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하

etc. 2020. 11. 8. 18:58

2003.08.02 ~ 2020.11.06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내가 네 마리 고양이를 모두 보내고, 마지막으로 가하에 대한 글을 쓰는 날이. 시간은 기억을 너무나 무색하게 흩어놓기 때문에 아직 생생할 때 조금이라도 기록해둬야 한다.

  의외로 가장 덜 힘든 이별이었던 것 같다. 제일 마음의 준비가 된 채로 보내서일까. 내가 원하던 방식으로 원하던 때에(그나마) 이별할 수 있어서였을까. 최근 몇 달 새 체중이 야금야금 줄어 처음 네덜란드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3.3kg였던 것이 마지막에는 2.1kg였다. 체중의 1/3이 줄어드는 그 변화는 행동에서도 드러나 점차 걷는 모습도 버거워 보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자면서 보내는 걸 보면서 이제는 정말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7년 전에 가하를 만났다. 그 때 나는 16살이었고, 모부가 별거에 들어가면서 여섯 식구 살던 집에서 엄마랑 나와 10평 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둘이 살기 시작했다. 모부가 이혼할지 모른다는 사실도, 할머니랑 같이 살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두 다 너무 충격적이고 감당할 수 없던 사춘기였다. 엄마는 아마 그런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는 분 건너건너 새끼 고양이가 태어난 집이 있다는데, 고양이를 키워볼까, 하고 나한테 제안했다. 그렇게 그 집에 가서 네 마리 형제 중에 골랐던 게 가하였다. 삼색이 하나, 턱시도 둘, 그리고 올블랙 아깽이 가하. 턱시도 친구들도 귀여웠지만 한창 중2병 터지던 새끼 덕후는 올블랙 고양이가 뭔가 특별하게 여겨져 가하를 골랐었다. 이름도 지금 와서 밝히자면 당시 좋아하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던 주인공의 반려 호랑이 이름에서 따왔다. 나중에는 쪽팔려서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 별 뜻 없다고 대답했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이 없던 시기였고, 아무 것도 모르고 데려온 거나 다름 없었다. 생후 6주 경에 우리집에 온 가하는 정말로 내 손바닥 만했다. 지금이야 아깽이들 목덜미 잡고 번쩍번쩍 잘 들어 올리지만 그 때는 가하가 정말 너무 작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잘 안아들지도 못하고 어떻게 쓰다듬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도 혹시 깔아 뭉개기라도 할까봐 겁났다. 엄마는 새로 찾은 자유를 만끽하느라 집에 잘 없었다. 그 작은 아파트에서 나에겐 가하 뿐이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

  이후에 업둥이도 잠깐씩 들이고 보리, 딸기, 류하 이렇게 고양이가 자꾸 늘어나는 동안, 가하는 내내 가족들에게는 '항상 까칠한 고양이', 나한테는 '나한테만 덜 까칠한 고양이'로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하는 퍼스널 스페이스도 중요하고 외동 고양이로 사는 게 제일 좋았을 성격인데, 고양이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는 가족들에 다른 고양이들 셋이나 부대끼며 사느라 항상 좀 탐탁치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가하는 참 나를 좋아했다. 나는 언제나 가하가 무슨 기분인지 알았다. 정확히 왜 기분이 나쁜지는 몰라도 언제 물 건지, 언제 쓰다듬 받고 싶은지, 언제 이불 속에 들어오고 싶은지, 항상 알았다. 둘만 침대에서 잘 때면 슬그머니 가슴께로 올라와서 고르릉 거리면서 쭉쭉이, 꾹꾹이를 했다. 좀 더 나이 들고 나선 그나마도 안했지만.

  대학 때는 집에 잘 안 붙어 있어서, 떠올려 보면 미안할 따름이다. 그나마 자취하러 나가서는 가하랑 보리만 데리고 나가서 원룸에서 셋이 옹기종기 잘 지냈지만, 집에는 머리만 누이러 오는 언니가 야속했을 법도 한데. 항상 지나고 나서야 생각한다. 가하는 네덜란드 와서 참 행복했겠구나. 그전까지 집에 잘 붙어있지도 않고, 집에서도 맨날 게임하고 어쩌고 잘 놀아주지도 않는 동거인을 잘도 참아줬구나. 좀 더 많이 시간을 보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결국 가장 최근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와서 가하의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창틀에 놓인 바구니에서 햇살 가득 누리며 괭합성 하던 모습. 가뜩 까만 털이라 따끈따끈해진 옆구리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으면 풍기던 가하 냄새. 늙어서 발톱도 잘 못 감추는 탓에 트친 분이 '쌀알 발톱'이라 부르던 하얀 발톱이 사진마다 꼭 찍혀 있었는데.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눈을 감아서 항상 반쯤 눈감은 사진만 찍혔다. 다른 트친 분은 멜론빛 눈이라고 하셨는데. 천년 만년 무릎고양이라곤 안하던 애가 보리, 딸기가 떠나고 외동 고양이가 되고 나니 고르릉도 너무 잘하고, 무릎 고양이로 사는 모습이 정말 놀랄 노자였다. 이렇게 혼자 관심 독차지하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였을 줄이야.

  신부전 고양이들을 병원에서 많이 봐서,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는 이미 상상하고 있었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변량이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구토를 보이고, 활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끝. 중간중간 활력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이번인가? 하는 생각에 울고 불고 마음 졸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도 그 때마다 변비약 먹이고, 구토억제제 먹이고 하면서 어떻게든 유지가 돼왔다. 요씨는 약 먹이는 걸 전혀 엄두도 못내는 사람이라 내가 매 번 약을 먹였더니, 나를 미워하고 요씨랑만 친하게 지내서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영영 미워하지는 못하고 5분쯤 화냈다가 다시 풀린다는 점이 또 고마웠다.

  사람은 떠날 때를 안다고 하는데, 고양이도 그럴까. 마지막 3일 정도, 가하는 고르릉도 전혀 안하고, 식빵 자세로 꼬리만 계속 탕탕 치고 있었다. 속도 더부룩하고, 통증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마음 졸이며 병원에 예약을 해놓고, 내일이면 정말 안녕인걸까 하면서 자던 그 밤, 몇 번씩 일어나서 가하가 아직 숨을 쉬고 있나 확인했다. 그런데 새벽 중에, 요씨가 나를 깨워서는 자기 가슴팍에 올라와 앉은 가하를 가리켰다. 아주 작게 고르릉을 하고 있다고. 그 뒤 가하는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내 옆구리에서 잠들었다. 마치 아프기 전 같은 모습. 요씨는 '다시 괜찮아지는 걸까?'하고 물어봤지만, 나에게는 그게 마치 마지막 인사 같이 느껴졌다.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하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사랑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아이를 내 뜻대로 보내주는 게 정말로 옳은 선택일까, 하는 질문을, 많은 보호자들이 품는다. 애들은 대답을 못하니까, 그리고 아마 묻는다고 해도 죽고 싶다고 대답하는 아이는 없겠지. 아이가 원하는 것은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 텐데, 어떤 방법으로도 그게 불가능하다면, '아프지 않게'라도 해주는 것이 보호자의 선택인 것이다. 불공평한 선택이라도 어쩔 수 없다. 그 불공평함에 대한 죄책감까지도 보호자 몫이기 때문에.

 

  삶의 절반을 넘게 함께 했는데,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니. 너무 이상하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내 사랑. 내 새끼. 천사 같은 내 고양이. 언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누구보다도 오래 언니 옆에 머물다 간 천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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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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