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하

etc. 2020. 11. 8. 18:58

2003.08.02 ~ 2020.11.06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내가 네 마리 고양이를 모두 보내고, 마지막으로 가하에 대한 글을 쓰는 날이. 시간은 기억을 너무나 무색하게 흩어놓기 때문에 아직 생생할 때 조금이라도 기록해둬야 한다.

  의외로 가장 덜 힘든 이별이었던 것 같다. 제일 마음의 준비가 된 채로 보내서일까. 내가 원하던 방식으로 원하던 때에(그나마) 이별할 수 있어서였을까. 최근 몇 달 새 체중이 야금야금 줄어 처음 네덜란드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3.3kg였던 것이 마지막에는 2.1kg였다. 체중의 1/3이 줄어드는 그 변화는 행동에서도 드러나 점차 걷는 모습도 버거워 보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자면서 보내는 걸 보면서 이제는 정말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7년 전에 가하를 만났다. 그 때 나는 16살이었고, 모부가 별거에 들어가면서 여섯 식구 살던 집에서 엄마랑 나와 10평 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둘이 살기 시작했다. 모부가 이혼할지 모른다는 사실도, 할머니랑 같이 살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두 다 너무 충격적이고 감당할 수 없던 사춘기였다. 엄마는 아마 그런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는 분 건너건너 새끼 고양이가 태어난 집이 있다는데, 고양이를 키워볼까, 하고 나한테 제안했다. 그렇게 그 집에 가서 네 마리 형제 중에 골랐던 게 가하였다. 삼색이 하나, 턱시도 둘, 그리고 올블랙 아깽이 가하. 턱시도 친구들도 귀여웠지만 한창 중2병 터지던 새끼 덕후는 올블랙 고양이가 뭔가 특별하게 여겨져 가하를 골랐었다. 이름도 지금 와서 밝히자면 당시 좋아하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던 주인공의 반려 호랑이 이름에서 따왔다. 나중에는 쪽팔려서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 별 뜻 없다고 대답했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이 없던 시기였고, 아무 것도 모르고 데려온 거나 다름 없었다. 생후 6주 경에 우리집에 온 가하는 정말로 내 손바닥 만했다. 지금이야 아깽이들 목덜미 잡고 번쩍번쩍 잘 들어 올리지만 그 때는 가하가 정말 너무 작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잘 안아들지도 못하고 어떻게 쓰다듬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도 혹시 깔아 뭉개기라도 할까봐 겁났다. 엄마는 새로 찾은 자유를 만끽하느라 집에 잘 없었다. 그 작은 아파트에서 나에겐 가하 뿐이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

  이후에 업둥이도 잠깐씩 들이고 보리, 딸기, 류하 이렇게 고양이가 자꾸 늘어나는 동안, 가하는 내내 가족들에게는 '항상 까칠한 고양이', 나한테는 '나한테만 덜 까칠한 고양이'로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하는 퍼스널 스페이스도 중요하고 외동 고양이로 사는 게 제일 좋았을 성격인데, 고양이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는 가족들에 다른 고양이들 셋이나 부대끼며 사느라 항상 좀 탐탁치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가하는 참 나를 좋아했다. 나는 언제나 가하가 무슨 기분인지 알았다. 정확히 왜 기분이 나쁜지는 몰라도 언제 물 건지, 언제 쓰다듬 받고 싶은지, 언제 이불 속에 들어오고 싶은지, 항상 알았다. 둘만 침대에서 잘 때면 슬그머니 가슴께로 올라와서 고르릉 거리면서 쭉쭉이, 꾹꾹이를 했다. 좀 더 나이 들고 나선 그나마도 안했지만.

