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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숭고의 시대

 

  "놈들이 오고 있어." 리스메는 놋쇠 망원경을 얹은 왼쪽눈을 찡그린 채 모두에게 알렸다. "스카이버너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양성의 마법사는 아직도 분홍빛으로 생생하게 남은 지하대로에서의 상처를 특유의 축제 같은 분장에 잘 녹여낸 듯 보였다. 오늘 그는 남성 모습을 취하고 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에 맞춰 긴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막 아물고 있는 분홍빛 상처 주위에서 깔끔하게 다듬어진 머리와 콧수염 사이로 얼굴 왼쪽면을 따라 한줄기 선이 그어져 있었다.

  "얼마나 돼보여?" 이세야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생은 그에게 작은 무리의 마법사와 궁수로 이뤄진 그리폰 부대를 맡겼다. 그의 지휘 하에 있는 감시자들은 전부 노련한 숙련자들이었지만,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들이 맡은 역할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 중요하지만, 큰 역할은 아니었다. 어둠의 피조물들이 예상보다 큰 규모로 몰려온다면 그들의 작전은 성공할 수 없을 터였다.

  그들의 임무는 호스버그의 남쪽, 라텐플루스 강줄기를 따라 보이는 어둠의 피조물을 전부 몰살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동맹군들은 거의 개러헬의 지휘 하에 도시의 북서쪽으로 집결했고, 그곳으로 어둠의 피조물 군대가 집중될 예정이었다.

  남쪽 전방은 상대적으로 조용했지만...그 텅빈 모습은 전부 위장에 불과했다. 초대라도 하는 양 넓게 펼쳐진 벌판은 후방에서의 기습을 꾀하는 어둠의 피조물 군대를 제법 끌어모았고, 이제 감시자들이 해야하는 일은 화살이나 검보다는 함정이나 주문으로 놈들을 해치우는 일이었다.

  "대충...200마리, 아니면 250 정도." 리스메는 잠시 간격을 두고 대답했다. 그는 망원경을 내리고 어깨 너머로 이세야를 돌아봤다.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리는 머리칼이 검은 비단 휘장처럼 그를 휘감았다. "거의 헐록들이고, 쉬릭도 몇 마리 있어. 오우거는 세 마리야."

  "악마의 군주는 없고?" 이세야가 물었다.

  "없어." 리스메의 대답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악마의 군주가 안더펠스에서 모습을 감춘 지도 벌써 몇 주째였다. 마지막으로 들려온 믿을만한 정보는 6일 가량 전 안티바시티의 폐허 근처에서 목격된 일이었다.

  안심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오늘의 전투에 악마의 군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놈이 나타난다면 대재앙을 끝낼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몰살당할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기에. 7년의 길고 긴 포위 공격에 시달린 탓에, 호스버그의 수비병력은 그런 거대한 적을 마주할만한 상태가 못 됐다.

  리스메는 다시 망원경을 들어 접근 중인 어둠의 피조물들을 관찰했다. 이세야의 눈에는 지평선 위에 한줄기 검은 선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재앙의 가뭄 속에 옛날 보다 20~30 야드는 더 얕아진 라텐플루스 강줄기가 앞장 선 무리의 들쭉날쭉한 대열 뒤로 일렁이며 반짝였다.

  그리고 놈들의 전방에, 감시자들이 그리폰과 함께 매복중인 지점과의 중간 정도 되는 곳에 스카이버너가 준비돼 있었다.

  드워프들이 지하대로 안에서 어둠의 피조물에 맞서기 위해 고안해낸 함정을 변형시킨 스카이버너는, 기본적으로 커다란 자기 항아리 안에 쇳조각이나 망가진 갑옷, 뾰족한 돌덩이 따위의 파편 같은 걸 가득 채워 파묻은 모양새였다. 각각의 항아리 중앙에는 룬 문자를 리륨으로 새겨둔 특별한 돌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드워프들은 적당한 자극만 가해지면 제대로 폭발할 거라고 동생에게 다짐했다. 비록 다소 부정확하고 때때로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그 리륨 룬은 어둠의 피조물들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죽은이들의 무기 주위로 묘비처럼 쌓아올린 돌무더기는 올레이식 전통이나 일부 티빈터 제국의 풍습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테다스를 지배하는 국가 중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을 가진 곳은 별로 없었고 - 악마나 악한 영들이 그 유골을 차지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으니 - 그들은 대부분 시체를 불태운 후 유품인 무기를 묘비로 삼곤 했다.

