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12 숭고의 시대
"그리폰은 신중하게 골라라." 투랍은 햇살이 내리쬐는 계단을 올라 날개달린 야수들이 자리 잡은 높은 성벽 위로 향하며 젊은 감시자들에게 조언했다. 그들은 총 다섯 명이었다. 개러헬, 이세야, 대머리 쌍둥이 자매 한 쌍, 이세야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문신투성이의 안더펠스 원주민 사내까지. 전부 자신의 안장 가방을 지고 있었다. 그들은 궁에서 하룻밤도 더 보내지 않을 예정이었다. "수 년을 함께 할 파트너를 고르는 일이다. 너희는 함께 먹고, 함께 싸우고, 길고 외로운 보초를 함께 설 것이다. 네 생명과 네 동반자의 생명 모두 너와 그리폰 사이의 신뢰 관계에 달려있지. 함부로 대했다간,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적을 만드는 셈이다."
"꼭 배우자 같네요." 개러헬이 드워프 뒤로 따라 걸으며 비꼬듯 대답했다.
투랍은 안다는 듯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 노릇이지. 네 배우자가 너보다 여섯 배쯤 무겁고, 매 끼니마다 살아있는 염소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한 발로 네 뼈를 조각조각 부숴트릴 수 있다면 말이야."
"제가 쿠나리를 꼬셔본 적은 있는데 말입니다." 엘프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감시자 사령관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붉은 수염의 드워프는 옆으로 비켜 서서 그들이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이세야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땀을 흘리고 있었고 두 자매 역시 길고 무더운 등반 끝에 빛나는 이마에서 땀을 훔쳐내는 와중에도 투랍은 숨소리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그리폰들 중 몇몇은 이제 막 훈련을 마친 참이다. 나머지는 대재앙 때문에 기수를 잃고 새 기수를 찾는 중이고." 드워프는 벽 위로 하나둘 올라오는 젊은 감시자들에게 말했다. "페나달과 다른 몇명이 이미 마지막 평가를 위해 시승을 마친 상태이다. 아마 이들이 너희 중 대부분과 잘 맞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특정한 짝을 권해줄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마지막 선택은 너희와 너희의 그리폰 사이의 몫이다. 그러니 자, 서로 소개부터 하도록."
이세야는 햇살 아래 눈 위로 손그늘을 만들어 위풍당당한 자태의 그리폰들을 확인했다. 성벽 위를 가로질러 다가가는 사이 묘하게 수줍은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서 볼수록 그 야수들은 언제나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졌고, 더 아름답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 검은색 암컷 하나가 다가오는 엘프에게 고개를 들어보였다. 그 그리폰의 눈은 보통보다 더 밝은 호박색이었다. 진하고 어두운 색의 깃털빛에 대비돼 그 눈은 마치 노란색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등 위에 옅게 퍼진 거북이 등껍질 같은 무늬는 가장자리로 갈수록 거칠고 듬성듬성해졌다. 그는 이세야가 본 그 무엇보다도 숨막히는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는 흉터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가 살점과 깃털을 뜯어냈던 흔적인지 목 옆쪽으로 맨들맨들한 회색 피부가 물결치는 줄무늬 흉터를 이루고 있었다. 상처는 완전히 아문 것 같았지만, 이세야는 근처의 깃털들이 아직 짧은 것으로 미루어 그 상처가 최근에 생겼다가 마법으로 아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으로 상처가 아물었다면 그 깃털들은 온전한 길이로 자랐을 터였다.
"이름이 뭐니?" 엘프는 그리폰의 가슴줄 앞쪽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 거대한 야수는 목줄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전투용 흉갑에 이름이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레바스." 그는 소리내어 읽었다. 엘프어였다. "자유."
그리폰의 털에 뒤덮인 두 귀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해 쫑긋 섰다. 그는 부리를 열어 작게 쉿소리를 냈고, 이어 거대한 머리를 이세야의 어깨 위에 얹었다. 야성적인 사향이 엘프의 코끝을 자극했고, 그리폰의 뺨 아래 흐르는 혈관과 골수의 맥박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무게에 이세야는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아무래도 저는 찜 당한 것 같네요." 그는 옆을 지나치던 감시자 사령관 투랍에게 말했다.