  대학 때는 집에 잘 안 붙어 있어서, 떠올려 보면 미안할 따름이다. 그나마 자취하러 나가서는 가하랑 보리만 데리고 나가서 원룸에서 셋이 옹기종기 잘 지냈지만, 집에는 머리만 누이러 오는 언니가 야속했을 법도 한데. 항상 지나고 나서야 생각한다. 가하는 네덜란드 와서 참 행복했겠구나. 그전까지 집에 잘 붙어있지도 않고, 집에서도 맨날 게임하고 어쩌고 잘 놀아주지도 않는 동거인을 잘도 참아줬구나. 좀 더 많이 시간을 보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결국 가장 최근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와서 가하의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창틀에 놓인 바구니에서 햇살 가득 누리며 괭합성 하던 모습. 가뜩 까만 털이라 따끈따끈해진 옆구리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으면 풍기던 가하 냄새. 늙어서 발톱도 잘 못 감추는 탓에 트친 분이 '쌀알 발톱'이라 부르던 하얀 발톱이 사진마다 꼭 찍혀 있었는데.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눈을 감아서 항상 반쯤 눈감은 사진만 찍혔다. 다른 트친 분은 멜론빛 눈이라고 하셨는데. 천년 만년 무릎고양이라곤 안하던 애가 보리, 딸기가 떠나고 외동 고양이가 되고 나니 고르릉도 너무 잘하고, 무릎 고양이로 사는 모습이 정말 놀랄 노자였다. 이렇게 혼자 관심 독차지하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였을 줄이야.

  신부전 고양이들을 병원에서 많이 봐서,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는 이미 상상하고 있었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변량이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구토를 보이고, 활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끝. 중간중간 활력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이번인가? 하는 생각에 울고 불고 마음 졸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도 그 때마다 변비약 먹이고, 구토억제제 먹이고 하면서 어떻게든 유지가 돼왔다. 요씨는 약 먹이는 걸 전혀 엄두도 못내는 사람이라 내가 매 번 약을 먹였더니, 나를 미워하고 요씨랑만 친하게 지내서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영영 미워하지는 못하고 5분쯤 화냈다가 다시 풀린다는 점이 또 고마웠다.

  사람은 떠날 때를 안다고 하는데, 고양이도 그럴까. 마지막 3일 정도, 가하는 고르릉도 전혀 안하고, 식빵 자세로 꼬리만 계속 탕탕 치고 있었다. 속도 더부룩하고, 통증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마음 졸이며 병원에 예약을 해놓고, 내일이면 정말 안녕인걸까 하면서 자던 그 밤, 몇 번씩 일어나서 가하가 아직 숨을 쉬고 있나 확인했다. 그런데 새벽 중에, 요씨가 나를 깨워서는 자기 가슴팍에 올라와 앉은 가하를 가리켰다. 아주 작게 고르릉을 하고 있다고. 그 뒤 가하는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내 옆구리에서 잠들었다. 마치 아프기 전 같은 모습. 요씨는 '다시 괜찮아지는 걸까?'하고 물어봤지만, 나에게는 그게 마치 마지막 인사 같이 느껴졌다.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하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사랑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아이를 내 뜻대로 보내주는 게 정말로 옳은 선택일까, 하는 질문을, 많은 보호자들이 품는다. 애들은 대답을 못하니까, 그리고 아마 묻는다고 해도 죽고 싶다고 대답하는 아이는 없겠지. 아이가 원하는 것은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 텐데, 어떤 방법으로도 그게 불가능하다면, '아프지 않게'라도 해주는 것이 보호자의 선택인 것이다. 불공평한 선택이라도 어쩔 수 없다. 그 불공평함에 대한 죄책감까지도 보호자 몫이기 때문에.

 

  삶의 절반을 넘게 함께 했는데,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니. 너무 이상하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내 사랑. 내 새끼. 천사 같은 내 고양이. 언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누구보다도 오래 언니 옆에 머물다 간 천재 고양이.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드워] 반추  (2) 2021.02.21
[콜드워] 일상  (0) 2021.02.21
보리  (0) 2020.11.08
딸기  (0) 2020.11.08
류하  (0) 2020.11.08
Posted by 깜장캣
,

보리

etc. 2020. 11. 8. 18:21

2003. 06 ~ 2019. 09. 26

  보리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지났다. 류하와 딸기에 대해서 썼던 것처럼 보리에 대해서도 더 늦기 전에, 내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빨리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나는 아직도 보리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바랄 것이다. 아이가 최대한 나와 함께 오래 있길 바라되, 아파서 고생하다 떠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보리와의 이별은 참 '이상적'이었다. 갑작스런 흉수 증상으로 짧게 아파하다가 떠난 류하나, 식욕부진과 통증으로 한동안 쳐져 있다가 간종양으로 보내줘야 했던 딸기에 비하면, 보리는 크게 앓거나 힘들어하지 않다가 떠났다. 혹은 그랬다고 생각한다. 확신할 수 없는 건 내가 마지막 순간에 옆에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사실 휴가 중이 아니라 집에 있었어도 내가 어떤 신호를 알아차렸을지는 모르겠다.