  하지만 안더펠스의 삶은 충분히 가혹했고, 죽은 이를 위해 남겨두기에 무기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어둠의 피조물들이 인간들의 풍습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바위더미 사이에 꽂힌 귀중한 미늘창과 죽창의 흔적에 좀 더 의심을 품었을 터였다.

  하지만 개러헬은 어둠의 피조물들에게 그런 섬세함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놈들이 희생자로부터 성한 무기를 챙길 기회를 지나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헐록이나 젠록들에게는 세공 기술이라 할만한 게 없었다. 그들은 구울들이 조악하게 만들어내는 도구에 의지해야했고, 구울들은 그리 능숙한 대장장이라고 알려져 있진 않았다. 즉, 그는 어둠의 피조물들이 네 개의 돌무덤을 발견하면 신나서 무기를 차지하러 달려들 것이고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어둠의 피조물들이 그 죽창과 미늘창, 쇠를 덧댄 지팡이 더미에 손을 대는 순간, 놈들은 죽는 것이다. 무기더미 바닥 주위로 깔린 철망덫이 숨겨진 스카이버너와 연결돼 있었다. 리륨 룬 문자가 발현되기까진 짧은 간격이 있었고 - 운이 따른다면, 그 사이 더 많은 어둠의 피조물이 함정 안에 들어온 뒤에 - 스카이버너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치러줄 것이었다.

  이세야는 그 광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불꽃놀이를 좋아했고, 이 드워프제 폭탄은 분명 훌륭한 품질을 선보일 것이었다. 이 물건은 동맹을 끌어모으기 위한 개러헬의 끝없는 노력의 성과로 고작 몇 달 전에야 받은 것이라 아직 한 번도 써본 일이 없었다. 드워프들은 전사들을 직접 보내는 건 꺼려했으나, 광부 계급의 두 자매와 다양한 재료가 담긴 짐마차 몇 대를 감시자들에게 보내왔다.

  "거의 다 왔다." 리스메가 속삭였다. "준비해."

  이세야는 끄덕이곤 다른 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리스메도 뒤따라 와 바닥에 납작 엎드린 뒤 망원경으로 어둠의 피조물들의 위치를 계속 추적했다.

  작전에 참여한 회색 감시자는 고작 스물세 명이었고, 열두 마리의 그리폰이 동행했다. 그들은 호스버스의 광부들이 마른 호수 형태로 파놓은 골짜기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골짜기엔 라텐플루스 강이 흘렀겠지만, 대재앙이 계속되는 사이 수위가 점차 낮아져 골짜기 바닥에는 끈적한 진흙만 남아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곳엔 모기들이 번창하기 딱 적당한 정도의 습도만 남아 대기 중인 회색 감시자들을 괴롭게 했다.

  구름떼 같은 모기들을 휘저어 쳐낸 이세야는 레바스의 안장에 올라탔다. 칼린은 이미 승객용 안장에 자리잡고 있었고, 다른 동료들 역시 모두 준비된 상태였다. 모두들 두 사람씩 태우고 있었지만, 다나로의 때까치만은 입단의식 이후로 몹시 예민해진 터라 자신의 주인 이외에는 누구도 태우려 하지 않았다.

