 이세야의 머릿 속을 스쳤다. "한 녀석만 관찰해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어떤 녀석을 원하십니까?"

  "누구든 괜찮습니다." 그는 잠깐 멈췄다가, 생각을 다시 했다. "아니, 잠시만요. 저들이 전부 싸우고 있는 거라면...헤인 요새에 한 번도 간 적 없는 녀석이 좋겠군요. 부탁합니다."

  "이쪽으로." 둔세인은 그를 데리고 담 안쪽의 둥지와 밀짚으로 덮인 복도를 지나, 남쪽으로 창이 뚫린 와이스하웁트의 아프거나, 다치거나, 나이 든 개체들을 모아두는 요양 둥지로 데려갔다. 회색 감시자들은 새끼들 역시 이곳에 모아두었지만, 지금 그 둥지들엔 낡은 얼룩과 거미줄만이 무성했다.

  "터스크는 우리 그리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녀석입니다." 둔세인은 작은 나무문 앞에 멈춰서서 설명했다. 이세야는 눈높이에 뚫려있는 창구멍을 통해 다른 둥지와 비슷하게 생긴 내부를 확인했다. 물양동이, 밀짚과 산양가죽을 깐 작은 둥우리, 그리고 산맥 방향으로 뚫린 구멍을 통해 햇살이 그대로 내리쬐는 넓다란 바위 하나.

  아주 늙은 그리폰 한 마리가 그 돌 위에 누워 햇살 아래 날개를 넓게 펼치고 있었다. 녀석은 늙어서 발과 꼬리뭉치 끄트머리의 털빛이 눈처럼 하얗게 세었고, 부리주변과 머리 뒤쪽의 깃털도 마찬가지였다. 터스크는 날개가 너덜너덜했고, 꼬리 역시 비루먹어 볼품 없었다. 놈은 귀가 아예 먹었거나, 거의 안 들리는 듯 했다. 이세야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던 녀석이, 조심스레 옆구리에 닿은 그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 쉰 울음을 내질렀다. 백내장으로 탁한 녀석의 두 눈은 이 가엾은 짐승이 안전히 날 수나 있을지, 혹은 날 수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웠다.

  놈은 단순히 늙은 게 아니라, 아파보였다. 콧구멍 주위와 부리 가장자리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보였다. 맥박은 지나치게 빠른 와중에도 그륵거리는 숨소리는 한없이 느렸다. 녀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잔기침이 섞여나왔다.

  무엇보다 거슬린 점은 짧게 깎인 네 다리 안쪽의 털과 깃털 위, 핥은 흔적인지 농포가 여기저기 잡혀있는 모습이었다. 부풀어오른 속살 표면이 꺼림칙하게 반들거렸고, 가까이 다가선 이세야는 늙은 그리폰의 피부 아래로 보랏빛 잉크처럼 얼룩이 번져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그 자신의 피부 같았다. 마치 어둠의 피조물의 오염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터스크?" 그는 작게 속삭였지만, 늙은 그리폰은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둔세인에게 등을 돌린 채로, 이세야는 손가락 끝을 찔러 피 한 방울을 내고 터스크의 발에도 똑같이 했다. 이 노쇠한 녀석이 배식장에서 싸우던 두 그리폰만한 분노를 품고 있을 거라 믿기는 힘들었지만...어느 쪽이든 그의 주문이면 진실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영계의 자락을 붙들고 피와 마법의 흐름을 따라 터스크의 마음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거친 붉은색 증오가 그를 맞이했다. 늙은 그리폰의 정신은 핏빛 분노의 바다 같았고, 그저 너무 늙고 쇠약해 행동으로 그 증오를 뿜어내지 못했을 뿐, 터스크의 머릿 속을 요동치는 감정에선 할 수만 있다면 모두를 죽여버리고 말았을 거라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모든 감시자들과, 모든 그리폰들과, 마침내는 그 자신마저도. 놈은 근육을 따라 맥박치는 이형의 질병이 자신의 뼛속까지 파고든 걸 느끼고 있었고 - 감시자들에게도, 다른 그리폰에게도, 그가 파괴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에서 그와 똑같은 것을 느꼈다. 진저리쳐지는 혐오감이 놈을 소진시켰다.