  작년 1월 네덜란드에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2.6kg 정도였던 몸무게가 최근 1년 사이 점점 줄어서 2kg, 1.8kg, 마지막엔 1.6kg까지 조금씩 줄어갔다. 장모종이라 티가 안날 법 한데도 쓰다듬으면 척추뼈가 그대로 손끝에 느껴질만큼 야위었고, 뒷다리 근육도 많이 위축돼 식탁 의자를 뛰어오르다가 떨어질 정도였다. 식욕도 활력도 그대로인데 그냥 그렇게 점점 약해져갔다. 그 외에 달라진 점이라면 이전보다 훨씬 사람한테 치대고 꼭 붙어있으려 했던 정도? 아마 체온 유지가 힘들어서 추웠던 게 아닐까 싶다. 소파에 앉기만 하면 쪼르르 달려와서 냉큼 무릎이며 옆구리에 꼭 붙어서 고르릉 거리며 잠을 잤다.

  그래서 인사할 틈이 없었다. 공항에 가기 전 이마에 뽀뽀하고 쓰다듬으며 '언니 금방 올게, 엄마아빠랑 친하게 지내면서 잘 있어' 하고 인사할 때에는 상상도 못했다. 나한테 훨씬 의존적인 가하를 걱정하면 걱정했지, 누구든 사람만 있으면 금세 고르릉거리고 안기는 보리에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산책 가자고 조르고, 맛있는 거 달라고 조르면서 아버님이랑 친하게 지내겠지,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사진도 거의 매일 받았다. 매일 부모님이 번갈아 다녀가시며 무릎에 앉은 사진, 침대에서 자는 사진 같은 걸 보내오셨다. 예전에 잠시 그 댁에 묵을 때에도 정원 산책도 하고 거실에서 쉬기도 하며 친해졌던 터라, 두 분 다 보리를 참 예뻐하셨다. 그런 보리가 죽어있는 걸 발견한 아버님도 많이 놀라고 슬프셨겠지.

  그 날 나는 대만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맛있게 샤브샤브를 먹었고, 칵테일이나 한 잔 하자며 요씨랑 만나기로 한 술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요씨가 심각한 얼굴로 나한테 '보리가 돌아가셨어.'라고 말했다. Passed away의 한국어형을 그것 밖에 몰라서...지금 생각하면 역시 좀 웃긴데 단어를 듣는 순간에는, 즉각적으로 그 뜻이 머릿 속에 박혔는데도 이해가 안 돼서 '뭐?'하고 되물었고, 요씨는 다시 '보리가 돌아가셨어.'라고 말했다. 당장 눈물이 터져나와서 밖으로 뛰쳐 나가는 동안에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계속 '뭐? 무슨 소리야?' 하고 질문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이해와 의문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아, 갔구나. 하지만 왜?

  놀랍지만, 아주아주 놀랍지는 않은 일. 점점 야위고 자그마해져간 만 16살 고양이가 잠들듯이 세상을 떠난 일. 크게 앓거나 지병으로 고통에 시달리진 않았고, 그냥 더 이상 몸이 견디지 못하고 작동을 멈춘 일. 사람으로 치면 다들 호상이라고 할 만한 그런 일.

  엉엉 울다가 요씨한테 집에 가자고, 빨리, 그냥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예정된 비행기는 이틀 뒤 저녁이었지만, 어떻게든 빨리 가자고. 택시를 타고 짐을 맡아준 친구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에는 눈물은 안 나고 그냥 묵묵히 인터넷을 뒤졌다. 암스테르담 행 가장 빠른 비행기. 같은 항공사인지, 이전 표는 취소가 가능한지, 당장 오늘 밤 비행기가 과연 체크인이 가능한지, 온갖 경우의 수를 찾으며 심지어 밤 중에 공항까지 갔지만 결국 그 밤에는 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전화통을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한 끝에야, 저녁에 출발해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다.

