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9:42 용의 시대

 

  "또 어둠의 피조물에 대해 읽고 있는 거야?" 도서관을 나가던 중, 발리야는 책장에 등을 기대 앉은 세카를 보고 멈춰섰다. 소년의 무릎에는 금박을 입힌 거대한 책 한 권이 놓여있었고, 스무 걸음 거리에서도 종이 위로 무시무시한 쉬릭과 헐록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지." 세카는 순박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 봤다. "그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잖아, 안 그래?"

  "이런 시간에까진 아니지. 자정도 지났다고." 발리야는 지팡이를 슬쩍 들어보였다. 푸른 마노석이 내뿜는 빛과, 세카의 지팡이에 달린 월장석에서 나는 빛만이 도서관 안의 유일한 광원이었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고, 다른 호스버그 마법사들은 저녁 식사 후 쉬러 간 뒤였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복도에 남아있는 건 두 사람 뿐이었다. 감시자들은 해가 진 뒤 촛불 사용에 제한을 뒀다. 밀랍은 비싼 재료였기에, 마법사들은 응당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야 했다.

  발리야도 감시자들이 초를 아끼는 이유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했지만, 해가 진 후의 조용하고 어두운 도서관은 유달리 마음을 동요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한두 명의 마법사로 넓다란 방 전체를 밝히기란 턱없는 일이었고, 그들이 만든 작은 빛의 구는 메아리 같은 어둠 속에 길잃은 도깨비불처럼 보였다. "뭐한다고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있는 거야? 여기 있으면 뭔가 불편하지 않아? 뭔가...빈 느낌 말이야. 게다가 저 상자 안의 뼈라든가, 벽에 걸린 무기들 하며, 악마의 군주의 뿔까지..."

  세카는 다시 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는 책장을 넘겨 끔찍하게 생긴 브루드마더와 징그럽게 꿈틀대는 알을 묘사해둔 장을 펼쳤다. 삽화를 그린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제법 훌륭한 해부학적 지식과 기괴하게 뒤틀린 정신을 가진 자인 듯 했다. "그냥 도서관이지, 뭐."

  "꺼림칙하고 기이한 것들로 가득찬 도서관이지." 발리야가 웅얼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어둠의 피조물에 대한 책을 읽고도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지 신기하단 말이야."

  어린 마법사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어쩐지 불편한 웃음이었다. "글쎄, 어느 정도는...소름끼치긴 하지, 그래. 밤이라면. 하지만 나를 잠 못들게 하는 게 있다면, 그건 이 책들을 끝내지 못하고 잠든다는 것일 거야."

  "왜?" 발리야는 당황해서 반문했다. 이미 이세야의 일기를 읽는 것만 해도 충분히 그의 꿈을 어둡게 했다. 그는 깨어 있는 시간에 그 이상 공포스러운 기록을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그는 최근 생각지 못했던 취향에 눈을 떠, 여가시간이면 궁정 낭만소설이나 개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읽곤 했다. 고전적인 안티바식 희극조차도 때론 너무 폭력적이라 그다지 즐길 수가 없었다.

  "이곳은 테다스의 가장 훌륭한 지식의 보고 중 하나야." 세카가 대답했다. 그는 펼쳐진 책장 위, 브루드마더의 부푼 몸집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어둠의 피조물과 타락, 고대신에 관한 민간 전승, 이 모든 게. 여기선 손만 뻗으면 닿을 수가 있어. 그리고 우리는 대재앙의 전쟁에 떠밀리지 않은 채, 평화로운 시기에 여기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가 시간에 공부할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소수인 거야. 나는 어떻게 너희가 잠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돼."

  "전쟁이 없을 거라는 부분에 대해선 그리 확신하지 못하겠어." 발리야가 대답했다. "남쪽에서 불안한 소문이 계속해서 들려오나본데, 점점 심해지나봐."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와이스하웁트 몫이 아니야. 회색 감시자는 언제나 중립이었어."

  "너는 회색 감시자가 아니잖아."

  "아직은 아니지." 두 사람의 지팡이가 얽혀 만들어내는 불빛 아래, 소년의 눈이 그를 마주봤다. 세카는 항상 나이에 비해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발리야보다 두 살 어린데도 불구하고, 발리야는 그가 항상 그들 누구보다도 성숙하고 현명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밤, 그의 얼굴에서 빛나는 확고함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것이었다.

