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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숭고의 시대

 

  "어둠의 피조물들이 이용하는 지하대로의 출입구를 발견했어." 이세야는 레바스를 호스버그 성 마당에 착륙시키며 말했다. "간밤에 있던 전투에서 낙오된 놈 하나를 뒤따라 갔었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우리 마법사들만으로도 충분히 무너뜨려 봉쇄시킬 수 있을만큼 작은 크기였어."

  "우리가 어둠의 피조물들의 증원군을 차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개러헬이 물었다. 그는 이미 한참 전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목욕으로 젖은 금발 머리가 짙은 빛을 띠었고 옷차림 역시 전투용 갑옷 대신 잠자리에 적합할 것 같은 부드러운 로브 차림이었다. 이세야는 아마디스 역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 인간 여성은 그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개러헬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를 공공연히 드러내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어쨌든 그가 뭐라 간섭할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두 사람이 딱히 법을 어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예절이니 뭔지 하는 얘기는 대재앙 앞에선 말할 가치도 없었으니.

  "바로 그거야." 이세야가 대답했다. 그는 레바스의 가슴줄을 풀어준 뒤 눌린 자국이 남은 그리폰의 부드러운 검은 털을 다시 정돈했다. 뒤따라 내린 칼린이 슬쩍 옆으로 비켜서 자리를 내주었다.

  "언제 작전에 들어갈 생각이지?" 아마디스가 물었다.

  "빠를수록 좋아. 내일, 아니면 모레라도." 이세야는 두 개의 안장을 연달아 끌어내린 뒤 성의 하인들이 가져가 관리하고 닦아놓을 수 있도록 한구석에 쌓았다. "그 입구는 그다지 견고해보이지 않았어. 어둠의 피조물들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으니까.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들은 기껏해야 길잃고 헤매는 무리 몇 놈 정도일 거야."

  "그러길 바라는 거겠지." 아마디스가 말했다. 그의 손은 방금 전까지도 이세야 눈에 보이지 않던 허리춤의 단검자루 위에 얹어져 있었다. 그가 손을 떼자 단검은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이세야는 질문하면서도 대답을 듣지 못할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7년 간 못 알아냈으면 앞으로도 모르고 살겠지. 그는 하릴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튼, 맞아. 내 바람은 그래. 혹시라도 숫자가 너무 많다 싶으면 그냥 작전을 포기하고 돌아와서 다른 날 다시 시도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다고 놈들이 거길 강화하거나 수비를 세울 건 아니잖아. 특별히 눈에 띄는 표시 같은 것도 없었어. 오늘 밤까진 그곳의 존재조차 찾을 수 없었으니까."

  "좋은 시도였어." 개러헬이 말했다. 그는 허리를 두른 아마디스의 팔을 푼 뒤 함께 불빛어린 마당을 가로질러 그들의 숙소로 향했다. "그럼 내일 한 번 날아가 보기로 하자. 만약 방어가 그리 두텁지 않다면 무너뜨리는 것도 시도해보고. 아니면 그냥 돌아오면 되고. 작전에 필요한 마법사가 몇 명 정도 될 것 같아?"

  이세야는 어깨를 으쓱하곤 칼린에게 묻는 것처럼 눈썹을 치켜 올려 보였다. "셋? 아니면 넷 정도? 큰 구멍은 아니었고, 그리 안정된 구조처럼 보이지도 않았어. 그냥 대지 위로 난 틈새처럼 보이는 정도고 - 고대 드워프 통로도 아닌 것 같아. 솔직히, 시간만 충분하면 마법사 한 명으로도 충분할 거야. 문제는 시간이 충분하진 않을 거라는 거지. 근처에 어둠의 피조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면 우리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몰려들 테니까. 그러니...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끝내기 위해, 세 명은 넘었으면 좋겠어."

  "나도 동의하네." 칼린도 동의했다. 후드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린 뒤라 그 목소리는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아마디스와 개러헬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럼 내일이야." 엘프가 말했다. "마법사 셋. 두 사람에다가 에라카스가 끼면 될 것 같은데, 그가 펠리세랑 떨어지기만 해준다면."

  "내일 아침에 여기서 봐." 이세야가 말했다. 그의 남동생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마디스와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

  늦은 시각이었고, 마당에는 그들 뿐이었다. 성의 하인들조차 이세야의 안장을 닦기 위해 가져간 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간 뒤였다. 횃불이 밝혀진 성벽을 따라 순찰을 돌며 어둠의 피조물의 습격을 경계하는 감시병들 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칼린은 젠록을 사로잡는 주문을 사용한 뒤 어딘지 가라앉은 느낌이었고, 이세야는 그가 돌아오자마자 숙소로 돌아갈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 외로 그는 다른 이들이 모두 떠난 뒤까지 남아있었다. 그는 아직 레바스에게 먹이를 주고 날개깃을 빗질해줘야 했지만, 그 혈마법사가 머물러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자러 안 가?" 그는 물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고작 몇 발짝 거리인데도 그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했다. "너는 왜 혈마법을 배우고 싶은 거지?"

  "유용할 것 같으니까." 엘프는 기름먹인 천으로 그리폰의 비행깃털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대재앙에 맞서기 위해서라면, 쓸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할 거야. 당신은 왜 배웠지?"

  "나는 이단마법사였으니까." 칼린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록 두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세야는 그가 저 먼 어딘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라기보다는 과거의 망령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단마법사였고,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살아남았으니, 내가 보기엔 효과적인 것 같네. 누구한테 배웠어? 까마귀단에서였나?"

  "아니." 칼린은 우울하게 대답했다. 그가 체중을 싣고 기댄 지팡이를 천천히 돌릴 때마다 머리 부분의 수정이 성벽의 횃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악마로부터였어."

  5년 전이었다면, 그의 발언은 이세야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했을 터였다. 지금의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재앙의 공포는 스승으로 배웠던 해묵은 경고마저 대수롭지 않아 보이게 희석시켜 놓았다. 브루드마더로 끌려가는 여성의 비명을 처음으로 들었던 기억, 그는 그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악마와 천 번이라도 흥정할 수 있을 테니까...비록 수년 간 그런 충동을 조절하도록 훈련해왔다지만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디서 찾았는데?"