멈춰선 드워프의 수염난 얼굴 위로 생각하는 눈빛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가 동의했다. "레바스는 고작 몇 주 전에 자신의 기수를 잃었지. 그의 이름은 달시랄이었어. 데일리시 엘프였고. 혹시 그를 알았나?"
이세야는 고개를 저었다. 투랍의 질문은 그에게 미약한 짜증을 불러일으켰지만 - 모든 엘프들이 그저 엘프란 이유로 서로를 알아야 하나? -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의 질문은 진정성을 담고 있었고, 어쨌든 자신의 그리폰을 가지게 됐다는 흥분과 기쁨 앞에서 분노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훌륭한 감시자였네." 투랍이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지만, 이내 떠오르는 기억을 떨쳐낸 듯 보였다. "레바스의 상처는 오우거로부터 당한 것이네. 놈은 수직 하강하는 녀석을 잡아채 끌어내렸지. 거의 죽을 뻔 했어. 달시랄은 이 녀석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네. 만약 이 녀석이 다시 전장에 나선다면 큰 전력이 될 거야. 레바스는 가장 뛰어난 녀석 중 하나이니까."
그는 성벽을 따라 다시 내려갔고, 그의 플레이트 메일이 햇빛에 불타는 듯 보였다. 이세야가 그리폰을 향해 다시 돌아서자, 그는 투랍이 말하는 걸 바라보느라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정말이니?" 그가 속삭였다. "너는 아직도 애도 중인 거야?"
레바스는 다시 콧바람을 뿜으며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이세야를 짐승냄새가 나는 자신의 깃털 속에 파묻었다.
개러헬은 40 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서 독특하게 생긴 수컷 그리폰의 목을 긁어주고 있었다. 그 녀석은 아직 덜 자란 듯 길다란 체구와, 남다른 색상을 지니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회갈색 얼룩무늬인 몸체 위로 하얀색 반점이 배와 상체 부분에 흩뿌려진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그리폰은 회색빛 털을 가졌다. 완전한 하얀색이나 검은색 개체는 드물게 있었고, 복잡한 얼룩무늬는 더더욱 드물었다. 보통 그리폰은 색깔보다는 빠르기와 지능, 운동능력 같은 걸 따라 교배시켰지만 회색이 대부분이었다. 다른색깔은 열성인자기도 했고, 감시자들 사이에선 거의 볼 수 없었다.
개러헬의 새 친구는 색깔만 특이한 게 아니었다. 녀석의 귀 한 쪽은 다른 귀처럼 위로 솟아 뒤로 살짝 쳐진 형태가 아니라 앞으로 휘어져 있었다. 살짝 구부러진 꼬리는 덤불처럼 뭉쳐 일반적인 그리폰의 매끈한 사자 꼬리가 아닌 풍성한 여우 꼬리처럼 보였다.
종합했을 때, 그 젊은 수컷은 매우 독특하게 생긴 그리폰이었다. 그리고 그는 개러헬이 목을 긁어주자 무려 고르릉거리고 있었다. 그 그리폰은 이마로 엘프의 가슴팍을 밀쳐 그의 동생이 뒤로 나자빠지게 했다..
"완전 특이한 녀석이네." 이세야가 외쳤다.
"당연하지." 개러헬은 가쁜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는 뒤로 넘어졌다는 사실에조차 신나보였고, 곧바로 일어나 열정적으로 그 그리폰의 목을 긁어줬다. "이 녀석은 내 거야. 구제불능의 영웅들, 그게 바로 우리지."
"그 녀석 이름은 있어?"
"가슴판을 보자면 번개라는 것 같은데, 별로 어울리진 않는 것 같군. 어때, 넌?" 개러헬은 그리폰에게 물었다.
거대한 짐승은 두 귀를 납작하게 하고 쉿소리를 냈고, 혀를 길게 내밀었다. 엘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걸 생각해 보자. 별난이, 라든가. 칠칠이? 아냐, 너무 뻔해. 울퉁부리? 흠, 아냐. 꼭 텁수룩이 늙은 해적 같잖아. 아! 알겠다. 굽은꼬리!"
"굽은꼬리." 이세야가 따라했다. "네 전투 그리폰 이름을 굽은꼬리라고 하겠다는 거지."
"얘도 이 쪽이 더 마음에 드나봐. 안 그래?" 개러헬은 그렇게 속삭이며 그리폰의 턱 아래를 긁었다.