  이세야는 충격에 빠져 물러났다. 그는 단연코 한 번도 터스크의 정신을 건드린 적이 없었고, 녀석을 입단식에 밀어넣어 악마의 군주의 피를 마시게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분노는 때까치나 그가 변형시킨 그 어떤 놈들보다도 격렬했다. 그리고, 비록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지만, 터스크가 품은 증오와 타락은 그가 다른 녀석들에게 걸었던 마법에 연결돼 있었다.

  똑같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았다. 터스크의 정신에 드리운 분노의 붉은 장막에 묻혀 뚜렷히 구분하기는 힘들지언정, 그 그림자나 윤곽은 분명 그의 작업물이었다. 오염된 곰이 헐록으로부터 유래되어도 헐록과는 다른 것처럼, 변화하고 성장하여 다르고 새로운 모양이 되어 있긴 해도...그 기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물론, 그가 그리폰들의 정신을 왜곡시킬 때, 입단식을 마치 병처럼 생각하도록 하게 했지만, 그래서 놈들이 기침과 재채기로 피를 뱉어내긴 했지만...그렇다고 그가 심은 것이 실제 병인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놈들이 변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눈속임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정말 그랬을까?

  너는 혈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칼린이 그에게 기초적인 내용조차 제대로 가르치기 전, 그는 냅다 그리폰들의 입단식을 시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라 한들 과연 얼마나 더 잘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그저 형태만 빌려온다고 생각했던 행위가 실제로 병을 불러일으켰다 한들 누가 알 일인가?

  혈마법은 근본적으로 금지된 영역이었기에, 얼마 안되는 익힌 자들조차도 무지의 안개를 뚫어가며 개척하는 기술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직 대의를 위해 그 협곡을 침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동화 속의 멍청이들도 항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다소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그의 어설픈 시도가 예기치 않은 재앙을 불러들였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는 확신이 필요했다. 터스크에게서 물러나며 손에 묻은 피의 흔적을 지운 이세야는 복도에서 기다리는 둔세인에게 돌아갔다. "이 그리폰이 스탁헤이븐이나 아예슬레이그에 간 적이 있습니까? 그 어떤 전장에라도?"

  둥지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터스크는 그 어떤 전장에서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요. 놈은 대재앙 전부터 이미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해 안전하게 날 수가 없었습니다. 안도랄이 눈을 뜨기 전부터도 이 녀석은 와이스하웁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오래까지 버티고 있던 것만 해도 이미 놀라운 일이예요."

  이세야는 달갑지 않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그리폰들과 접촉한 적은 있고요?"

  "아주 잠깐씩, 놈들이 돌아왔을 때만요. 터스크는 가끔 요양중인 녀석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잘 못 보는 탓에 다른 녀석들을 거슬리게 하기 일쑤인데다, 이제는 누구랑 싸우게 둘만한 나이가 아니다보니. 다른 놈들이 재채기를 자꾸 하는 것도 걱정됐고요. 수석 감시자께선 별 일 아니라고 하셨지만, 터스크만한 나이에는 아무래도 조심해야죠. 아무튼, 이 녀석은 몇 년 간 따로 고립돼 있었습니다."

  "몇 년 정도입니까?"

  둔세인은 생각에 잠겨 미간을 찌푸렸다. "스탁헤이븐 전부터니까 - 5:21, 아니면 5:22 초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 때쯤 다른 녀석들과 마지막으로 같이 뒀던 것 같아요."