  "계약을 이행하던 중의 일이었어. 이단 혈마법사 하나가 안티바로 도망쳐 왔지. 템플러들은 감히 그 놈을 덮칠 수 없었고, 까마귀단을 고용해서 자기네 일을 대신하려 했어. 우리는 트레비소에서 꽃장사로 위장하고 있던 그 놈을 찾아냈어. 쉬운 일일 거라 생각했지만...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지." 칼린은 잠시 침묵했다. 이어서 그는 한숨과 함께 마당의 우물 옆에 놓인 낮은 돌담에 걸터 앉으며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를 벗었다. 지쳐서 굳어진 얼굴 위로 피로가 묻어나는 입가의 주름이 불빛 아래 더 선명해 보였다. "그 놈을 잡았을 때, 우린 왜 그 템플러가 굳이 잽싸게 우리한테 일을 넘겼는지 알 수 있었지. 그는 안티바 까마귀단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했던 게 아니었어. 그 자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길 두려워했던 거야."

  "타락의 괴물이었나?" 이세야가 물었다. 그는 악마에게 굴복해 사로잡힌 마법사들이 어떻게 되는지 본 적 있었다. 그들은 악몽의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 육체는 괴기하게 녹아내려 기분나쁜 꿈 속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적인 형체가 된다. 정신 또한 흩어져 사로잡은 악마에게 지배되거나 - 어느 쪽인지 확실히 알 길은 없었지만 -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대재앙 중에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마법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밖의 힘을 추구하다가 어리석은 방식으로 영계와 접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는 마법사란 위험한 존재였다. 훈련되지 않은 능력으로 자신이나 가족들을 어둠의 피조물로부터 보호하려는 맹목적인 열망이야말로 대재앙 속에서는 타락의 괴물의 근원지나 다름없었다.

  노련한 마법사들 역시, 끝없는 전투로 인한 긴장과 수면부족 탓에 이런 위험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간혹 어떤 이들은 자발적으로 그 길을 택하기도 했다. 더 이상 지원군이나 구조대를 기대할 수 없이 적들에게 둘러싸인 순간, 악마를 육체에 받아들여 놈들에게 마지막 광포한 일격을 가하고 사그라진 감시자 마법사들의 이야기는 뜬소문이 아니었다. 강력한 타락의 괴물이라면 죽기 전까지 수십 마리의 어둠의 피조물을 쓰러트릴 수 있었으니.

  이세야 역시 이미 오래 전 언젠가 자신이 브루드마더로 끌려갈 상황이 닥친다면 차라리 타락의 괴물이 되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공포 속에서 죽는 편이 그 채로 사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랬지." 칼린이 말했다. "그리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어. 겉모습에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으니, 일단 우리가 봤을 땐 말이야. 아마 악마에게 사로잡히기 전의 그 자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다른 느낌을 받았겠지만. 물론 우리로선 알 길이 없었지. 처음으로 이상신호를 느낀 건 그 놈이 독을 바른 단검을 모기라도 쳐내듯 털어냈을 때였어. 그리고 그 놈이 공격해왔고...순식간에 매복팀 중에서 살아서 서 있는 건 그 놈과 나 뿐이었지."

  이세야는 레바스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기름먹인 천으로 나머지 비행깃을 닦기 시작했다. 또한 날개에 상처는 없는지 역시 확인했다. 그리폰은 용맹함과 고집스러움 탓에 때때로 기수에게 통증이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곤 했지만, 일차깃털이 부러지는 것 같은 사소한 손상도 전장에선 재앙으로 번질 수 있었다. "어쩌다 그 악마가 당신한테 마법을 전수한 거지? 당신을 그냥 죽이지 않고?"

  칼린의 입술이 비뚜름한 미소를 띠며 올라갔다. "까마귀단의 명성이 어쨌든 헛것은 아니거든. 그 놈이 우리를 거의 몰살시킨 건 사실이지만 우리 역시 그 대가를 피로 치렀어. 전투가 끝나갈 무렵 그 놈은 거의 죽음을 앞둔 상태였고, 반면 나는 그럭저럭 멀쩡했거든. 금방이라도 놈을 죽여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어. 놈을 붙들고 있던 악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악마가 거래를 제안해온 거로군?"

  "그래. 죽어가는 껍데기를 치료해주는 대신 혈마법을 전수해주겠다고 하더군."

  "그리고 당신은 받아들였고?" 그는 레바스의 날개를 놓아주고 주위를 한 바퀴 돌며 그리폰의 꼬리 깃털을 마저 확인했다. 이세야는 어느새 회색빛이 된 손질용 헝겊을 뒤집어 깨끗한 면이 드러나게 했다.

  "그랬지." 칼린은 스스로의 고백이 지긋지긋한 것 같기도 했고, 어딘지 후련해 보이지도 했다. "나는 지식을 주겠다는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여자를 치료했어. 아주 약간만. 그리고 바로 그 심장에 단검을 꽂아넣었지. 까마귀단은 계약을 어기는 법이 없으니까. 악마하고도, 고객하고도 말이야."

  "그렇게 혈마법사가 된 거군." 이세야는 레바스의 넓다란 등판 너머로 그를 바라봤다. "엄청 속성 학습이었을 것 같네."

  칼린은 웃음기 없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렴. 사실 가르침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어. 악마가 내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누군가의 기억을 쏟아부은 거나 다름 없었거든. 내가 가본 적 없는 영계의 구역이 내 기억 속에 있었고, 배운 적 없는 주문을 외울 수 있게 됐어. 그 지식은 그냥 거기에 있게 된 거야...그리고 오늘까지 한 번도 말한 적도 없었고 한 번도 손댄 적 없는 것처럼 굴어왔지만, 그 악마의 비전은 한 번도 날 떠난 적이 없었어."

  이세야는 그리폰의 몸단장을 마쳤다. 그는 더러워진 손질용 천을 대충 던져둔 뒤 레바스의 어깨를 두들겨 그 야수에게 밤의 자유를 찾아 날아가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알아들은 것처럼 쉿 소리를 낸 레바스는 두 감시자들로부터 물러나 날아올랐고, 안더펠스의 달빛 아래 말라 비틀어진 먹잇감이라도 찾길 바라며 사냥을 떠났다.