이세야는 혀를 깨물었다. 세상에는 그의 남동생이 자신의 그리폰에게 고상치 못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보다 중대한 문제가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 테다스에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리폰이 단 한 마리만 있다면, 분명 저 녀석이어야만 했다. 어쨌든 저 가여운 야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몇 분 안에 나머지 감시자들도 자신의 그리폰을 고르거나, 그리폰에게 선택당했다. 그들은 자신의 가방을 싣고, 안장을 얹은 뒤 고삐길이를 손에 맞게 조정했다. 이세야는 누구도 남겨지거나, 마음에 안 차는 녀석과 짝을 이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개러헬은 무리 중 유일하게 독특한 녀석을 골랐고, 다른 이들은 자신과 비슷하게 동반자를 고른 것 같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우리는 너희를 함께 훈련시켰을 것이다." 감시자 사령관 투랍은 그들이 모두 짝을 이루자 입을 열었다. "가볍게 와이스하웁트 주변을 도는 것부터 저공비행 표적 훈련, 낙하와 착륙 훈련 같은 걸. 점진적이고 체계화된 훈련이었겠지. 수 개월에 걸친. 하지만 우리에게 수 개월은 없다. 지금은 대재앙 중이고, 우리는 해가 지고 어둠의 피조물들이 몰려오기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너희는 약간이나마 훈련을 받았고, 나는 너희가 전장에 나설 수 있을 정도라고 믿고 있지만, 너희는 싸울 필요 없다. 알아들었나? 어둠의 피조물과 마주하지 말고, 전선을 지킬 필요도 없다. 공중으로 높이 날아서, 안티바 시티 밖으로 동행을 가능한 한 빠르게 데리고 나가라. 질문은?"
이세야는 나머지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알기만 했다면 묻고 싶은 게 많았겠지만, 그러기엔 질문이 너무나 많았고, 모든 게 너무 빨랐다. 그들 중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투랍은 진지하게 그들을 바라봤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알현실로 돌아가자. 상급 감시자들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레바스의 안장에서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세야는 이제 막 그의 그리폰을 만났고, 겨우 형성되기 시작한 부서질듯한 유대감을 끊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임무에 대한 두려움이 진정한 그리폰 기수가 됐다는 흥분감과 팽팽하게 맞섰고, 그는 아마 그게 감시자 사령관의 의도한 바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그들이 마주할 운명으로부터 이렇게 효과적으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법은 달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운명을 마주하러 가야했고, 그는 내키지 않는 몸짓으로 레바스에서 내려 그리폰의 흉터 있는 목 부분을 작별인사 삼아 토닥인 뒤 감시자 사령관을 따라 왕궁의 서늘한 그늘 속으로 향했다.
젊은 감시자들이 내려가는 사이 홀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벽 가득한 장미덩굴은 긴 낮동안 햇빛을 받고 석양에 맞춰 시들기 시작해 부드럽게 흔들리며 정원 안을 백단향으로 채웠다. 가시덤불 사이로 몸을 숨기는 노란 가슴깃의 작은 새들과 바람에 살랑이는 꽃송이의 움직임 외에 이세야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경비대도 정원사도 전부 왕궁을 버리고 도망친 것 같았다.
"소문이 퍼졌나 보네." 개러헬이 말했다. 평상시 띠우고 있던 가벼운 미소는 간 데 없었고, 두 손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단검 한 쌍의 검은색 손잡이에 얹혀 있었다. "만약 이들이 공포로 날뛴다면..."
이세야는 등 뒤에 맨 지팡이를 풀어냈다. 룬이 박힌 금속 위로 마법이 웅웅거렸다. 그는 그 금속에서 영계와 이어지는 진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기묘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그 형태없는 에너지는 불이 될 수도 있고, 번개, 얼음, 혹은 순수한 힘의 파동이 되어 지팡이 끝에서 뻗어나갈 것이었다.