  "넌 정말로 감시자가 되고 싶구나." 그는 감탄하듯 말했다.

  "맞아." 세카가 대답했다. "회색 감시자는 테다스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 마법사도 템플러도, 쿠나리도 엘프도 아닌, 그 모두를 위해. 동등하게. 그게...그게 나한테 중요한 거야, 발리야." 그 조숙한 확고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는 다시 반쯤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세카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다시 책으로 고개를 떨궈 민달팽이처럼 생긴 몬스터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에 함께하고 싶어. 이들이 자신들의 좋은 점을 다시 되새기게 만들고 싶어."

  "감시자들이라고 언제나 좋은 일만을 해온 건 아니야." 발리야는 그렇게 말하며 도서관 벽에 걸린 으스스한 트로피들을 올려다 봤다. 전투 깃발, 전리품 무기, 오우거의 뿔...그 하나하나가 어찌보면 고난의 기록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세야의 기록이 그들이 내려온 미심쩍은 결정이나 감시자들이 치른 냉혹한 대가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아닐 것이다. 네 번째 대재앙의 피묻은 시간동안, 테다스의 영웅들은 명백하게 영웅적이지 못한 결정 역시 내려왔다.

  "물론 아니겠지." 세카가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그 어떤 제국도, 어떤 신념도, 살아있는 존재의 그 어떤 노력도 결점이 없던 적은 없었어.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는 거고, 그래서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성공에 가까웠다는 거야."

  "그럴지도." 발리야는 불확실한 태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노력하다가 장대하게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시도조차 안하는 것만한 실패가 있으려고."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정말 그런 건지 난 잘 모르겠어." 엘프는 어깨를 으쓱했고,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 다시 문으로 향했다. 돌 아치 아래를 지나 떠나기 직전,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돌아섰다. "여기 처음 왔을 때, 우리가 감시자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할만한 걸 찾아야 한다고 네가 말했던 거, 기억해?"

  "응."

  "만약...만약 내가 그런 걸 찾았고, 다만 이게 그들이 가져도 될만한 건지 확신이 안 선다면 어떨 것 같아?"

  세카의 어두운 눈빛에 호기심이 스쳤지만, 그는 당연스레 묻고 싶을 질문을 잘 억눌렀다. 그 대신 그는 펼쳐진 책 위에 손가락을 모아 얹고, 생각에 잠겼다. "우선은 왜 그렇게 느꼈냐고 묻고 싶을 거고, 혹시 그걸 맡을만한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 아니면 그게 누가 가져도 될만한 물건이긴 한 건지 물어볼 것 같아."

  "그 질문들 중 어느 것도 답을 모르겠어." 발리야가 대답했다. "단지 그들이 애초부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만은 알아."

  "그럼 내 생각에 네가 해야하는 건, 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은지 판단하는 거야."

  "그거라면 내가 알지." 발리야는 말했다. "아마도 말이야. 고마워."

 

* * *

 

  "붉은 신부의 무덤이 어딘지 알아요?" 발리야가 물었다.

  캐로넬은 땀에 젖은 웃옷을 벗던 도중 멈춰 서서, 눈썹을 치켜올렸다. 겨울의 초입, 차가운 공기 덕에 상쾌한 아침이었고, 훈련실의 열린 창문으로 새어든 산바람에 그의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는 한 시간 좀 넘게, 묵직한 감시자 훈련용 목검으로 천을 덧댄 훈련 인형을 두고 훈련하던 중이었다. "그걸 물어보러 온 거야?"

  "거길 찾아야 해요." 발리야는 불편한 태도로 말했다. 그는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연장자 엘프가 의자에서 수건을 집어들고, 살얼음 언 물그릇에 끄트머리를 적신 뒤, 어깨의 땀을 닦아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당신이 한 번 가본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캐로넬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땀에 젖어 짙어보이는 머리칼에 한 줌 물을 적셔 쓸어넘긴 뒤, 손을 털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말린 뒤, 새 웃옷을 몸에 걸쳤다. "살면서 한 번이면 족할 실수기도 했지.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는지도 들었을 텐데. 왜 그런 짓을 다시 하려는 거지?"