  그리폰의 비행이 남긴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이세야는 입주변의 먼지를 슥 닦아내고 칼린을 돌아봤다. "당신이 직접 배운 적 없는 걸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지?"

  "같이 헤쳐나가 봐야할 문제지, 그건." 나이 든 마법사가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기술을 알고 있는 거니까. 내 자신의 기억보다도 훨씬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세야를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이걸 원하는 건가? 이건 말레피카룸이라고.."

  "이건 무기일 뿐이야." 이세야는 눈 하나 깜빡 않고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건 무기이고, 우린 대재앙과 싸우고 있어. 내가 이걸 원하는 건 당연한 거야. 속박의 힘만으로도 이미 강력한 도구이겠지만...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혈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많을 거야."

  "사실이기도 하고," 칼린이 말했다. "아주 많이 있지."

  "나한테 뭘 가르쳐줄 수 있지?"

  "모든 것을." 그가 답했다.

 

* * *

 

 아침은 이세야가 미처 맞이하기도 전에 찾아와버렸다. 그는 지난 밤을 통째로 혈마법의 비밀을 파헤치며 보냈고, 새 날이 밝을 무렵엔 피로감 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칼린 역시 들뜸과 기진맥진 사이의 어드메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이십 년 가까이 홀로 비밀을 지고 살아왔다. 누군가와 그것을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짐을 던 듯 보였고, 새로운 능력이 가져다줄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세야의 열정이 그 자신이 혈마법에 대해 품고있던 껄끄러움을 완화시켜준 것 같았다. 이세야에 비하면 훨씬 조심스러운 태도였지만, 그는 오래 전 그가 덤벼들었던 무모한 도박의 효용을 찾았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이 깨어나 하루를 맞이할 무렵에도, 그 효용이란 건 그다지 뚜렷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첫 번째 하인이 여명빛을 맞으며 물을 긷고 아침 준비에 쓰일 장작을 챙기러 나올 때쯤 그들의 실험을 멈추었다.

  이세야는 주문을 증폭시키기 위해 스스로 냈던 자상 위로 가벼운 회복마법을 걸었다. 그들의 실험은 흔적도 없이 감춰졌고, 그는 칼린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다른 감시자들에게 합류했다.

  "그래서, 오늘이 호스버그를 향한 포위공격을 무너뜨리러 가는 날이라고?" 펠리세는 포리지 죽과 건포도를 국자로 퍼담으며 나란히 선 이세야에게 질문했다.

  이세야는 붉은 머리의 궁수에게 눈썹을 슬쩍 들어보였다. "개러헬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던?"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펠리세는 쾌활하게 대꾸하고는 손에 든 국자를 엘프에게 건넸다. "네 동생이 그렇게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니잖아."

  "기대치를 현실적인 수준에 두는 것도 잘 못하는 편이고." 이세야는 심드렁한 손길로 진득한 귀리죽 한국자를 접시에 퍼담았다. "포위공격을 무너뜨리러 가는 게 아냐. 잘 쳐줘 봐야 그러기 위한 험난하고 피비린내 나는 여정의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수준에 불과할걸."

  펠리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태까지보단 나은 거네. 누가 작전을 이끌 거야?"

  "개러헬이지, 당연히. 그렇게 신이 나 있으니, 이끌기도 잘 할 거야." 그는 가벼운 투로 말했지만, 그는 실제로 최선의 선택지였다. 그가 지난 봄에 전투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물론 감시자 사령관 같이 고정된 지위는 아니었다. 그저 특수한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직함이었지만, 그 덕에 그는 관할 구역에 보내진 모든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의 남동생은 대재앙과 싸워온 수 년 간 자신의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다. 그의 그리폰 역시 어둠의 피조물 무리의 약점을 파악하고 파고드는 신묘한 능력으로 그를 보조했고. 둘의 조합은 감시자들이 지닌 가장 뛰어난 팀 중 하나를 이루었다.

  그리고 7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베테랑이기도 했다.

  "그럼 내가 끼워달라고 조르러 가야할 상대도 그 친구란 말이군." 펠리세가 말했다. 한 손에 접시를 가볍게 받쳐든 그는 피로에 찌든 눈의 병사들과 회색 감시자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개러헬에게 향했다. 이세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하게 우린 차를 컵에 담아 그 뒤를 따랐다.

  칼린은 이미 동생과 아마디스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세 사람과 다른 회색 감시자 두 명은 엉성하게 그려진 지도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섰다. 사슴뿔로 만든 소금통 하나가 가운데 세워져 있었고, 메마른 건포도 몇 개가 왼편으로 삼각형 비슷한 형태를 이루며 늘어서 있었다.

  "전투지도야?" 이세야는 손에 든 컵으로 소금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지." 개러헬은 팔을 뒤로 젖혀 그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공간을 확보했다. "이 정도면 정확해 보여?"

  "아침 식사로 만든 지도로선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는 포리지 그릇을 내려놓고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예상보다 훨씬 끔찍한 맛이었다. 단순히 쓴 정도가 아니라 강한 떫은 맛이 혀를 마비시켰다.

  어쨌든 잠을 깨우는 데엔 효과적이었고, 애초에 그러려고 마신 거였다. 한잠도 못 잔 다음 날이니, 조금이라도 정신을 맑게 해줄만한 거라면 뭐든 환영이었다. 이세야는 신맛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더 들이마시며 얼굴을 찌푸렸다. "굳이 작전 지도까지 필요하겠어? 말했듯이 따로 지키고 선 어둠의 피조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대단한 저항을 마주할 것 같진 않은데."

  "그럴 것 같진 않지만," 개러헬이 끄덕였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충분히 대비하는 게 좋겠지."

  "그게 호스버그의 방어를 느슨히 하는 것만 아니라면 나도 동의하겠어. 하지만 어둠의 피조물이 언제 다시 공격해올지 누가 알고? 우리가 그리폰을 전부 끌고 나간다면 아무리 어둠의 피조물이라도 기회를 알아챌걸."

  "전부 끌고 나가겠다는 건 아니야." 그의 남동생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네 마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네 마리 그리폰에 기수 여덟 명이면 이미 큰 전력이지만 우리 임무를 위험에 빠트릴 정도로 큰 것도 아니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지하대로 입구 쪽에서 합류한 뒤, 목표를 무너뜨리고 호스버그로 돌아오는 거야. 마법사 네 명과 궁수 두 명이 공중을 담당하고 지상전을 대비해 전사 둘을 보내겠어. 이 정도면 합리적이지?"