  하루 차이. 그걸 위해 써야한 돈이 왕복 항공표보다 더 들긴 했다. 요씨는 나보다 이성적인 편이라 사실 일찍 돌아가기 위한 이 비용을 그리 내켜하진 않았다. 나도 이해는 간다. 일찍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다만 그렇게 대만에 하루 더 머문다는 게,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환승을 서너 번씩 해서 30시간이 걸려서 돌아가더라도, 돌아가는 길에 있으면 있었지 낯선 땅에서 '휴가'를 보내며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끝없이 자해를 했다. 팔을 물어뜯고, 손톱으로 피부를 긁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고 뺨을 때렸다. 자해 습관은 중고등학생 때까지 있다가 없어졌는데,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아서 자꾸 다른 데로 고통을 분산시켜야 했다. 당장 보리 옆에 있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하루 일찍 집에 돌아와, 가하랑 인사를 하고, 보리 사체를 맡아두고 있는 병원에 전화해 오후에 가겠다고 약속을 잡은 뒤 잠깐 눈을 붙였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말고는 그 때까지도 그리 많이 울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보리를 볼 때까지만 참자'고 나를 억누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병원에서 일했으니까 사체를 맡긴다는 게, 결국 부패가 진행되지 않도록 얼려둔다는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후세계나 영혼도 믿지 않으니까, 내가 병원에 가서 보게 될 것은 보리가 아닌, 이제 없는 보리의 반쯤 얼어있는 시체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차갑고 작은 털뭉치. 아마 안 보고 그대로 태워달라고 했었어도 됐을 일을. 그래도 맡아달라고 한 건, 그래도 보러 간 건, 그렇게 보지 않으면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보리가 정말로 죽었고, 내 앞에 있는 건 보리의 있었던 흔적이고, 이제 나는 다시는 보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한 때 보리였던 보리의 사체를 보며 그제서야 억누른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하는 전해질리 없는 말도 하며, 이름도 부르며. 이미 없는 보리한테.

  직접 보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화장을 부탁하고 시체를 보고 왔는데도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서 평소엔 별로 슬픈 줄도 모르고 지낸다. 집에 가면 혼자 남은 뒤로 유독 사랑이 넘치는 가하를 열심히 예뻐하고 사랑하며 그냥 살던대로 살다가, '아 정말 한 마리네' 하고 이따끔 생각한다. 그 때 드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부조리함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한테 고양이가 한 마리 밖에 없을 리가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이질감.

  잘 때면 자연스레 베개 사이를 비워놓았는데. 그러면 무게도 안 느껴질만큼 가벼운 몸으로 폴짝 침대에 뛰어 올라 자그마한 몸을 그 사이에 맞춰 웅크린 뒤 고르릉 거렸는데. 아침이면 시리얼 먹을 때 우유며 요거트를 달라며 식탁 위에 뛰어 올라와 큰 소리로 보챘는데. 햇살이 좋은 날이면 빨리 바람 쐬러 가자고 조르다가 날씨가 추우면 3분 만에 집에 돌아오기도 했는데. 낮 시간 동안에는 괭합성 하면서 바구니에서 자는 걸 좋아했는데. 게임 중이면 꼭 키보드 바로 앞에 좁은 틈새에 엉덩이를 걸치고 냅다 얼굴을 들이대면서 뺨을 쓰다듬어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한데 네가 없을까. 밀려든 추억들이 댐을 무너뜨리는 순간에야 눈물이 터진다. 너무너무 보고싶어서 가슴이 아프고 숨이 턱턱 막힌다. 항상 '보↗리야!'하고 부르던 이름을 부를 일이 없다는 것조차 서럽고 억울하다. 이제 없다니. 정말로 이제는 없다니.