그 힘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크든 간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겨눈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이세야는 지팡이를 꼭 쥔 채 동생과 함께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빈 홀을 따라 걸었다. "전투가 벌어질까?"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개러헬이 대답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자신들의 통치자가 그들을 배신했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그렇게 느꼈고, 그 결과 폭동이 뒤따랐다. 이세야는 청동으로 된 새끼용 조각상 앞에서 첫 희생자를 발견했다. 동상의 활짝 펼친 날개 덕에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동상을 돌아서자 죽은 여성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동상의 눈을 장식한 루비만큼이나 붉은 피가 희생자의 하얀 리넨 드레스를 물들였다. 소매를 두른 금박 장식이 여자의 귀족 신분을 짐작하게 했고, 어쩌면 왕족일 수도 있어 보였다. 방어의 흔적 없이 깔끔한 상처로 미루어 눈치 채기도 전에 당한 듯 했다. 얼굴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이세야는 부디 그 과정이 짧았길 바랐다.
"아마 더 있을 거야." 개러헬은 우울하게 중얼거렸고, 죽은 여자를 지나 빠르게 걸어갔다. 잠시 뒤 이세야의 귀에도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 영계에서 끌어낸 마법이 웅웅거리며 현실로 구현되는 소리.
알현실 쪽이다. 모두의 머릿 속에 동시에 깨달음이 스쳐갔다. 그들은 전부 달리기 시작했다.
안더펠스인이 그들 중 제일 빨랐고, 엘프들을 지나쳐 알현실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안은 전투가 한창이었다. 뒤집은 협탁을 엄폐물로 삼은 휴블과 덴디가 눈에 들어왔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경비대의 시체가 덴디의 마법과 휴블의 검에 불에 타고 언 채로 조각 나 눈앞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두 배는 됨직한 인원이 여전히 싸우고 있었고, 피를 요구하는 그들의 분노가 벽을 메아리쳤다.
시체들 사이에 국왕 엘라우디오의 모습이 있었다. 자신의 호위병 중 하나에게 당한 듯 했다. 안티바 왕궁 친위대의 굽어진 칼날이 왕의 가슴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고, 금빛 검날은 검붉은 피에 젖어 있었다.
왕비는 아직 살아 있었다. 겁에 질린 몇 안 남은 귀족들과 함께 왕좌 뒤에 몸을 웅크리고서. 회색 감시자들이 가로 막고 있어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지만, 한 눈에 봐도 휴블과 덴디는 지쳐 있었다.
"그 비겁자들을 포기해라!" 폭동을 일으킨 경비대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우린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그저 우릴 배신한 저 뻔뻔한 새끼들을 원할 뿐이다!"
"넘겨줄 수 없다." 덴디가 사납게 받아쳤다. "우리의 의무는 이들을 데려가는 것이다. 우리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의 지팡이에서 서리바람이 몰아쳐 마주 선 두 명의 병사를 얼려버렸다. 세 번째 병사는 초자연적인 추위를 막아내기 위해 팔을 들어올렸으나 혈관에서 터져나온 얼어붙은 피가 붉은색 얼음파편으로 흩어지자 높은 비명을 내질렀다.
몇몇 병사들은 문이 열리자 몸을 돌렸다. 개러헬은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는 문신을 한 안더펠스 남자와 몇 달은 연습한 것처럼 나란히 함께 싸웠다. 안더펠스인은 거대한 날이 달린 전투용 곤봉을 휘둘러 적들을 밀쳐냈고, 엘프가 재빠르게 파고 들어 중심을 잃은 상대의 틈새를 찔렀다.
그 뒤에서 이세야는 영계로부터 재빠르게 마법을 끌어내 영혼 에너지가 형태를 채 갖추기도 전에 보랏빛 이글거리는 화살을 거침없이 쏘아보냈다. 조급하게 쏟아낸 공격은 적들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비대는 쏟아지는 공격에 뒤로 비틀거렸고 나머지 감시자들이 그들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공포도 죄책감도 사람들을 해친다는데 대한 거리낌도 모두 잊어버렸다. 그 순간 느껴진 거라곤 마주한 적을 모두 파괴하겠다는 광기어린 열망 뿐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정리됐다. 두 무리의 회색 감시자들 사이에 갇힌 경비대는 금세 무너졌다. 마지막 몇 사람은 항복하려 시도했지만 덴디는 간청이 끝나기도 전에 얼음조각으로 그들을 끝내버렸다.
안더펠스인의 가슴팍과 팔뚝에 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상은 자칫 위험해보이지만 실제로는 깊지 않은 듯 했다. 개러헬은 눈썹 부위에 작게 긁힌 상처를 얻었고 철퇴에 빗맞은 갈비뼈에는 벌써 멍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법의 도움이 필요할만한 심각한 부상은 아닌 듯 보였고, 감시자 기준에선 다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데리고 탈출해." 덴디가 모여있는 귀족 생존자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당장."