  "제법."

  "좋아. 칼린, 당신은 이세야와 함께 가. 펠리세, 우선 다나로랑 조락, 리스메, 그리고...오...퉁크랑 뭉크도 데려가."

  붉은 머리 궁수가 주춤했다. "그 드워프들? 그 둘은 하늘만 올라가면 멀미하잖아. 지난 번에 우리 방랑자 날개에다 토해놓은 거 닦느라 며칠이나 걸렸는데. 가슴줄에는 아직도 얼룩이 남아있다고."

  "그렇긴 하지." 개러헬은 여전히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전투에서 그 둘만큼 든든한 방벽은 없잖아. 그 두 형제만으로도 호스버그 성문을 며칠은 지킬 수 있을걸. 게다가, 우리 중 그들만큼 지하대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어. 그들이라면 우리가 놓칠 수도 있는 땅 위의 흔적 같은 걸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을 태워달라는 부탁을 그렇게 자주 한 것도 아니잖아, 펠리세. 이번만 좀 부탁해."

  궁수는 짜증스럽게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좋아. 난 가서 다나로를 찾아볼게. 부디 그 드워프들이 아직 아침식사를 덜 마쳤길 바라야겠군. 뱃속에 든 게 적을수록 치울 것도 적을 테니까 말이야."

  "지당한 말씀이야." 개러헬이 대답했다. 그리곤 이세야가 손도 안 댄 포리지 그릇을 그를 향해 슬쩍 밀었다. "반대로 우리 누님께선 좀 뭘 채워넣으셔야겠어. 지난 밤에 잠을 자긴 한 거야?"

  "별로 못 잤지." 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가져갔다. 식욕이라곤 눈꼽만치도 없었지만 그는 찐득거리는 귀리죽을 어떻게든 우겨넣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그래야지. 다 먹으면 마당으로 나와. 낮시간을 최대한 활용했으면 좋겠어. 해가 저물면 어둠의 피조물들이 다시 몰려들지도 몰라."

  "예예, 알겠습니다, 전투 사령관님." 포리지가 묻은 숟가락을 경례하듯 들어보이는 이세야의 동작에 아마디스가 옆에서 코웃음 쳤다. "너는 같이 안 가?"

  "나는 못 가지." 개러헬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누나 말마따나 나는 전투 사령관이잖아? 원한다고 아무 전투에나 튀어나가 어둠의 피조물들을 때려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우리가 정말 이 포위를 깨부수는 날이 온다면 선봉에 나서겠지만...이런 소규모 작전에는, 뭐, 누나가 대장이라고."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그의 남동생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두 눈 위로 언뜻 슬픈 기색이 비쳤다. "나는 알아, 누나. 누나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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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여성형 대명사 she를 '그녀'로 번역한 부분을 전부 '그'로 수정하였습니다. 오역 / 오타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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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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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숭고의 시대

 

  "준비 됐어?" 펠리세가 외쳤다. 그 회색 감시자의 목소리는 그의 황갈색 그리폰이 상승기류를 따라 빙글빙글 날아오르는 바람에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

  "준비 됐어!" 이세야는 마주 소리쳤다. 그는 바람에 날려 들어온 머리칼을 입에서 뱉어낸 뒤 레바스에게 펠리세 뒤를 따라 날도록 신호했다. 도시의 모닥불에서 피어오른 재가 겨울 바람에 불규칙하게 팔랑거리다가 눈송이와 어울리지 않는 조화를 이루며 뺨 위를 스쳐갔다.

  하늘을 나는 감시자와 그리폰들 아래 성벽과 불타는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인 호스버그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바리케이드 너머 투석기와 노포의 사정거리 언저리에선 폭풍우 치는 바닷물결 같은 어둠의 피조물 무리가 몰아치다가 밀려나곤 했다.

  7년에 거친 공성전은 거의 소진 상태였다. 회색 감시자의 지도 하에 안더펠스인들은 수 년간 주기적으로 어둠의 피조물들을 몰아냈고, 때때로는 환상에 불과한 평화가 몇 달씩 이어질만큼 무리를 흐트러놓기도 했다. 하지만 대재앙은 언제나 새로운 공포를 이끌고 돌아왔고, 조금씩 뒤로 밀려난 안더펠스인들은 안전을 찾아 성벽과 무기와 역청 바른 나무로 쌓은 불타는 바리케이드 안쪽으로 물러났다.

  회색 감시자가 아니었다면 그 도시는 애저녁에 무너졌을 터였다. 물론 때때로 주어지는 몇 달의 휴식은 호스버그의 농부들이 도시 근처의 메마른 땅에서 부족한 수확이나마 거두고, 사냥꾼들이 숲에서 겨우 살아남은 깡마르고 겁에 질린 사슴따위를 잡아올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것만으로 도시를 온전히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호스버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감시자와 그들의 그리폰들이 덜 곤궁한 이웃 도시에서 물자를 지원받아 가져다준 덕분이었다.

  지금 이세야가 맡은 임무도 그런 보급 임무 중 하나였다. 안티바 시티 출신 마법사 칼린이 레바스의 승객용 안장 뒷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디스는 아마 개러헬과 함께 도시 다른 편에 있을 것이었다. 지난 수 년간 네 사람은 수없이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잃어왔지만 운이 따른 건지 능력 덕인지 그들만큼은 어떻게든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들은 오늘 호스버그 서쪽 편에 구호물자가 떨어질 수 있도록 어둠의 피조물들을 바리케이드 동쪽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맡았다.

  당연하게도, 유인을 담당하는 쪽이 물자 전달 팀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았다. 익히 알려진 바, 어둠의 피조물에게는 전략이라는 것을 짤만한 복잡한 사고 능력이 없었다. 이세야는 대재앙과 싸우는 지난 몇 년 간 딱 두 번 높은 지능을 보이는 것 같은 에미서리를 마주한 적이 있었지만, 감시자들은 그런 존재를 확인할 때마다 신속하게 우선적으로 처리하곤 했다.