  때까치는 다른 그리폰들과 거리를 두고 어쩐지 풀죽은 듯한 모습으로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이세야가 의식을 행한 후 회복한 듯 보였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어쩐지 앙심을 품은 것만 같았다. 무기력함에서 벗어난 그는 성미가 사나워졌고, 다른 그리폰들 역시 녀석에게 적대감을 보였다. 다른 그리폰과 위험할 정도로 싸운 것만 해도 두 번이었고, 마굿간지기 소년은 저녁 식사용 염소를 갖다주고 조금 오래 머물렀단 이유만으로 팔에 흉한 상처를 얻기도 했다. 오직 다나로만이 그의 증오에 찬 눈빛이나 패악을 겪지 않은 채 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때까치에게 두 번째 승객을 태우지 말자는데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세야는 오늘 일이 무탈하게 풀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저 멀리 북쪽에서는 신호용 북과 찢어지는 나팔 소리가 진군을 알려왔다. 호스버그의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어둠의 피조물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주저하듯 고개를 돌리는 몇몇 놈들은 라텐플루스 여울을 건너야 할지 전장으로 향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놈들은 무기 더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우거들이 가장 먼저 전진했고, 자신들이 쓰기엔 턱없이 작은 포상품을 향해 달려들며 작은 어둠의 피조물들을 이리저리 집어 던졌다. 뾰족한 주둥이의 쉬릭들은 오우거의 발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달리며 덩치 큰 놈들을 앞지르려 노력했다.

  놈들이 항아리에 닿았을 때, 어둠의 피조물들은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바람은 놈들에게 유리하게 불고 있지 않았지만, 이세야는 긴장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어둠의 피조물들의 능력은 예측불가였고, 때때로 놈들은 감시자들이 입단의식으로 획득해 놈들을 감지하는데 쓰는 것과 똑같은 동질성으로 회색 감시자들을 느끼곤 했다.

  혹여 놈들이 골짜기에 숨어있는 감시자들을 알아차렸는지는 기색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오우거들이 항아리로 몸을 숙였고, 쉿쉿거리는 쇳소리를 내는 쉬릭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놈들의 두툼하고 마디진 커다란 손과 바늘처럼 날카로운 비쩍 마른 손이 죽창과 지팡이를 붙잡았고, 함정과 연결된 무기들을 끄집어내 의기양양한 괴성을 지르며 들어올렸다. 느리게 도착한 헐록과 젠록들이 뒤를 이었고, 놈들은 부러운 듯 으르렁대고 툴툴거리며 쉿쉿거리는 쉬릭들에게 작은 무기 쪼가리라도 뺏으려 엎치락뒤치락 했다. 춤추듯 둥글게 둘러싼 녀석들의 무리가 포상품을 다투며 어지러이 움직였다.

  그리고 대지가 그들의 발밑에서 폭발했다.

  태양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청록색의 불꽃덩어리 네 개가 흙더미를 이십여 피트 높이로 솟구쳐 올렸다. 이백 야드도 넘게 떨어진 곳에 대기하던 회색 감시자들에게도 압력의 여파가 몰아쳐 이세야의 귀를 먹먹하게 했고 숨이 턱 막히게 했다. 마법 불꽃이 가장 가까이 있던 어둠의 피조물을 불태우며 눈 깜짝할 사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잿더미로 만들어놨다. 바위와 하얗게 달아오른 금속조각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어둠의 피조물들을 조각조각 베어내고 찢어냈다. 폭발 가까이 있던 놈들은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스카이버너의 위력은 이세야가 본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었다. 회색 감시자들을 향해 치솟은 바람은 살육의 흔적을 담아 끈적하고 무거운 냄새를 풍겼고, 언저리에선 태운 리륨의 매캐한 향이 감돌았다.

  "가자." 그는 동료들에게 명했고, 레바스에게 비행 신호를 보냈다.

  거센 날개짓과 함께 회색 감시자들이 날아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혼란에 빠진 부상당한 어둠의 피조물들을 처리하는 것이었고, 가혹하리만큼 깔끔한 작업이었다. 화염구가 비틀거리는 헐록무리를 꿰뚫었고, 돌덩이가 죽어가는 오우거 위로 쏟아졌다. 얼음폭풍과 서리화살이 젠록의 검은피를 얼렸고, 쉬릭의 가느다란 뼈를 바스라뜨렸다. 무너진 대지가 리스메가 일으킨 지진과 이세야의 장력주문을 따라 흔들렸다. 난전 사이로 꽂혀드는 궁수들의 화살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그들은 어둠의 피조물들을 강으로 유인할 생각이었으나, 그리폰 부대가 두 번 스쳐간 뒤엔 유인할 잔당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드워프들의 스카이버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어마어마한 위력을 선보였고, 그들의 소박한 매복작전은 완벽한 학살극으로 마무리됐다.