  "딱히 다시 하겠다는 건 아니예요. 하지만 거기에 뭔가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차가운 바람에 나무 창틀이 덜그럭거렸다. 눈앞의 엘프와 달리, 발리야는 조금 전 훈련실까지 걸어온 거 외에 딱히 격렬한 활동을 하지 않은 터였다. 그는 바들바들 떨면서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토끼털로 된 망토는 감시자들의 두터운 양가죽 여우털 외투만큼 따듯하진 않았지만, 가진 거라곤 그것 뿐이었다.

  "굳이 거길 가는 위험을 감수할만큼 중요한 게 있다고? 거긴 기어다니는 시체들 뿐이라고, 문자 그대로 말이야."

  "나도 알아요."

  붉은 신부의 무덤이 항상 그런 이름이었던 건 아니다. 떠돌이 언덕 안쪽 깊은 곳에 위치한 그곳은 한 때 붉은 신부의 성소라 불렸었다. 가파른 협곡 사이 절벽마다 작은 동굴 여러개가 파여있고, 바람에 깎여나간 안드라스테의 형상이 입구 사이 절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안더펠스의 성모상이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도 있지만, 메르다인의 하얀 바위를 이용한 이쪽이 더 거대한 규모이긴 했다 - 하지만 안더펠스의 성모상이 여전히 테다스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찾는 성소인 반면, 붉은 신부에겐 더 이상 방문자가 없었다. 그곳이 저주받았다는 소문은, 와이스하웁트의 회색 감시자들에겐 단순한 소문 이상의 이야기였다.

  한 때, 붉은 신부를 둘러싼 동굴에 안더펠스의 황량한 평야에서 고립된 채 창조주의 진리를 명상하고자 한 무리의 금욕주의 수도사들이 자리를 잡은 일이 있었다. 그들은 동굴에 그물로 엮은 사다리를 설치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혹은 성소를 찾아온 순례자들이 베푼 구호물품을 받는 용도로 사용했다.

  축복의 시대 말기, 어둠의 피조물이 성소를 습격했고, 오랜 포위에 시달린 끝에 수도사들은 동굴 안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발리야는 최선을 다해 역사서를 뒤져봤지만 정확히 어떤 것들이 그들을 죽인 건지 찾을 수 없었다. 아는 이가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들 중 한 명, 혹은 몇몇이 마법사였을 수도 있고 - 미신적이거나 우둔한 이들이 자신의 마법능력이 처음 발현된 후, 창조주의 보호를 갈구하며 고립된 신앙의 삶을 택하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마법사가 실수로 악령을 불러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절박한 상황에서 어둠의 피조물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일부러 불러냈을 수도. 역사는 그 부분을 밝혀주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 수도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끔찍한 갈증과 허기로 죽어갔을 거란 사실이었다. 수도사들이 불러낸 것이든 아니든 간에 악령들은 죽어가는 그들에게 이끌려 나타났고, 한 때는 성소였던 곳에서 그들은 유해조차 곱게 잠들지 못했다.

  발리야가 알고 있는 건 그게 다였다. 그리고 캐로넬이 한 무리의 감시자들과 함께 폭풍 속에 조난되어 그 절벽 부근에서 쉼터를 꾸려야 했다는 것도. 떠난 인원은 일곱 명이었지만, 돌아온 건 세 명 뿐이었다. 그들이 붉은 신부의 성소에 일어난 일의 전말을 알아낸 것도 그 때였다.

  "내 생각엔." 발리야가 말했다. "우리가 그 안에서 마주칠 것들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고 간다면, 붉은 신부의 무덤도 반드시 극복하지 못할 곳만은 아닐 거예요."

  "넌 거기 없었잖아." 캐로넬이 대답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가만, '우리'라니 무슨 말이야?"

  "혼자 갈 생각은 없어요. 당신이 같이 가주면 좋겠는데."

  회색 감시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 서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뻣뻣이 굳은 턱을 움직여 느리게 입을 열었다. "발리야. 내가 그 저주받은 곳에 대체 왜 다시 가겠어? 거기에 있는 거라곤 악령과 시체 뿐이야 - 내 친구들의 시체들도 포함해서."