  악마의 군주가 직접 지휘하는 게 아닌 이상, 마땅히 이끌어줄 능력있는 지휘관이 없는 대부분의 어둠의 피조물은 맹렬하게 달려드는 짐승 떼나 다름 없었다. 놈들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약간 낮게 비행하면서 화염구를 한두 개 던져주거나 화살 한 무더기를 날리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주의를 끌기엔 충분했다.

  유인에서 살아 도망치는 것, 어려운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비행고도를 높였다간 어둠의 피조물들이 금방 흥미를 잃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너무 낮게 날았다간 오우거가 던진 바위에 맞아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젠록이나 헐록 따위가 조악한 검은 활로 쏘아댄 눈먼 화살에 맞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둠의 피조물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불길 근처에서 낮게 나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위험했다. 연기나 불빛은 그리폰의 시야를 흐려놓을 수 있었고, 불길이 만들어낸 뜨거운 공기의 소용돌이는 비행을 흐트러뜨려 강제로 바닥에 내리게 만들 수도 있었기에 - 그리고 동료들과 동떨어진 곳에 착륙한다는 건 그 자체로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굳건하게 버텨낼 수만 있다면 제법 규모 있는 부대를 무너뜨리고 수성중인 호스버그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그만하면 충분히 도박을 걸어볼만 했다.

  앞 쪽에서 펠리세의 그리폰이 암갈색 날개를 접고 들쭉날쭉하게 솟아있는 어둠의 피조물 무리 쪽으로 하강했다. 놈들은 자철석에 끌리는 철가루처럼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엉성한 검날을 공중에다 휘둘러대며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젠록과 헐록들의 행동은 마치 그렇게 하다보면 어떻게든 펠리세와 그의 그리폰 사이 40 피트의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만 같았다.

  그리폰은 30 피트 떨어진 높이에서 고도를 유지하며 놈들 위를 스치고 날아가 불타는 바리케이드와 요새로부터 무리를 끌어냈다. 펠리세와 동승한 회색 감시자 조락이 쏟아내린 하얀 깃이 달린 화살무더기는 울부짖는 헐록들로부터 새로운 경지의 분노를 일으켰다. 죽은 눈을 한 괴물들은 짜증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동료의 육신을 찢어발기기도 했으나, 대부분 감시자들을 쫓아 달려왔다.

  "우리도 가자." 이세야는 칼린에게 말한 뒤 레바스에게 펠리세를 따르도록 신호했다. 시야 끄트머리에서 마법사가 끄덕이는 게 눈에 들어왔고, 하강하는 그의 정신은 오직 어둠의 피조물에게 쏠려있었다.

  레바스가 최대한 낮게 날며 무리 위로 미끌어지자 가까워진 거리에 놈들의 차갑고 거친 타락의 냄새가 이세야에게 풍겨왔고, 곧이어 칼린이 뒤편에서 울부짖는 무리를 향해 영혼 화살을 날려보냈다. 워낙 뭉쳐있어서 위력이 강한 주문을 쓴다면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화염구나 폭풍우 마법을 썼다간 놈들이 흩어질 터였고, 놈들이 서로를 타고 기어오르지만 않는다면 되도록 한 무리를 이루게 두는 편이 나았다.

  앞쪽에선 세 번째 그리폰 팀이 아래로 향하며 펠리세와 이세야가 뒤따르도록 경로를 뚫고 있었다. 그리폰이 어둠의 피조물 위를 지나갈 때 위에 있던 기수가 괴성을 내지르는 헐록들 위로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뒤집어 털어냈다. 유리병들이 챙그랑거리며 줄줄이 쏟아져내렸고, 어슴프레한 불빛 아래 독에 물든 싸락눈처럼 반짝거렸다.

  병 안에는 불투명한 우윳빛 액체가 담겨져있었고, 어둠의 피조물 무리 사이에서 깨진 유리병 사이로 액체가 기화하자 탁하고 두터운 안개가 피어올랐다. 연금술이 빚어낸 안개에 어둠의 피조물들이 어지러워하며 비틀거렸다. 커다란 뿔이 달린 오우거조차도 안개에 휩싸이자 고통에 찬 울음을 내질렀다. 헐록과 젠록 무리가 비틀거리며 서로에게 부딪히고 속이 뒤집히는 지 신음을 내뱉는 모습에 회색 감시자들은 준비한 마법과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조락, 펠리세, 그리고 유리병이 담긴 주머니를 털어낸 다른 궁수까지 모두들 가진 화살이란 화살은 전부 동원했고, 어둠의 피조물 위로 화살비가 단죄하듯 쏟아졌다. 바늘꽂이 모양이 된 오우거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지며 헐록 두 마리를 깔아뭉갰다. 죽은 오우거 밑에서 비져나온 팔다리가 퍼덕거리며 버둥대는 모습이 꼭 죽어가는 거미 같았다.

  쓰러진 오우거 옆에서 주문을 외기 위해 입을 연 헐록 에미서리의 목구멍으로 한 감시자가 쏜 화살이 꽂혀들며 그 기형적인 혀를 뒤에 선 헐록의 가슴팍에 꽂아버렸다. 에미서리는 화살에 꽂힌 채 끔찍한 휘파람처럼 들리는 비명을 질러댔지만 두 발의 화살이 더 날아들자 이내 조용해졌다.

  다른 어둠의 피조물들은 어둠과 안개에 휩싸여 그 안에서 죽어갔다. 즉사하지 않은 놈들 역시 쓰러진 몸 위로 밟고 지나가는 동족들의 발길 아래 금세 형체를 알 수 없는 꼴이 되었다.

  이세야는 쉿쉿거리는 비명소리로부터 귀를 닫았다. 어둠의 피조물들은 이길 때나 죽을 때나 똑같은 소리를 냈다. 어느 쪽이든 결국에는 불쾌하게 들리는 으르렁거림과 그륵거리는 소리의 불협화음일 뿐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칼린은 이미 자신을 온전히 영계에 열어젖힌 상태였다. 그 마법사를 휘감은 에너지의 소용돌이 아우라가 어찌나 강력했는지 일반 사람의 눈에도 그 반짝임이 보일 정도였다. 아마 위협을 감지할만한 상황이었다면 어둠의 피조물조차도 그 위력에 압도됐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안개 속에서 비틀거리거나 무리를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세 번째 감시자 마법사가 변두리 쪽으로 날려보내는 화염구에 맞아 기괴하게 뒤틀린 몸이 불타는 사이 괴로워하는 것 뿐이었다. 칼린의 주위로 전류가 형성되며 그 마법사의 머리칼이 쭈볏 치솟았다. 곧이어 사이로 춤추듯 일렁이던 불꽃이 영계와의 강력한 연결을 따라 광채를 뿜어대며 채찍처럼 내리꽂혔다.