  본격적인 전투는 좀 더 까다로울 듯 보였고, 이세야는 때까치가 이미 자기 앞쪽의 적들에게 달려드는 중인 걸 발견하자 즉시 감시자들을 가다듬어 공격에 나서게 했다. 

  다나로는 안장 위를 딛고 일어서서 있는 힘을 다해 고삐를 추스르고 있었지만, 완전히 격노한 그리폰을 멈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때까치의 분노는 이세야가 본 그 어느 것보다도 무시무시했다.

  그 그리폰은 한 무리의 무장한 오우거 떼를 향해 날아들었다. 인간과 드워프로 이뤄진 한 쌍의 회색 감시자가 놈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둘 다 어둠의 피조물의, 그리고 대부분은 그 자신들의 것일 피에 흠뻑 젖어있었다. 오우거 무리에 시야가 가려 이세야는 아주 잠깐 밖에 그들을 볼 수 없었지만, 두 감시자가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때까치의 주의를 끈 게 그 감시자들의 위태로운 상태인지, 단순히 오우거가 가장 커다란 타겟이기 때문인지 그로선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었든 간에, 그 그리폰은 저돌적으로 내리 꽂혔고, 가장 덩치가 큰 오우거의 뒤쪽에서 웅크린 발톱으로 목을 덮쳤다.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머리가 전방으로 확 꺾였고, 그 거대한 괴수는 선 채로 즉사했다.

  다른 오우거 두 마리가 그리폰을 붙들었다. 한 놈이 때까치의 왼쪽 날개를 붙잡아 흉포하게 비틀었다. 이세야는 그 그리폰이 오우거의 손에 붙들려 고꾸라지는 것까지 보고 때까치도 그 기수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고, 레바스는 다시 전장 위를 훑기 위해 방향을 돌렸다.

  레바스가 다시 그쪽으로 향했을 때 그는 그 그리폰이 죽어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때까치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고 -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전히 날고 있었다. 부상입은 날개는 휘저을 때마다 망가진 연처럼 퍼득거렸으나, 마법의 힘이든 아드레날린 덕이든 단순히 맹렬한 의지 덕이든 간에, 때까치는 여전히 공중을 날고 있었다. 다나로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 등에 매달린 채, 주문을 외울만한 여유가 주어질 때마다 반쯤 마무리한 주문을 오우거들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세야의 등 뒤에서 칼린이 숨막힌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엘프는 자백하듯 대답했다. "나는 그저 그를 어둠의 피조물의 오염에서 구하고 싶었을 뿐이야...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라고. 나도 저게 뭔지 모르겠어."

  방향을 돌린 뒤, 이세야는 오른팔을 들어 다른 감시자들에게 신호했다. "비행 부대! 공격!"

  명령이 그의 입술 끝을 채 떠나기도 전에, 레바스는 이미 아래로 뛰어들고 있었다. 때까치와 달리, 레바스나 다른 그리폰들은 훈련받은 전술을 제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전장을 주의깊게 훑으며 빠르게 요리조리 몸을 틀어 어둠의 피조물이 날리는 주문이나 검은 화살을 피해가며 그들의 기수가 준비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게 보조했다.

  소규모의 루비 드레이크 용병들이 젠록 어쌔신 무리에게 당하는 중인 걸 발견한 이세야는 레바스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붉은 드래곤 깃발 아래 남녀 가리지 않고 용맹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젠록 쪽이 다소 우세해 보였다. 놈들의 혈관을 흐르는 기묘한 마법 덕에, 그 단단한 어둠의 피조물은 그림자 사이로 안티바 까마귀단 못지 않게 은밀하게 들락거릴 수 있었다. 놈들은 루비 드레이크 용병들이 그들을 마주하려 돌아설 때마다 사라져서는 측면에서 나타나 재빠르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마법의 힘이라면 그 불리함을 극복할 수도 있을 터였다. 레바스가 젠록과 용병 무리 위로 스쳐가는 찰나, 이세야는 철저하게 계산된 초자연적인 냉기폭풍을 전장의 외곽을 따라 흘려보냈다. 뒤를 이어 칼린 역시 이차적인 서리 쐐기를 사이사이 박아넣어 이세야의 마법에 중첩되어 미처 붙들지 못한 적들까지 붙들어냈다.