  2년. 어쩌면 3년 정도. 이세야의 머릿 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둔세인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리고 터스크가 제한된 노출과 수 년에 걸친 잠복기를 거쳐 이렇게 된 거라면...그리고 그의 증상이 어떤 병, 혹은 그 비슷한 것이라면, 퍼질 시간은 충분히 길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엘프는 대답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셨습니까?" 둔세인은 말문이 막힌 그의 얼굴에서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세야는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동료들과 상의해볼게요. 지금으로선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 제가 뭘 어떻게 해야할까요?"

  "해야할 일을 하세요." 그는 흰색 부리의 늙은 그리폰을 무력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 * *

 

  세 달 뒤, 이세야는 수석 감시자가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제불능의 난폭함"을 보이는 그리폰을 전부 잠재우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재앙 시기에 참전했던 녀석들 중 기침이나 재채기로 피를 토하는 녀석들 역시 전부 사살하라는.

  안티바에 있던 이세야에게 그 소식은 심장에 꽂히는 단검처럼 닥쳤다. 회색 감시자들은 이미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그리폰들을 소리 소문 없이 죽여왔으니, 공식 명령이 내려온 것은 그저 다른 국가들에게도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분노의 전염병이 와이스하웁트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문제로 수석 감시자의 도움을 요청해왔다는 뜻이었다.

  도움은 오지 않을 것이다. 회색 감시자들이 가진 해결책은 죽음 뿐이다. 수석 감시자의 명령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이세야는 여전히 어쩌다가,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알지 못했지만, 이것이 그의 탓임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폰들을 잠식해가는 선홍색 질병은 그가 대재앙 때 전투용 개체들에게 걸었던 의식과 연결돼 있었지만...이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게 정말 질병이라면, 피를 뿜어대는 것이 전파원인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실제 질병이 아니었다. 아니면 맞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그가 그저 만들어냈을 뿐인 것이,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답을 찾는 그의 임무는 와이스하웁트부터 시작됐다. 테다스에서 그리폰에 관한 기록을 가장 제대로 남겨놓은 이들은 회색 감시자들 뿐이었고, 그들은 그 어느곳보다 방대한 마법 서적 역시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대로, 둔세인과 다른 감시자들이 이미 답을 찾아 이것저것 들쑤셔 봤음에도 특별한 소득이 없었듯, 이세야 스스로 뒤진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와이스하웁트에서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자, 이세야는 자유동맹으로 향했다. 그가 둔세인에게 했던 말은 부분적으로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자신과 칼린 외에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혈마법사를 한 명도 알지 못했다. 회색 감시자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나섰던 얼마 안되는 이들은 전장에서 모두 죽었고, 많은 이들이 말레피카룸에 손댄 자신의 죄를 죽음으로 속죄하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을 내던졌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책이든 비밀 일기장이든, 혹은 암호로 쓰인 두루마리든 - 답을 줄만한 어떤 거라도, 하다못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제시해줄만한 것이라도 있을 것이다.

