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etc. 2020. 11. 8. 18:21

2003. 06 ~ 2019. 09. 26

  보리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지났다. 류하와 딸기에 대해서 썼던 것처럼 보리에 대해서도 더 늦기 전에, 내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빨리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나는 아직도 보리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바랄 것이다. 아이가 최대한 나와 함께 오래 있길 바라되, 아파서 고생하다 떠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보리와의 이별은 참 '이상적'이었다. 갑작스런 흉수 증상으로 짧게 아파하다가 떠난 류하나, 식욕부진과 통증으로 한동안 쳐져 있다가 간종양으로 보내줘야 했던 딸기에 비하면, 보리는 크게 앓거나 힘들어하지 않다가 떠났다. 혹은 그랬다고 생각한다. 확신할 수 없는 건 내가 마지막 순간에 옆에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사실 휴가 중이 아니라 집에 있었어도 내가 어떤 신호를 알아차렸을지는 모르겠다.

  작년 1월 네덜란드에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2.6kg 정도였던 몸무게가 최근 1년 사이 점점 줄어서 2kg, 1.8kg, 마지막엔 1.6kg까지 조금씩 줄어갔다. 장모종이라 티가 안날 법 한데도 쓰다듬으면 척추뼈가 그대로 손끝에 느껴질만큼 야위었고, 뒷다리 근육도 많이 위축돼 식탁 의자를 뛰어오르다가 떨어질 정도였다. 식욕도 활력도 그대로인데 그냥 그렇게 점점 약해져갔다. 그 외에 달라진 점이라면 이전보다 훨씬 사람한테 치대고 꼭 붙어있으려 했던 정도? 아마 체온 유지가 힘들어서 추웠던 게 아닐까 싶다. 소파에 앉기만 하면 쪼르르 달려와서 냉큼 무릎이며 옆구리에 꼭 붙어서 고르릉 거리며 잠을 잤다.

  그래서 인사할 틈이 없었다. 공항에 가기 전 이마에 뽀뽀하고 쓰다듬으며 '언니 금방 올게, 엄마아빠랑 친하게 지내면서 잘 있어' 하고 인사할 때에는 상상도 못했다. 나한테 훨씬 의존적인 가하를 걱정하면 걱정했지, 누구든 사람만 있으면 금세 고르릉거리고 안기는 보리에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산책 가자고 조르고, 맛있는 거 달라고 조르면서 아버님이랑 친하게 지내겠지,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사진도 거의 매일 받았다. 매일 부모님이 번갈아 다녀가시며 무릎에 앉은 사진, 침대에서 자는 사진 같은 걸 보내오셨다. 예전에 잠시 그 댁에 묵을 때에도 정원 산책도 하고 거실에서 쉬기도 하며 친해졌던 터라, 두 분 다 보리를 참 예뻐하셨다. 그런 보리가 죽어있는 걸 발견한 아버님도 많이 놀라고 슬프셨겠지.

  그 날 나는 대만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맛있게 샤브샤브를 먹었고, 칵테일이나 한 잔 하자며 요씨랑 만나기로 한 술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요씨가 심각한 얼굴로 나한테 '보리가 돌아가셨어.'라고 말했다. Passed away의 한국어형을 그것 밖에 몰라서...지금 생각하면 역시 좀 웃긴데 단어를 듣는 순간에는, 즉각적으로 그 뜻이 머릿 속에 박혔는데도 이해가 안 돼서 '뭐?'하고 되물었고, 요씨는 다시 '보리가 돌아가셨어.'라고 말했다. 당장 눈물이 터져나와서 밖으로 뛰쳐 나가는 동안에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계속 '뭐? 무슨 소리야?' 하고 질문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이해와 의문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아, 갔구나. 하지만 왜?

  놀랍지만, 아주아주 놀랍지는 않은 일. 점점 야위고 자그마해져간 만 16살 고양이가 잠들듯이 세상을 떠난 일. 크게 앓거나 지병으로 고통에 시달리진 않았고, 그냥 더 이상 몸이 견디지 못하고 작동을 멈춘 일. 사람으로 치면 다들 호상이라고 할 만한 그런 일.

  엉엉 울다가 요씨한테 집에 가자고, 빨리, 그냥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예정된 비행기는 이틀 뒤 저녁이었지만, 어떻게든 빨리 가자고. 택시를 타고 짐을 맡아준 친구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에는 눈물은 안 나고 그냥 묵묵히 인터넷을 뒤졌다. 암스테르담 행 가장 빠른 비행기. 같은 항공사인지, 이전 표는 취소가 가능한지, 당장 오늘 밤 비행기가 과연 체크인이 가능한지, 온갖 경우의 수를 찾으며 심지어 밤 중에 공항까지 갔지만 결국 그 밤에는 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전화통을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한 끝에야, 저녁에 출발해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다.