  두 사람의 연쇄 마법은 대부분의 어쌔신을 잡아냈고 - 일부 루비 드레이크 일원이 포함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지만 - 놈들을 얇은 유리막 같은 얼음틀에 봉쇄해 버렸다. 이미 부상을 입고 있던 놈들은 그 안에서 즉사하며 분홍빛 얼음고치를 만들었다. 나머지는 무력하게 묶여있던 치명적인 몇 초 사이 발버둥치며 비명을 질렀으나 남아있던 루비 드레이크 용병들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

  전장 곳곳에서 다른 그리폰 기수들 역시, 난장판 속에서 자잘한 충돌지역에 뛰어들어 아군을 돕기 위해 힘을 보태가며 비슷하게 싸우고 있었다. 마법에 의해 피어오른 곳곳의 불길에서 연기와 재가 날아들어 눈과 코를 찔러댔지만, 모두들 고통에 아랑곳 않고 싸워나갔다. 감시자 보병들이 퇴각할 수 있게 엄호 화살을 쏘아댔고, 불꽃과 돌무더기를 날려 헐록과 젠록 무리를 밀어내 아군이 재편성할 수 있게 했으며, 오우거나 주문을 쏟아내는 에미서리를 교란시키기 위해 반짝이는 환영을 자아내어 지상의 병력이 그 혼란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넝마조각 같은, 마치 진짜 마법사들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양 지나치게 큰 로브자락을 걸친 헐록 에미서리가 검은 불꽃을 내뿜어 그리폰 한 마리를 가격했다. 그 그리폰은 거칠게 나부끼는 와중에 중심을 잡으려 몸부림쳤으나, 오우거가 던진 바윗덩이가 그 전에 녀석을 격추시켰다. 그 위에 타고 있던 두 감시자도 함께 떨어졌고, 어둠의 피조물 무리가 달려들어 그 죽어가는 짐승을 발톱과 톱날같은 칼날로 찢어놓기도 전에 이미 그 밑에 깔려 죽은 뒤였다. 놈들의 야만적인 학살에 붉은 피가 안개처럼 흩뿌렸다.

  이세야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어떻게 막아볼 수 있었을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 역시도 위험에 처해 있었으니. 석궁을 장전한 젠록 무리가 레바스를 공격하고 있었고, 그와 칼린이 날려대는 화염수가 궁수와 화살들을 불태우곤 있었으나 그리폰이 그 맹렬한 기세를 뚫고 나가기엔 너무 위험이 컸다.

  화살 하나가 이세야의 팔을 빗겨갔다. 이어 갑옷을 두른 안장 앞쪽으로 화살 두 발이 더 빗겨갔다. 엘프는 최대한 엄폐할 수 있게 몸을 웅크린 채로 레바스에게 퇴각 신호를 보냈고, 화염마법으로 최대한 시간을 벌려 했다.

  자잘한 자상과 석궁 화살에 맞은 채로, 검은 그리폰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젠록의 화살이 그를 뒤쫓았으나 놈들의 무기로는 수백 피트 위의 레바스를 맞출만한 능력도 정확함도 부족했다.

  그들은 뭔가를 하기엔 너무 멀지만 상황을 내려다볼 수 있을만한 높이에서 전장 위를 한 바퀴 선회했다. 이세야를 놀라게 한 것은 때까치가 여전히 땅 위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온통 피범벅이 된 모습 덕에 처음엔 바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다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광기에 찬 그리폰으로부터 도망쳤든가, 아마 이미 죽은 거겠지.

  어느 쪽이든, 때까치가 그 사실을 알기는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그리폰은 광란의 전투에 빠져있었다. 그는 오우거 하나를 발로 차 헐록 무리 위로 넘어뜨렸고, 그 돌진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그 자신도 넘어졌다가 그대로 오우거 위로 올라타 온 발톱을 이용해 놈을 찢어대며 목줄기를 부리로 물어뜯었다.

  그 맹렬한 공세 탓에 그 자신은 헐록의 공격에 노출되고 말았다. 작은 어둠의 피조물 무리가 자세를 바로 잡고는 그에게 달려들어 찔러대고 베어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까치는 용케 대다수의 공격을 피해낸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어둠의 피조물들이 어디를 공격할지 미리 알기라도 하는 것마냥 놈들의 공격을 피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 그러기엔 머릿수가 너무 많았고, 때까치는 놈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목표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 적어도 그가 어떻게 여지껏 살아남았는지는 설명이 되는 것 같았다.