 

  보리를 처음 만난 건 14년 전, 보리를 임보 중인 지인 분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지인 분은 작업실에 고양이 7~8마리를 두고 계셨고, 그 댁 검은 고양이 총각과 갓 1살을 넘긴 가하 사이에 새끼를 보고 싶어서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겠지만) 가하를 잠시 그곳에 데려다 놓은 상태였다. 2주 가량 가하를 맡겨둔 사이에 그 분 블로그에 잠시 임보 중이라는 보리 사진이 올라왔고, 가하도 볼 겸 주말에 찾아간 작업실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보리를 처음 실물로 마주하자마자, 나는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보리는 페르시안 믹스라 약간 코가 눌린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가만히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조차 사람들은 '이 친구는 왜 이렇게 뚱해?'하고 묻는다. 헌데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보리가 항상 찡그린 얼굴이라든가, 험상궂은 인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평생 보리를 볼 때마다 보리가 정말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얼굴로, 요정 같은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보리는 체구가 자그마한 고양이였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마치 요정 같이 딴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작은 고양이가 세상 만사 귀찮다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홀린 듯이 바라봤다. 그런데 그렇게 보고 있던 와중, 작업실에서 사는 지인 분 고양이가 옆을 지나가자 아무 예고도 없이 지나가던 그 친구를 앞발로 빡! 때렸다. 지인 분 고양이들은 대부분 사람한테나 고양이한테나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는데, 맞은 친구는 ㅇㅁㅇ...? 하는 얼굴로 잠깐 당황하고선 다시 지나갔고, 보리는 방금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다시 요정같은 모습으로 새침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난 어쩐지 그 모습에 운명을 느꼈다.

  보리는 그렇게 우리집 둘째 고양이가 됐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기로 한 두 번째 고양이. 내가 보리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온 날, 바로 다른 사람한테 입양 문의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역시 운명 아닐까. 내가 그 날 가서, 그렇게 보리를 본 게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한 운명적 만남일 거야. 그런 생각을 했다.

  이동장에 담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보리는 이동장 안에서 작게 고르릉 거렸다. 상대적으로 고르릉을 거의 안 하는 가하만 키워왔던 나에겐 신선한 반응이었다. 집에 데리고 돌아와 가방을 열자마자 보리는 숨는 기색도 없이 냉큼 내 방 침대에 올라가 식빵을 구웠다. 마치 이 집이 앞으로 살 자기집이라는 걸 아는 것마냥. 목욕을 시키는 중에도, 밥을 먹는 중에도 끝없이 고르릉거렸다. 우리집에 와서 행복했던 것 같다.

  가하도 참 외동 성격이긴 한데, 보리도 정말 '사람'만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가하랑은 그나마 데면데면 척은 했으나 새로 류하가 오고 딸기가 올 때마다 질색팔색 싫어했다. 근처에 너무 가깝게 지나가기라도 했다간 냅다 앞발을 날렸지만, 거리만 유지하면 먼저 싸움을 걸진 않았다. 체구는 제일 작은 게 깡은 대단하다고 가족들이 다 웃었다.

  사람한테는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할 수가 없었다. 누구든 자길 예뻐할 것 같은 사람이다 싶으면 냅다 가서 머리를 들이밀고 고르릉거렸다. 나는 항상 보리에 대한 내 사랑은 외사랑이라고 하곤 했다. 내가 아무리 보리를 사랑해도 보리는 정말 만인을 평등하게 대했어서.

    워낙 누구한테는 예뻐해달라 들이대는 성격이라 손님들 중 보리를 안 사랑한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 같이 살았던 린언니도 작업할 때 다른 고양이는 다 내보내도 보리만은 꼭 끼고 일했고, 쓰다듬어 달라는 애교에 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누군들. 반쯤 감은 물기어린 눈으로 야옹 소리와 함께 바라보는 보리한테 어떻게 안 넘어가겠어.

  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선 가하랑 보리, 이렇게 둘이 내 고양이였다. 류하는 미처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하는 아픈 손가락, 딸기는 내가 아니어도 사랑해줄 사람 많은 귀염둥이, 내가 선택해서 평생 함께 하기로 한 내 고양이는 가하랑 보리 두 마리. 물론 시간이 사랑을 쌓아 결국 나는 내 고양이 네 마리가 있는 사람이 됐지만.