  하루 차이. 그걸 위해 써야한 돈이 왕복 항공표보다 더 들긴 했다. 요씨는 나보다 이성적인 편이라 사실 일찍 돌아가기 위한 이 비용을 그리 내켜하진 않았다. 나도 이해는 간다. 일찍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다만 그렇게 대만에 하루 더 머문다는 게,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환승을 서너 번씩 해서 30시간이 걸려서 돌아가더라도, 돌아가는 길에 있으면 있었지 낯선 땅에서 '휴가'를 보내며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끝없이 자해를 했다. 팔을 물어뜯고, 손톱으로 피부를 긁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고 뺨을 때렸다. 자해 습관은 중고등학생 때까지 있다가 없어졌는데,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아서 자꾸 다른 데로 고통을 분산시켜야 했다. 당장 보리 옆에 있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하루 일찍 집에 돌아와, 가하랑 인사를 하고, 보리 사체를 맡아두고 있는 병원에 전화해 오후에 가겠다고 약속을 잡은 뒤 잠깐 눈을 붙였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말고는 그 때까지도 그리 많이 울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보리를 볼 때까지만 참자'고 나를 억누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병원에서 일했으니까 사체를 맡긴다는 게, 결국 부패가 진행되지 않도록 얼려둔다는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후세계나 영혼도 믿지 않으니까, 내가 병원에 가서 보게 될 것은 보리가 아닌, 이제 없는 보리의 반쯤 얼어있는 시체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차갑고 작은 털뭉치. 아마 안 보고 그대로 태워달라고 했었어도 됐을 일을. 그래도 맡아달라고 한 건, 그래도 보러 간 건, 그렇게 보지 않으면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보리가 정말로 죽었고, 내 앞에 있는 건 보리의 있었던 흔적이고, 이제 나는 다시는 보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한 때 보리였던 보리의 사체를 보며 그제서야 억누른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하는 전해질리 없는 말도 하며, 이름도 부르며. 이미 없는 보리한테.

  직접 보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화장을 부탁하고 시체를 보고 왔는데도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서 평소엔 별로 슬픈 줄도 모르고 지낸다. 집에 가면 혼자 남은 뒤로 유독 사랑이 넘치는 가하를 열심히 예뻐하고 사랑하며 그냥 살던대로 살다가, '아 정말 한 마리네' 하고 이따끔 생각한다. 그 때 드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부조리함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한테 고양이가 한 마리 밖에 없을 리가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이질감.

  잘 때면 자연스레 베개 사이를 비워놓았는데. 그러면 무게도 안 느껴질만큼 가벼운 몸으로 폴짝 침대에 뛰어 올라 자그마한 몸을 그 사이에 맞춰 웅크린 뒤 고르릉 거렸는데. 아침이면 시리얼 먹을 때 우유며 요거트를 달라며 식탁 위에 뛰어 올라와 큰 소리로 보챘는데. 햇살이 좋은 날이면 빨리 바람 쐬러 가자고 조르다가 날씨가 추우면 3분 만에 집에 돌아오기도 했는데. 낮 시간 동안에는 괭합성 하면서 바구니에서 자는 걸 좋아했는데. 게임 중이면 꼭 키보드 바로 앞에 좁은 틈새에 엉덩이를 걸치고 냅다 얼굴을 들이대면서 뺨을 쓰다듬어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한데 네가 없을까. 밀려든 추억들이 댐을 무너뜨리는 순간에야 눈물이 터진다. 너무너무 보고싶어서 가슴이 아프고 숨이 턱턱 막힌다. 항상 '보↗리야!'하고 부르던 이름을 부를 일이 없다는 것조차 서럽고 억울하다. 이제 없다니. 정말로 이제는 없다니.