  이세야는 레바스의 고삐를 느슨히 풀었다. 그리폰은 닥쳐올 폭풍으로부터 그를 안전하게 인도할 것이다. 짐승의 목을 가볍게 두들겨 조종을 맡기겠다는 신호를 보낸 뒤, 엘프는 스스로를 영계와 접촉하여 주문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겨울 공기가 유달리 차갑게 느껴졌다. 안더펠스의 부드러운 눈송이가 공기 중에서 순식간에 결정을 이루며 짤랑거리는 작은 종 모양으로 가죽장갑 위를 훑어내렸다. 주위로 몰아치는 회오리 바람에 레바스 역시 이리저리 휩쓸렸다. 그리폰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기에 최대한 움직임을 조절하며 버텼지만, 이세야는 가장 위험한 고비가 곧 닥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아래 위치한 어둠의 피조물 위로 주문을 쏟아냈다. 웅웅거리는 눈폭풍이 어둠의 피조물 무리를 휩쓸었다. 초자연적인 냉기가 처음 쓸고 지나간 자리 아래 부상 입은 헐록의 피가 까끌거리는 검은 얼음덩이로 얼어붙었고 젠록의 관절 마디가 수액으로 가득찬 나무처럼 터지는 가운데,  칼린이 겨울 폭풍 위로 자신의 주문을 이끌었다.

  전류가 소용돌이치며 어둠의 피조물들을 휩쓸었고, 번쩍이는 아치형 하얀 빛무리가 땅 위로 퍼져나가며 놈들을 베어냈다. 이세야는 번개에 마비된 헐록 무리에게 흘끗 시선을 던졌고, 화살집 꼴이 된 놈들이 눈보라 속에 비정상적인 형태로 몸을 치켜세우고 굳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류가 흩어지자 시체가 된 놈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쓰러졌다.

  레바스를 자신의 기수가 주문으로 불러낸 폭풍을 이겨내고 그들을 지나쳐 높이 높이 치솟아 전장을 뒤로 했다. 이세야는 그제야 다시 숨을 내쉬었고, 얼어붙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풀어줬다. 칼린이 영계와의 연결을 끊자 그 주위를 감싸고 있던 아우라도 사라졌다.

  완벽한 작전이었다. 한 명의 기수도 잃지 않았다. 심각하게 다친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공격은 충분히 어둠의 피조물 군대에 타격을 입혔고, 지금쯤 도시 저 편에서는 토라덴 국왕의 병사들이 보급받은 소금, 육포, 보릿자루를 주워다가 호스버그의 기뻐하는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을 터였다.

  온전한 승리였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몇 주, 혹은 며칠 안에라도, 그들이 이 밤에 죽인 어둠의 피조물의 두 배가 다시 자리를 메꿀 것이다. 악마의 군주의 부대는 끝이 없었다. 한꺼번에 몰아넣고 몰살시키는 감시자들의 전술은 셀 수 없으리만치 많은 성공을 거두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어둠의 피조물들을 끌어내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지만, 그건 전부 놈들은 도무지 실패에서 배울 줄 모르고 배울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병사들을 공급해냈다.

  대재앙은 악마의 군주가 쓰러지지 않는 한 이어진다. 모두들 그걸 알고 있었다. 놈이 살아있는 한, 어둠의 피조물은 계속해서 올 것이다.

  "놈들이 여기 올 수 없지 않는 한." 이세야는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칼린이 되물었다.

  이세야는 안장에서 살짝 몸을 돌려 어깨 너머로 중년의 마법사를 돌아봤다. 마법의 기운이 사라진 칼린의 머리칼은 다시 평소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멀리서 일렁이는 호스버그의 불빛 아래 그 머리칼은 원래의 흑갈색보다는 검정색에 가깝게 보였다. 어둠 속에 가린 회색 눈은 눈구멍 위로 드리운 깊은 그림자 속에서 잠깐씩 반짝였다.

  "어둠의 피조물 말이야." 그가 대답했다. "오늘은 잘 해냈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잖아. 수천을 죽인다 해도 아무 차이도 없다고. 언제나 더 몰려올 거니까. 악마의 군주가 쓰러지기 전까진 계속해서 더 오겠지."

  "그래서?"

  "우리가 그 증원군을 끊어버리면 어떨까? 놈들이 호스버그까지 이동해오는 지하대로가 어디 있든 간에 그걸 막아버린다면? 그 다음에 도시 근처의 어둠의 피조물을 전멸시킨다면, 좀 다를 수도 있어. 그러면 이 수성전도 끝날 수 있어."

  칼린은 회의적인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그걸 어떻게 하겠다고? 지하대로 입구는 수없이 많아. 오래된 드워프 통로 뿐 아니라 땅에 있는 틈새나 지진, 침식으로 생긴 균열 같은 것도, 혹은 어둠의 피조물들이 직접 파낸 곳도 있겠지. 누구도 어둠의 피조물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지 못하고, 설사 놈들이 어딜 이용하는지 알아낸다 해도 고작 한 군데를 막아봤자 놈들은 다른 곳을 이용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이세야가 받아쳤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아무도 시도해보진 않았잖아.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리기만 했지. 내 말은, 적어도 시도라도 해보자는 거야. 우리가 해야하는 거라곤 이 어둠의 피조물들이 어디를 통해 지하로 돌아가는지 추적하는 것 뿐이라고."

  "그걸 어떻게 하자고 할 건데? 누구도 그런 임무를 맡아 추적자로 나서려 하지 않을 거야. 혹여 우리가 헐록 한 마리를 무리에서 구별지을 수 있다 한들, 그리고 그 헐록이 어찌어찌 지하대로로 되돌아 간다 쳐도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쩌면 여름의 태양 아래서 낮시간동안 그렇게 행동하는 놈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겨울에는 거의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 어쨌든 그 추적자가 길에 들어서는 순간 금방 발각되어 갈기갈기 찢어질 거야."