  혹여 그런 단서가 어딘가 있었다한들, 이세야는 스탁헤이븐에서 그걸 찾을 순 없었다. 커크월도, 탄터베일이나 오스트윅, 앤스버그도 아니었다. 컴버랜드의 피에 젖은 진흙이나 바다에 둘러싸인 와이컴의 잿더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티빈터 제국이었다. 티빈터의 마지스터들이 혈마법에 제법 관대하고, 심지어 반기기까지 한다는 점은 테다스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소문은 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혈마법사이고, 그만한 규모의 국가들 중 유일하게 티빈터만이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피를 갈구하는 마지스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세야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었지만, 티빈터 국경에서 접한 냉담한 반응에 생각이 바뀔 뻔 했다. 물론, 회색 감시자는 테다스의 구원자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그들도 동생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빈터는 이세야에게 줄 수 있는 특권은 그저 그 땅에 들어서서 즉시 노예시장에 팔려가지 않는 것까지임을 분명히 했다. 공공 도서관에서조차 그를 노골적으로 꺼렸고, 마탑의 마법 서적 역시 허가되지 않았다. 일상적인 대화 이상으로 말을 이어가려는 마법사도 없었고, 그마저도 냉랭하기 그지 없는 태도였다. 뇌물로도 그 경계를 허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고, 비밀스런 지식을 공유하자 해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단호하고 확고한 거절만이 있을 뿐이었다.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그는 결국 포기했다. 10년 전이라면, 하다못해 5년 전 정도만 됐어도 이세야는 티빈터의 침묵을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고, 차가운 예절로 된 그 벽에 머리를 박아대며 어느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덤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겐 그럴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병든 그리폰에 대한 보고서가 매일 새로이 들어오고, 하루하루 죽음이 쌓여가고, 밤마다 꿈에서 콜링이 들려오는 지금에는. 티빈터의 완고함을 저주하며, 이세야는 비참의 제국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다음이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칼린은 안티바로 돌아가, 산산조각난 국가의 영광을 재건하는 고향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륙지역에는 여전히 어둠의 피조물 잔당과 오염된 짐승들이 떠돌았고, 음식은 부족하고 오가는 길도 무사히 남아있지 않았다. 악령과 안식을 찾지 못한 시체들은 피에 젖은 전장을 맴돌았다. 나라를 떠난 이들 대부분은 쉽게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나라에서 굳이 돌아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안티바 시티나 리알토만 근교 도시들은 영원히 비워 두기엔 너무 입지가 좋은 지대였고, 몇몇 담대한 이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한 고된 작업에 착수했다. 칼린은 개러헬의 장례식이 끝나마자 그 무리에 합류했다.

  그 날 이후 이세야는 그와 만나거나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특별히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었고, 그저 두 사람 다 그 엘프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예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슬픔과 죄책감이 싸워대는 지금, 그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상대가 달리 없었다. 칼린은 분명 혈마법의 문을 열려는 그에게 경고를 던진 이였지만, 동시에 그에게 그 열쇠를 쥐어준 이기도 했다.

  스스로 짊어진 자기혐오의 짐을 떠넘기려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었고, 테다스 어디에든 이세야가 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었더라면, 그는 칼린에게 그가 품은 회한을 함께 떠안게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는 안티바 시티로 날아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칼린은 해안가에서 장력마법과 화염주문으로 항구의 잔해를 정리중이었다. 안티바의 부는 항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으니, 해상 무역을 다시 여는 것이야 말로 망가진 나라의 재산을 회복하는 길이었다.

  그 사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회색빛 도는 수염을 길렀지만, 이세야는 금방 그를 알아봤다. 갈매기 무리가 자신들의 아침을 망쳐놓은 마법사에게 날개를 펄럭이며 깩깩거렸다. 안티바에서 투덜거리는 새떼 따위의 순수한 광경을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이세야는 미소지었다. 그는 칼린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정리하는 걸 기다렸다가 자욱한 먼지를 뚫고 다가갔다. "아직도 뭘 부숴대고 있어? 그쯤 했으면 지겨워졌을 줄 알았는데."

  "이세야!" 나이 든 마법사의 얼굴에 즉각 진심어린 미소가 떠올랐고...걱정어린 기색이 그 위에 섞여 있었다. 겨울의 막바지라, 얼굴을 두른 겹겹의 천이나 두 손을 싸맨 장갑을 추위 때문이라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칼린은 이세야가 그렇게 많은 옷가지를 두르고 있는 이유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그냥 방문 차. 잠깐 시간 돼?"

  "물론이지." 칼린이 지팡이로 가리킨 멀지 않은 건물은 다른 곳보단 좀 더 방음이 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새것처럼 보이는 나무가 창문 위로 못박혀 있어 늦겨울의 찬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단 것인지 푸른 생선에 왕관을 씌워놓은 그림의 단순한 간판이 문 위에 걸려있었다. "푸른지느러미 대왕. 평소 식사하는 곳이야. 요리사 실력이 다른데보다 낫고, 요샌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있어서 더 괜찮지. 보통 땐 에일을 제공하고, 와인도 가끔씩 들어와."