  자취할 때도 가하랑 보리는 나랑 같이 살았으니까, 보리는 내가 여행 가있거나 할 때 빼고는 한시도 나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내 삶에 보리가 없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보리한테 입버릇처럼 '언니는 너 없으면 못 살아. 그러니까 딱 10년만 같이 더 살자.'하고 속삭이곤 했다. 이제는 귀도 거의 안 들리는데도.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좋아하고, 맛있는 거 달라고 보채니까 10년은 아니라도 좀 더 같이 있엊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진첩에는 동그랗게 만 털뭉치 같은 보리, 햇살 아래 괭합성 하는 보리, 산책하며 꽃 옆에서 찍힌 보리, 가슴 위에 올라와 꾹꾹이에 심취한 보리, 맛있는 걸 안 줘서 심통난 표정의 보리, 수천 장의 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믿을 수 있을 때만 눈물이 난다. 이제는 정말 고양이가 한 마리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엔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드워] 반추  (2) 2021.02.21
[콜드워] 일상  (0) 2021.02.21
가하  (0) 2020.11.08
딸기  (0) 2020.11.08
류하  (0) 2020.11.08
Posted by 깜장캣
,

딸기

etc. 2020. 11. 8. 18:20

2004.12 ~ 2019.08.25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에 딸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집엔 가하와 보리, 두 마리 고양이가 있었다. 가하는 손바닥 만할 때부터 키운 내 첫 고양이였고, 보리는 아는 분이 임보 중이던 걸 내가 첫 눈에 반해 데려온 경우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사료비며 병원비며 모두 부모님께 의지해야 했던 지라 두 마리로도 충분히 부담된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더 고양이를 늘릴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딸기는 우리 큰이모 댁 아랫집 이웃 아주머니의 아들이 파양한 고양이였다. 그 시절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고양이에 대해 알고 키우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 아들은 아마 예쁘다는 이유로 터키쉬 앙고라 품종의 아기 고양이를 들였다가, 생각보다 통제가 되지 않는 아깽이의 난장판에 키우기 힘들다고 여긴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화장실을 잘 가린다는데 소변도 아무데나 보고 감당할 수가 없다며 파양하고 싶어했고, 아는 사람 중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 있냐는 말에 서너 다리를 건너 나한테 넘어왔다. 사촌언니 네 집에 잠시 맡아두려고 데려다놓은 딸기를 보러 엄마랑 이모랑 같이 찾아간 게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나는 이미 엄마한테 무슨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들이냐며, 품종묘니까 키울 사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거절하는 게 낫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의외로 딸기한테 한 눈에 반한 건 우리 엄마였다. 그도 그럴 것이, 딸기는 정말 귀여웠으니까. 3개월 반 가량 된 아기 고양이가 얼마나 예쁜지는 말 안해도 당연할 테고, 그 와중에 유달리 천진난만하고 생각 없이 구는 모습에 엄마가 홀딱 넘어가 버렸다. 아마 아이스크림을 먹는 엄마 무릎 위로 거침없이 올라와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는 순간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딸기는 귀가 안 들리는, 하얀 털의 파란 눈을 가진 고양이들의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첫 날부터 그걸 알았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파란 눈의 흰털 고양이는 그렇다더라, 하는 내용을 알고 있었고, 방울 달린 장난감을 흔드는데 시야에서 사라지면 못 찾는 모습에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모네 아랫집 아주머니 아들 놈은 그런 사실도 몰랐던 것 같다. 진짜 뭣도 모르는 새끼가 고양이는 키운다고 나대가지고는, 싶지만. 짠함+귀여움+예쁨 등등의 이유로 딸기는 그렇게 우리집 셋째가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딸기는 좀 특이하긴 했다. 단순히 귀가 안 들려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지, 지능이 실제로 좀 떨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고양이들이 안 하는 행동을 많이 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벌였다. 누구에게나 착착 안겨서 가족들은 붙임성이 좋다고 마냥 예뻐했으나, 나는 사실 딸기가 사람을 구분하긴 하는 건지 항상 의문이었다. 오히려 나밖에 모르는 붙박이 가하나 유순한 듯 보여도 성격 확실한 보리 쪽에 더 정이 갔지 아무래도 딸기는 '내' 고양이 같지가 않다는 생각에 정이 잘 안 들었다.