  "나는 추적자를 이용하자고 한 적 없어." 이세야가 말했다. "난 당신 힘을 이용할 거니까."

  "나를? 흥미로운 생각이군." 칼린은 가짜웃음임이 명백히 드러나게 입꼬리를 위로 당겨올렸다. "내가 무슨 수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당신은 혈마법사잖아." 이세야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그들은 허공 위에 있었고, 겨울 공기에 그의 말은 쉽게 흩어졌지만, 칼린은 입모양으로 그 말을 읽을 수 있었다. 호스버그의 불길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대재앙에 따라붙은 폭풍구름 사이로 달빛조차 미약했으나 이세야는 어둠에 가까운 시야 속에서도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을 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추궁이었다. 혈마법 - 말레피카룸이라 불리는 - 주술은 고대로부터 테다스 전역에서 금지된 영역이었다. 그저 익히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중죄였고, 처벌 또한 단순히 사형으로 그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세야는 칼린과 어깨를 맞대고 싸워온 지 수년 째였다. 그의 목숨을 구해준 일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대재앙의 도가니 속에서 다져진 둘 사이의 신뢰가 있었기에, 그는 이세야 자신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 비밀을 진즉 밝힐 수 있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너무나 작게 되묻는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 자칫 들리지 않을 뻔 했다.

  "나 역시 마법사잖아, 칼린. 난 당신이 영계와 접촉하지 않고 주문을 외우는 걸 볼 수 있다고." 실제로 그 모습을 본 건 몇 번 안되었고, 대개 절박한 곤경 속에서 이미 여기저기 상처입은 상태일 때였기에 피를 매개로 마법을 쓰는 게 그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법도 했지만...그는 눈치채고 말았다. 그의 마법에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이세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가능하겠어? 놈들 중 하나의...안으로 어떻게든 침투해서, 지하대로까지 뒤를 밟는다는 게?"

  그는 잠시 뜸을 들였지만 결국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 언제 실행하길 원하지?"

  "지금. 바로 오늘 밤에. 우리가 뭘 하는지 아무도 볼 수 없을 때. 사람들에겐 오늘 전투에서 부상입은 놈 하나가 괴상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추적해서 지하대로까지 따라갔다고 설명하면 돼."

  "어둠의 피조물 하나가 필요해."

  "구해올게." 이세야는 레바스의 고삐를 다시 붙잡았다. 털로 덮인 귓가로 몸을 기울인 그는 속도를 내기 위해 체중을 앞으로 실으며 속삭였다. "사냥하자."

  쉿쉿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리폰은 기꺼이 북쪽을 향했고, 천을 오가는 바늘처럼 구름 사이로 이리저리 헤치며 고도를 낮췄다. 그는 고개 숙여 대재앙으로 황폐해진 대지 위에서 어둠의 피조물의 간헐적인 음직임이 있는지 추적했다.

  그리폰의 시력은 탑승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이세야는 날개를 빠르게 퍼덕이며 속도를 높이는 레바스의 움직임에 그가 먹잇감을 포착했다는 걸 감지했다. 몇 초 뒤 그는 날개를 접으며 부드럽게, 눈에 잡히지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작은 규모의 젠록 무리가 그리폰의 날개 그림자 아래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이미 도망치긴 늦은 뒤였다. 레바스는 발톱을 둥글게 말고 가장 후미에 있는 젠록 무리를 덮쳤고, 놈들의 목을 부러뜨려 단숨에 즉사시켰다. 쓰러진 젠록들의 파들거리는 손이 떨어진 검에 채 닿기도 전에 그 그리폰은 이미 다음 놈들을 덮치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본능을 지녔고 철저한 훈련을 거쳐왔다. 레바스는 젠록들을 습격할 때 절대 부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둠의 피조물의 혈액은 타락에 면역이 없는 모든 생물체에게 치명적인 독이었고, 회색 감시자들은 입단의식을 거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지만 그리폰들까지 그렇진 못했다. 그리폰이 어둠의 피조물을 물어뜯었다간 고통 속에 죽고 마는 것이다.

  다행히 레바스의 발톱은 충분히 쓸만했고, 1분도 채 안 돼서 그는 그들이 마주친 일곱 마리 젠록 중 여섯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하나 남은 녀석은 이세야가 은은한 마력 구체 속에 속박해둔 놈이었다. 그의 주문 덕에놈은 레바스의 발톱으로부터 무사히 보호받으며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주문의 유백색 결계 너머로 끔찍하게 생긴 누런빛 눈알이 혼란스런 빛을 띄고 그를 올려다 봤다.

  "이제 쉬어." 엘프는 레바스에게 속삭인 뒤 고삐를 여전히 붙든 채 안장에서 내려섰다. 그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 야수를 갇혀있는 젠록으로부터 떨어트렸다. 붙들린 어둠의 피조물에 대한 증오와 짜증으로 끽끽거리며 아주 잠시 저항하던 그리폰은 이세야가 고삐를 놓지 않자 툴툴거리며 기세를 꺾고 그의 인도를 따랐다.

  레바스가 어둠의 피조물에게 곧장 달려들지 않을 만한 거리를 확보한 이세야는 칼린을 돌아봤다. "이 정도면 되겠어?"

  "좋아." 마법사는 단검을 든 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손바닥 위로 얕은 자상을 냈고, 붙들려 있는 젠록의 발 한 치 앞에 핏방울을 떨궜다. 그 생물체의 흉측하고 밋밋한 얼굴에서 어떤 감정을 읽어내기란 불가능했지만, 이세야는 어쩐지 속이 불편해지는 느낌이었다. 허세 부리듯 나섰던 조금 전과 달리 눈 앞에서 직접 혈마법이 벌어지는 걸 보는 건 어딘가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닥칠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바늘로 찌른 거품방울처럼 마력장이 흩어졌다. 젠록은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레바스는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며 당장 달려들고 싶어했지만 이세야의 웅얼거리는 명령에 자신을 억제했다. 그리폰의 분노에 찬 앞발톱이 바위 투성이 흙바닥을 움푹 패이게 그러쥐었다. 목구멍 안에서부터 짜증섞인 울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제자리를 지켰다.