  "개인 객실은?"

  "날 그 정도로 그리워한 줄은 몰랐는데." 칼린의 농담기 서린 눈빛은 그가 마주 웃어주지 않자 금세 잦아들었다. 가려진 얼굴 위에서 어색하게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던 칼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고마워." 그는 칼린을 따라 여관으로 들어섰다. 깔끔한 내부는 따뜻한 식사를 즐기는 어부 몇몇과 여관 주인에게 들고온 상품을 팔려는 구렛나룻 무성한 행상인까지 있어 제법 소란스러웠다. 가구는 짝이 맞지 않는 잡동사니 모음이었지만, 제대로 손본 티가 났다. 이세야에겐 그 모양이 마치 안티바의 회복을 약속하는 징조처럼 느껴졌다.

  칼린이 들어서자 여관주인과 행상인이 익숙한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객실로 올라가는 그들에게 달리 말을 붙이진 않았다. 아마도 마법사의 손님에 대한 불문율을 익힌 듯 했다.

  위층에 도착하자, 칼린은 문을 닫고 열쇠를 근처 탁자 위에 떨궜다. "그럼, 무슨 일로 이렇게 비밀스러운 거지?"

  이세야에겐 대답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혈마법 때문에." 그 단어를 입에 올리자 겨우 붙들고 있던 의지가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가까운 벽에 미끄러지듯 주저 앉아 까끌거리는 석고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칼린을 직접 보면서 말하는 것보단 그 편이 쉬울 것 같아, 두 눈을 감았다. "내가 그리폰들에게 한 일, 그 입단식이...다른 녀석들에게 퍼지고 있어. 놈들 전부가 병들어가고 있어. 대재앙의 질병이랑도 비슷하지만, 퍼지는 방식이 달라. 아마 공기를 통해서일 거야. 아니면 피. 어느 쪽이든, 그게 녀석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이고 있어.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라도 도와줄 방법이 있나 해서 온 거야."

  오랫 동안, 칼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길어지는 침묵에 이세야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나이 든 마법사는 아무 말이 없었고, 마침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없어."

  "없다고?"

  "도와줄 방법이 없어. 혹시 가능하다 한들, 내가 그럴지 모르겠지만 -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난 도와줄 수 없어."

  "왜지?" 이세야가 물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움은 금세 잦아들었고, 낡은 공허함이 다시 그 자리를 채웠다.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종말을 향한 한 걸음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느낌이.

  "챈트리의 비둘라스 수사의 저서에 따르면, 마법은 그 고유의 법칙과 논리가 있고, 각각의 주문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하지. 그는 가설에서, 혈마법의 위험성이란 그 존재가 악령을 품고 태어나기에, 그 대가 역시 감춰져 있다는 데 있다고 했어."

  "비둘라스 수사는 마법사가 아니었어." 이세야가 반박했다. "나도 그 글은 읽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만 그 자는 일생 한 번도 주문을 써본 적이 없잖아. 그는 마도사가 아니라 신학생이었지. 그 자신이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세상의 법칙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지어낸 거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지난 몇 년 간, 나는 그 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어. 그래, 어쩌면 그건 그저 추측일 뿐이고, 그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하지만 어쩌면 맞는 것일 수도 있어. 어쩌면 그 생각, 혈마법의 진짜 위험은 그것이 희생에서 능력을 끌어내기 때문도, 탐욕스럽고 야심찬 이들을 유혹에 빠트려 주문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도록 하게 하기 때문도 아니라는 그의 생각에, 진실이 담겨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 위험성은 단순히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몰이해 때문에 우리의 의도가 순수하더라도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일지도.