  "나도 알아요."

  캐로넬은 벽을 박차고 나가 의자 위에 내려놨던 연습용 목검을 집어들었다. 목검을 다시 선반에 돌려놓는 동작엔 필요 이상으로 힘이 실려있었다. 분노와 자책감으로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진 채, 그가 대답했다. "우리는 어둠의 피조물을 사냥하러 간 거였어. 수상한 활동이 보고된 바가 있었고, 오우거를 봤다는 말도 있었지. 단순히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손님들을 맞이하는 동안 우리를 와이스하웁트에서 치워버리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수석 감시자는 그 소문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서 한 무리의 회색 감시자를 파견했어.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 갔어. 떠돌이 언덕에서 모래폭풍에 발이 붙들렸고. 우린 옛 수도사들의 동굴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너도 알다시피,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정확히 거기서 뭘 본 거죠?"

  "잠들지 못한 망령들, 그 밖에 뭐가 있겠어? 독니를 가진 스켈레톤, 날카로운 손톱으로 공격해오는 넝마주이 시체들. 놈들 사이엔 유령도 섞여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많은 형제들이 죽어나갔지. 우린 마법에 걸려 잠들었고, 일어나서 무기를 쥐었을 땐 악령과 그 꼭두각시들이 이미 우릴 둘러싼 뒤였어. 즉시 후퇴했지만, 그래도 반이 넘는 수를 잃어야 했어."

  "우리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들어간다면, 좀 상황이 나을 수 있어요."

  "가정에, 또 가정 뿐이군." 캐로넬의 금빛 섞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곱슬거리는 회갈색 양가죽 외투를 웃옷 위에 걸치고 목부분을 단단히 채운 뒤, 차가운 겨울 햇살과 바람을 들여오던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왜 거길 그렇게 가려는 거야? 거기그 엔 아무것도 없어, 발리야. 그저 뼈와 오래된 절망, 그리고 그 둘을 사로잡은 악령 뿐이야. 이제는 거기에 넷이 더 추가 됐겠지. 이유가 뭐든 간에, 그만한 가치가 있진 않을 거야."

  "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 엘프가 대답했다. "붉은 신부의 무덤에는 테다스의 역사를 바꿔놓을 만한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오, 이런, 그렇다면야 당장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오늘이라도 출발해야지. 하지만 네 계획엔 그게 뭔지 알려주는 건 포함돼있지 않을 테지?"

  발리야는 유감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와이스하웁트의 모든 회색 감시자들 중, 캐로넬만이 그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른 감시자들은 죽거나 입단식을 치르지도 않을지 모르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싫어서이든, 그저 자기들 일에 바빠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이든, 신병들에게 무심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불친절한 것도 아니었지만...감시자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은 외부인들을 철저하게 배제했고, 이세야의 일기를 읽으며 그 연대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어설프게나마 이해한 발리야로서도, 완전히 적응하긴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분명 친구 사이였지만, 캐로넬의 충성심은 아마 감시자들에게 속해있을 것이다. 발리야가 같은 위치였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지도. 하지만 그는 회색 감시자들이 자신을 놔두고 자기들끼리 이세야의 비밀을 파헤치러 가게 하고 싶진 않았다.

  "출발하면 알려줄게요." 발리야가 약속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떨림은 없었다. "와이스하웁트에 있는 동안엔 말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일단 여길 뜨고 나면 전부 말해줄 수 있고, 혹시 다 듣고 나서 그게 붉은 신부의 무덤까지 갈 정도의 일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같이 돌아오기로 해요. 그럼 나도 받아들일게요. 약속해요."

  "그러니까 이건 회색 감시자들한테만 비밀인 거구나, 나 말고." 캐로넬이 대답했다. 그는 마지막 창문까지 닫은 뒤, 마침내 발리야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말투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고통스런 기억의 흔적이 깊은 곳에 배어있긴 했지만, 그는 평소의 자신과 거의 비슷해 보였다. 거의.

  "꼭 그렇다기보단." 발리야가 말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말하기 전에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 뿐이예요."

  "그 이유란 게 대체 뭘까?"

  "붉은 신부의 무덤으로 날 안내해줘요." 그는 다시 말했다. "그럼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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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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