 

  보리를 처음 만난 건 14년 전, 보리를 임보 중인 지인 분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지인 분은 작업실에 고양이 7~8마리를 두고 계셨고, 그 댁 검은 고양이 총각과 갓 1살을 넘긴 가하 사이에 새끼를 보고 싶어서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겠지만) 가하를 잠시 그곳에 데려다 놓은 상태였다. 2주 가량 가하를 맡겨둔 사이에 그 분 블로그에 잠시 임보 중이라는 보리 사진이 올라왔고, 가하도 볼 겸 주말에 찾아간 작업실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보리를 처음 실물로 마주하자마자, 나는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보리는 페르시안 믹스라 약간 코가 눌린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가만히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조차 사람들은 '이 친구는 왜 이렇게 뚱해?'하고 묻는다. 헌데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보리가 항상 찡그린 얼굴이라든가, 험상궂은 인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평생 보리를 볼 때마다 보리가 정말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얼굴로, 요정 같은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보리는 체구가 자그마한 고양이였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마치 요정 같이 딴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작은 고양이가 세상 만사 귀찮다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홀린 듯이 바라봤다. 그런데 그렇게 보고 있던 와중, 작업실에서 사는 지인 분 고양이가 옆을 지나가자 아무 예고도 없이 지나가던 그 친구를 앞발로 빡! 때렸다. 지인 분 고양이들은 대부분 사람한테나 고양이한테나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는데, 맞은 친구는 ㅇㅁㅇ...? 하는 얼굴로 잠깐 당황하고선 다시 지나갔고, 보리는 방금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다시 요정같은 모습으로 새침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난 어쩐지 그 모습에 운명을 느꼈다.

  보리는 그렇게 우리집 둘째 고양이가 됐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기로 한 두 번째 고양이. 내가 보리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온 날, 바로 다른 사람한테 입양 문의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역시 운명 아닐까. 내가 그 날 가서, 그렇게 보리를 본 게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한 운명적 만남일 거야. 그런 생각을 했다.

  이동장에 담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보리는 이동장 안에서 작게 고르릉 거렸다. 상대적으로 고르릉을 거의 안 하는 가하만 키워왔던 나에겐 신선한 반응이었다. 집에 데리고 돌아와 가방을 열자마자 보리는 숨는 기색도 없이 냉큼 내 방 침대에 올라가 식빵을 구웠다. 마치 이 집이 앞으로 살 자기집이라는 걸 아는 것마냥. 목욕을 시키는 중에도, 밥을 먹는 중에도 끝없이 고르릉거렸다. 우리집에 와서 행복했던 것 같다.

  가하도 참 외동 성격이긴 한데, 보리도 정말 '사람'만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가하랑은 그나마 데면데면 척은 했으나 새로 류하가 오고 딸기가 올 때마다 질색팔색 싫어했다. 근처에 너무 가깝게 지나가기라도 했다간 냅다 앞발을 날렸지만, 거리만 유지하면 먼저 싸움을 걸진 않았다. 체구는 제일 작은 게 깡은 대단하다고 가족들이 다 웃었다.

  사람한테는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할 수가 없었다. 누구든 자길 예뻐할 것 같은 사람이다 싶으면 냅다 가서 머리를 들이밀고 고르릉거렸다. 나는 항상 보리에 대한 내 사랑은 외사랑이라고 하곤 했다. 내가 아무리 보리를 사랑해도 보리는 정말 만인을 평등하게 대했어서.

    워낙 누구한테는 예뻐해달라 들이대는 성격이라 손님들 중 보리를 안 사랑한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 같이 살았던 린언니도 작업할 때 다른 고양이는 다 내보내도 보리만은 꼭 끼고 일했고, 쓰다듬어 달라는 애교에 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누군들. 반쯤 감은 물기어린 눈으로 야옹 소리와 함께 바라보는 보리한테 어떻게 안 넘어가겠어.

  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선 가하랑 보리, 이렇게 둘이 내 고양이였다. 류하는 미처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하는 아픈 손가락, 딸기는 내가 아니어도 사랑해줄 사람 많은 귀염둥이, 내가 선택해서 평생 함께 하기로 한 내 고양이는 가하랑 보리 두 마리. 물론 시간이 사랑을 쌓아 결국 나는 내 고양이 네 마리가 있는 사람이 됐지만.

  자취할 때도 가하랑 보리는 나랑 같이 살았으니까, 보리는 내가 여행 가있거나 할 때 빼고는 한시도 나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내 삶에 보리가 없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보리한테 입버릇처럼 '언니는 너 없으면 못 살아. 그러니까 딱 10년만 같이 더 살자.'하고 속삭이곤 했다. 이제는 귀도 거의 안 들리는데도.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좋아하고, 맛있는 거 달라고 보채니까 10년은 아니라도 좀 더 같이 있엊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진첩에는 동그랗게 만 털뭉치 같은 보리, 햇살 아래 괭합성 하는 보리, 산책하며 꽃 옆에서 찍힌 보리, 가슴 위에 올라와 꾹꾹이에 심취한 보리, 맛있는 걸 안 줘서 심통난 표정의 보리, 수천 장의 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믿을 수 있을 때만 눈물이 난다. 이제는 정말 고양이가 한 마리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엔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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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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