  네 말이 맞다면, 그리폰들이 우리가 대재앙 때 했던 일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거라면 - 그리고 이것조차 그저 '가정'일 뿐이야, 이세야, 너는 아직 그게 정말 원인인지조차 모르고, 알 수도 없을 거야 - 그런거라면, 대의를 위한 우리의 시도가 이 일을 이끌어낸 거야. 우리가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시작이었을 뿐이고, 실제 대가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정말 그런 거라면 -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추측일 뿐이야 -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다시 혈마법에 손을 대서 이걸 낫게 하리라 어떻게 장담할 수 있지? 내 시도가 이 세상에 더 안좋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어?" 칼린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는 혈마법을 다시는 쓰지 않을 거야. 마탑은 대재앙 때 회색 감시자들에게 조력한 혈마법사들을 눈감아주고 있지만, 그 인내심은 내가 말레피카로 알려지는 순간 끝날 거야. 난 대재앙이 끝난 뒤로 피의 힘을 빌린 적이 없고, 누구도 날 의심할 이유는 없지...하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야. 그들은 언제나 날 눈여겨 보고 있어. 그래서 널 도울 수가 없어. 하지만 설사 내게 그럴 능력이 있다한들, 그렇게 할 것 같진 않아. 우리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순간이 닥칠 때까지 혈마법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나는 다시는 그 눈먼 도박에 손대고 싶지 않아."

  그는 이세야의 눈에 담긴 고통스런 눈빛에 말을 멈추었다. "미안해-."

  이세야는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다 자신의 망토에 넘어질 뻔 했다. 그에게 물어본 것도, 여기까지 온 것도 전부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가 새 삶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데, 이세야가 그에게 자신의 슬픔을 나눠지려 오다니. "아니, 괜찮아. 당신이 아무 희망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 나는 도와줄 수 없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말한 건 혈마법이 네가 생각한 것보다 큰 대가를 요구할 거라는 거였어. 하지만 그게 꼭 아무 희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그런 뜻이야. 난 이미 모든 곳을 뒤져봤어. 와이스하웁트, 자유동맹, 심지어 티빈터 제국까지도. 그 어디에도 답이 없어.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 열쇠는 문 옆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여관주인이 어딘가에서 작은 조각품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점토로 빚은 통통하고 동그란 배를 가진 익살스러운 드래곤 형상의. 열쇠고리가 그 통통한 주둥이에 걸려 있었다. 이세야가 그걸 잡아채자, 드래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각은 깨어지며 형태없는 사기 파편으로 흩어졌다. 조각들을 넘어 열쇠를 문에 꽂은 이세야는, 칼린이 문을 잠근 적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놀란 얼굴로 칼린을 돌아봤다. 그의 표정을 오해했는지, 칼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신경쓰지 마. 내가 치울게."

  "그게 아니라, 여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칼린은 다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는 몸을 숙여 드래곤의 파편들을 바닥에서 줍기 시작했다. "어쨌든, 네가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게 뭐가 그렇게 문제야? 너는 언제나 누구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냈어. 공중을 나는 캐러반, 도피처 건설...그리고, 그리폰들의 입단식까지도. 그 모든 주문들은 너만의 창작품이고, 너는 그걸로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한 일들을 해냈어."

  이세야는 한 손을 문고리에 짚은 채, 주의깊은 태도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내가 너한테 말한 건 왜 내가 널 도와줄 수 없는지 뿐이야. 하지만 내 이유가 너의 이유가 될 필요는 없지. 날 가로막는 한계가 너까지 막을 필요는 없어. 이전에도 아니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 나는 분명 혈마법의 위험과 함정에 대해 너에게 경고했지만 - 악마의 군주가 목줄기를 노리고 있는 순간에 가능한 한 최대한 말이야 - 한 번도 너를 막은 적은 없었어. 다른 마법사들에게 답을 찾으려 하지마. 책이나 두루마리, 악령도 아닐 거야. 네 안을 들여다 봐. 네가 이걸 만들었어. 너 말고 그 누가 이걸 되돌릴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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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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