  하지만 딸기는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고양이였다. 같이 살면서 그 누가 딸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기가 앉고 싶으면 대뜸 무릎이건 가슴 위건 타고 올라 냅다 드러누워 고르릉거리는 고양이를. 맛있는 걸 내밀면 허둥지둥 달려와 손가락 째 깨물고 보는 고양이를. 들리지도 않는 주제에 목청은 좋아서 도무지 고양이 같지 않은 뫠애애앵 하는 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고양이를.

  딸기는 손님들한테도 가장 사랑받았다. 낯을 안 가리는 유일한 고양이었으니까 (다시금 말하지만, 사람을 구분하기는 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장난감에도 제일 열정적이어서, 레이저 포인터로 놀아주면 벽을 따라 펄쩍펄쩍 뛰다가 지쳐서는 개처럼 입을 벌리고 헥헥거리기도 했다.

  딸기의 기행은 꼽자면 끝이 없지만, 유달리 다른 고양이들이 안 가는 곳에 잘 올라가는 편이었다. 커다란 냉장고 꼭대기에서 자다가 내가 집에 오면 뫠애애앵 하고는 그 높은데서 바닥으로 한번에 쿵 하고 뛰어내리기도 했고, 베란다 천장에 매달린 빨래건조대를 무슨 수로 올라가서는 그 위에서 잘 때도 많았다. 가장 아찔했던 기억은, 당시 11층 복도형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집들이로 친척들이 잔뜩 다녀간 후 딸기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아서, 귀도 안 들리는 애를 어떻게 찾나 하며 사색이 되어 오밤 중에 딸기를 찾으러 뛰쳐나갔다. 이름을 부를 수도 없어서 아파트 화단 구석구석을 뒤지던 도중, 어디 멀리 높은 곳에서 딸기 특유의 뫠애애앵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보니 딸기가 담배 피운다고 방충망까지 열어둔 베란다 난간을 타고, 옆집 베란다 난간 사이로 넘어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11층 베란다를! 난간을 따라 넘어갔다고!! 옆집 사람들이 집에 돌아와 불을 켜자 놀라서 야옹거리는 바람에 우리가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아찔한 일이었다. 대체 거길 왜 넘어갔을까 정말...

  가족들이 예뻐하는 편이다보니 대학생 때 자취할 때에는 가하랑 보리만 데려오고 딸기는 류하랑 같이 집에 두고 왔었다. 류하는 묘하게 딸기를 예뻐해서, 지나가는 딸기를 붙잡아다가 그루밍도 해주고, 딸기가 퍼스널 스페이스를 무시하고 옆에 딱 달라붙어도 짜증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잠시 류하만 데려와 살면서 딸기 혼자 집에 남은 기간이 지나고서는 둘 사이도 다시 좀 서먹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자취하는 동안 고양이들을 전부 다 챙기지 못한 게 참 미안하다. 류하랑 딸기는 엄마랑 지냈는데, 우리 엄마는 고양이들을 예뻐는 해도 돌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화장실도 항상 더러운 편이었고, 장모종이지만 딸기 털은 항상 좀 뭉쳐있었다.

  옛날 기억은 사진으로 볼 때 말고는 사실 많이 떠오르는 건 없다. 항상 새로운 기억이 옛날 기억을 덮어쓰다보니 당장 딸기를 떠올리면 최근 일 위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내가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집을 얻어 나오면서 요씨랑 같이 네 마리와 함께 살고, 류하가 떠나고, 남은 세 마리를 들고 비행기를 타고 넘어오고...그 사이 딸기는 여전히 해맑고 망충한 우리집 막내였지만, 중간에 원인불명의 신경증상으로 MRI도 찍고, 이후로 조금씩 끝없이 뱅뱅 도는 서클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크게 병치레 하는 일 없이, 이 정도면 무탈하게 잘 지내온 것 같다.