  그의 힘과 속도 역시,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돼 있었다. 그는 보지도 않고 헐록의 검으로부터 뒷다리를 당겨 피했고, 이어 - 여전히 보지도 않은 채, 이세야가 감히 눈으로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 같은 다리를 기괴한 각도로 내뻗어 그 헐록의 내장이 다 드러나게 배를 갈라 대지 위에 흩뿌렸다.

  칼린 역시 그 모습을 보았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세야는 그저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연기를 뚫고 소리를 질러댄 탓에 건조해진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나도 몰라. 아주 오래된 감시자들이 저럴 수 있단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아. 너무 오래 버티다보면, 거의 콜링을 듣기 직전 쯤이 되면, 어떤 이들은 어둠의 피조물과 너무 가까워져서 놈들의 생각이 메아리처럼 들린대. 그리 오래가진 않지만. 그건 아무래도 끝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때까치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군, 분명히." 칼린은 잠시 말을 멈췄고, 비록 그가 등 뒤에 앉아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세야는 이 혈마법사와 오랫동안 함께 싸워온 덕에 그가 지금 내키지 않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고심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해, 그냥." 그가 속삭였다.

  "네가 한 건-."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가 원한 건 그저 때까치가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저렇게 날개 달린 파괴의 화신이 되길 바란 게 아니라.

  "하지만 다른 이들이 원할만한 것이지." 그는 마침내 비틀거리기 시작한 때까치를 가리켰다. 그 그리폰의 회색 날개는 붉고 검은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날개깃에선 움직일 때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몸통 여기저기엔 동상과 자상이 가득했다. 부러진 화살이 목덜미에 하나, 오른 앞발에 하나씩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고, 그를 둥글게 둘러싼 시체의 산은 열마다 각각 다섯 구는 넘어 보였다.

  전방에서는 놋쇠나팔 소리가 아군의 승리를 알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겼다. 어둠의 피조물 부대가 무너졌고, 저 멀리 어딘가 있을 악마의 군주가 이 전투에 흥미를 잃고 패잔병들의 통솔에 손을 놓은 탓에 혼란에 빠진 졸개들이 우왕좌왕 했다. 헐록과 쉬릭 무리는 죽은 동족의 시체를 넘어 이리저리 흩어졌다. 도망치기엔 너무 크고 느린 오우거들은 마저 싸우며 최대한 많은 이들을 나락으로 끌고 가려 했다.

  감시자와 동맹군 사이에서 환호성이 들려왔고, 그들은 충전된 사기로 무장한 채 패잔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그들의 승리는 추격전으로 바뀌었고, 어둠의 피조물들은 라텐플루스 강으로 쫓겨나 허우적거리다 익사하거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세야는 그 환호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쓰러진 때까치를 내려다봤다. 그들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지만...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악마의 군주가 살아있는 한, 그 어떤 승리도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오늘 호스버그가 해방됐다 해도, 한 주, 한 달, 혹은 일 년 안에 어둠의 피조물에게 다시 함락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칼린이 옳았다. 이세야는 감히 인정하고 싶지 않음에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폰들이 지금보다 더 맹렬해지길 원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그리폰 기수들은 원하지 않겠지만 - 그 짐승들을 친구나 신뢰하는 파트너로 여기는 이들이라면 - 동물을 그저 전략적으로 소모할 수 있는 전쟁의 도구로만 여기는 이들, 스카이버너나 투석기와 다를 바 없이 여기는 이들이라면 어떤 비용이 들든 상관치 않을 것이다.

  "이건 내 주문이었어." 그는 큰 소리로, 칼린과 자기 자신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그들은 전장 위 높은 상공에 떠 있었고, 바람에 실려 피냄새와 연기가 풍겨왔지만 다소 옅게 느껴졌다. 레바스의 털에서 풍기는 사향이 훨씬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일 거야. 누구도 이 비밀을 알지 못해. 그리고 나는 다시는 이걸 쓰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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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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