"국왕은 어쩝니까?" 카이야가 초조하게 질문했다. 대머리 소년은 이세야와 마찬가지로 급박한 전투가 끝나고나자 자신이 벌여놓은 살육의 현장을 직시하며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어둠의 피조물 손에 죽은 거야." 덴디가 딱딱하게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국민들의 손에 죽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대재앙이 안티바 시티를 덮치지만 않았더라도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 어둠의 피조물이 국왕 엘라우디오의 죽음의 원인인 거야, 비록 직접적인 이유는 아닐 지라도."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네." 왕비가 벌떡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다. 창백한 뺨 위로 혈색이 일부 돌아와 있었다. "전혀 사실이 아니야."
"폐하의 백성들이 사기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진실입니다. 나중에라도 논쟁하고 싶다면 환영입니다만, 그럴만한 사치가 주어지면 좋겠군요." 덴디가 말했다. 그는 기운차게 귀족들을 앞으로 이끌어 하나씩 젊은 그리폰 기수 손에 넘겼다. 휴블은 한 명씩 지나갈 때마다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이세야는 난무하는 칭호와 고귀함 넘치는 가문명을 거의 기억할 수 없었다.
그의 담당은 단단한 체구의 무예가처럼 보이는 30대 여성이었다. 깔끔하게 자른 윤기나는 검은 머리는 귀족자제보다는 군인에 어울려 보였다. 이름은 아마디스라고 했다. 이세야는 가문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디스가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죽은 경비대원의 시체에서 무기를 훔쳐내는 건 놓치지 않았다. 금실로 된 술이 달린 사브르와 세 개의 휘어진 단검을 챙긴 인간 여성이 짧은 검들을 허리춤에 채우고 가볍게 정돈하는 모습은 한두 번 훔쳐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개러헬의 승객은 칼린이라고 했다. 그는 키가 큰 중년의 사내로 붉은색과 금색이 섞인 마법사 로브를 입고 있었다. 깃털 달린 후드가 그의 얼굴을 감췄다. 이세야가 받은 인상이라곤 뾰족하게 튀어나온 턱과 흑갈색 수염 사이로 보인 창백하고 얇은 입술 뿐이었다. 그가 맨 지팡이는 벼락 맞은 나뭇가지로 만든 것처럼 보였고 구리로 된 바다뱀이 줄기를 휘감고 있었다. 정교한 세공 뿐 아니라 그 지팡이의 생김새 전부에서 힘이 느껴졌지만 이세야는 그가 전투 중에 무언가를 하는 건 보지 못했다.
이세야는 잠시 의문을 품었으나 오래 가진 않았다. 그저 왕이 눈 앞에서 죽는 걸 보고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못한 것이겠지.
카이야와 타이야는 마지막 두 귀족을 넘겨받았다. 안더펠스인은 국왕이 죽는 바람에 한 자리가 남아 따로 담당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 중 한 명은 하얀 머리쓰개를 단단히 두른 땅딸막한 체구의 중년 여성이었다. 그는 손에 두른 창조주의 불타는 태양이 원 안에 그려진 금색 펜던트를 절대 놓지 않았다. 이세야는 다른 한 쪽이 그의 딸일 거라고 생각했다. 더 젊고 날씬했지만 동그란 뺨이 비슷한 인상이었다.
"좋아." 덴디는 마지막 귀족을 소개하고 감시자와 짝 지어준 뒤 말했다. "가라. 와이컴을 목표로 하는 걸 잊지 말고. 혹여 누가 뒤쳐지더라도 기다리지 마라. 너희의 의무는 이 사람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거야. 오직 그 뿐이다. 너희에게 그리폰이 주어지 이유도 그 뿐이고. 이제 가서 수행해라."
==
기존에 여성형 대명사 she를 '그녀'로 번역한 부분을 전부 '그'로 수정하였습니다. 오역 / 오타 제보 환영합니다.
'Dragon Age > Last Fli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LF - 챕터 6 (0) | 2020.04.26 |
---|---|
LF - 챕터 5 (0) | 2020.04.26 |
LF - 챕터 3 (0) | 2020.04.26 |
LF - 챕터 2 (0) | 2020.04.26 |
LF - 챕터 1 (0) | 2020.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