  네덜란드에 와서 다시 신경증상을 보이고 어지러움으로 구토를 계속 하는 바람에 스테로이드를 먹이기 시작했다. 추가로 뇌 검사를 한다 해봤자 크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서 증상 억제용으로 1년 반정도 먹였다. 확실히 나이가 드니까 예전만큼 장난감에 반응하는 일도 줄었고 잠이 늘었지만, 그래도 다른 두 마리에 비해선 제일 활발했다. 뱅뱅 돌기는 해도 집안 곳곳을 헤집고 다녔고, 여전히 이상한 곳을 찾아 서랍 뒤, 창틀 난간 등 좋아하는 자리를 바꿔가며 잠을 잤다. 뱅뱅 도느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화장실에 들어가 출구를 못찾고 뫠애앵 거리는 걸 종종 구하러 가야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배도 너무 빵빵해지고, 다시 구토를 시작하는 바람에 약을 다른 종류로 바꾼지 한 달 정도만에, 딸기는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안락사를 택하게 된 정확한 원인은 초음파 상으로 관찰 된 림프종으로 의심되는 덩어리 때문이었다. 고양이 림프종은 악성 종양 중에서도 유달리 답이 없는 종류고, 이미 비장에도 전이된 것 같아 보인다는 말에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먹인 스테로이드 덕에 종양 성장이 좀 더뎠을 수도 있었다는 말은 위안이 된다. 하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았을까. 고르릉거리며 자는 와중에도 종종 꼬리를 퍼덕이던 게 사실 만성 통증이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원래 이별하고 나면 후회만 남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 나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까. 이제는 아프지 않겠지만, 그래도 좀 더 일찍 덜 아프게 해줄 수 있던 게 아닐까.

  슬픔은 생각보다 한 번에 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파도처럼, 물결치며 밀려들었다가 멀어져간다. 보내고 온 다음 날에는 집에서 하루 종일 쉬며 평소처럼 할 일을 하다가 울고, 다시 대청소를 마치고, 다시 울고, 웹툰을 보면서 조금 웃다가 또 울고. 엉엉 소리내어 우는 언니를 보고 놀라 달려오는 가하 때문에 다시 좀 웃고. 그리고 다시 출근해서는 평소처럼 일하다가, 어쩐지 허기지고 텅 빈 느낌에 초콜릿 따위를 계속 주워먹었다.

  집은 넓고, 내 시야에 꼭 세 마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법은 없었는데도, 집에서 가하랑 보리를 보고 있으면 매 순간 매 초 딸기의 빈 자리가 느껴진다. 텅 빈 소파를 보며 저 방 너머 침대에라도 있어야 할 딸기를 떠올린다. 혹은 서랍 뒤일 수도, 변기뚜껑 위일 수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는데,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어딜 봐도 뼈아프게 와닿는다. 이 느낌은 슬픔보다는 부당함에 가깝다. 어떻게 우리 집에 고양이가 둘 밖에 없을 수가 있지? 왜 둘이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뭔가 옳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 이상한 평행 세계에라도 떨어진 느낌. 이게 내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이려면 아직은 흘릴 눈물이 더 남은 것 같다.

  첫 만남부터 이별은 예정돼 있었다. 누구도 자신의 반려동물이 자신보다 오래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 이미 반평생을 함께 해 왔으니 '더 오래'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것도 안다. 항상 바람은 그 뿐이었다. 아프지 않게 있다가, 혹시 아프면 빨리 아프지 않게 보내줄 수 있기를.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이별은 바람직했다.  중요한 건 사랑한 기억 뿐이다. 딸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고양이였는지, 내가 그 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감정을 안고 가야한다. 딸기는 이제 없으니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고양이라 나 말고도 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영혼도, 저 너머나 무지개다리 건너 같은 것도 믿지 않아서, 이제는 그저 없을 뿐인 딸기가, 있는 동안에는 행복했으리라 바랄 뿐이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드워] 반추  (2) 2021.02.21
[콜드워] 일상  (0) 2021.02.21
가하  (0) 2020.11.08
보리  (0) 2020.11.08
류하  (0) 2020.11.08
Posted by 깜장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