  칼린은 어둠의 피조물이 움직이자마자 손을 번쩍 들었다. 젠록은 그대로 굳어섰고, 의문에 찬 으르렁거림이 입술 없는 입가를 따라 새어나왔다. 이어 놈은 물기어린 노란 눈을 감았다가 불쾌한 꿈에서 깨어나듯 고개를 퍼드득 흔든 뒤, 그들에게 등을 돌려 바위 투성이 황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놈은 지하대로로 돌아갈 거야." 인간이 말했다. "지금 따라가면 놈들이 이용하는 입구를 찾을 수 있어."

  "완벽하군." 이세야는 안장에 다시 올라탄 뒤 장갑낀 손을 내밀어 칼린을 끌어올렸다. 그는 레바스에게 다시 날아오르도록 신호했고, 그리폰은 기꺼이 명령을 따랐다. "어느 쪽이야?"

  "지금은 일단 북쪽."

  그들은 금세 홀로 동떨어진 젠록을 따라잡았다.  일반적인 놈들의 특성에 반하여 한 가지 목적만을 품고 황량한 대지를 따라 움직이는 걸음은 재빨랐지만 하늘에서 날아오는 추적자를 따돌릴 정도는 아니었다. 레바스는 느릿한 속도로 어둠의 피조물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날았다. 이렇게 느린 속도의 목표를 따라가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목표를 쫒으며 비행한 지도 잠시, 칼린은 불쑥 입을 열었다. "내 비밀을 지켜줄 셈인가?"

  "당연하지." 이세야는 젠록을 눈으로 쫓으며 대답했다. 수 년간 대재앙과 맞서 싸워왔지만,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감시자의 의지 아래 온전히 속박된 어둠의 피조물이라니. 그는 등 뒤의 마법사를 향해 돌아봤다. "난 당신이 내게 그걸 가르쳐주길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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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여성형 대명사 she를 '그녀'로 번역한 부분을 전부 '그'로 수정하였습니다. 오역 / 오타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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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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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용의 시대

 

  "그리폰들은 어떻게 된 거죠?" 발리야가 물었다.

  회색 감시자 행정관이 그 질문에 대답하는 데엔 잠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엄밀히 따지자면 늙은이는 아니었지만, 쉽게 그렇게 보일만한 인상이었다. 점잖은 태도도 그랬고, 반쯤 벗겨진 머리로 종종 생각에 잠긴 듯 꿈꾸는 표정을 짓기 때문이기도 했다. 캐로넬은 간혹 방문객들이 행정관을 평온화된 자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발리야는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이든 어쨌든 간에 정말 그랬을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회색 감시자 행정관은 분명 그들의 몽롱한 태도를 닮아 있었다.

  그가 눈을 꿈뻑이며 돌어봤다. "그리폰?"

  "네 번째 대재앙 이후에 말이에요. 그들은 전부 사라졌잖아요."

  "그랬지." 행정관이 서가를 따라 걷자 그림자와 어슴프레한 회색빛이 그의 위를 번갈아 스쳤다. 발리야는 느린 걸음으로 그를 따라 걸으며 행정관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담은 가방을 고쳐멨다. 대부분의 서신은 수석 감시자에게 온 것이었지만 적어도 요 몇 년간 와이스하웁트로 오는 일반적인 서신을 관리하는 건 행정관의 일이었다. 수석 감시자의 관심은 좀 더 중요한 일에 쏠려 있었으니.

  신병들은 매일 번갈아가며 행정관을 보조하는 업무를 맡았다. 원래대로라면 막 입단식을 거친 신입 회색 감시자에게 주어질 일이었으나, 호스버그 마법사들 역시 그 임무를 할당받았다.

  발리야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조용한 곳에서 가볍게 일하는 하루를 보장하는 업무이기도 했고, 머릿 속을 혼란스럽게 하는 온갖 질문들을 쏟아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행정관의 온화한 성품 덕에 그들의 계급차는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그는 거의 대등한 기분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건데요?"

  "모두 죽었지."

  "하지만 어떻게요?"

  행정관은 회색빛 눈썹을 치켜올렸다. 유달리 길게 자란 눈썹이 속눈썹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다. "자네들 모두 네 번째 대재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을 텐데."

  발리야는 그의 말이 질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다지 질문처럼 들리진 않았고, 회색 감시자 행정관이 지난 한 달간 그가 바로 자신의 작업을 돕기 위해 도서관을 들쑤시고 다닌 걸 모를 리도 없을 테지만, 그저 사실을 지적하려 그렇게 말한 것 같진 않았다. "네,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회색 갈기 같은 숱없는 머리가 로브 어깨자락을 쓸었다. "그러니 전장에서 우리에게 그만한 영광을 선사했던 그 짐승들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겠지. 어째서 그들로 인해 이룰 수 있던 마법 같은 기적이 우리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건지."

  "예."

  행정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에 잠긴 듯한 미소로 그의 얼굴이 주름졌다. "모두들 그걸 궁금해하지. 나도 그랬고. 하지만 그리폰들은 사라졌단다, 얘야. 그들은 대재앙 속에서 죽고 말았어. 너무 많은 수를 전투에서 잃는 바람에 더 이상 개체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단다. 점차 약해져갔고. 결국 알 속에서 부화하지 못하는 새끼들이 많아지는 바람에, 그렇게 끝나고 만 거지. 어마어마한 희생이었어. 어마어마한 비탄과."

  어마어마한 거짓말이기도 하고, 발리야는 생각했다.

  물론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진 않았다. 그에겐 회색 감시자 행정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없었다. 특별히 그런 느낌이 묻어나지도 않았고, 대재앙의 끝무렵에 그리폰이 멸종한 건 엄연히 사실이기도 했으니. 한 해 한 해 전쟁이 이어질수록 그리폰들이 번식하고 둥지를 튼다고 알려진 안더펠스의 대지 또한 황폐해져 갔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대재앙 중에 모두 죽어버렸을지도.

  하지만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비집고 나오는 한 줄기 의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행정관은 그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쉰 뒤 사무실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안은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종이뭉치가 산을 이루고 있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두터운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아마도 방문객을 위한 보조 의자 같은 게 놓여 있던 것 같지만 그 또한 책상보다 높이 쌓인 종이뭉치에 파묻혀 있었다. 그저 나무로 조각한 등받이만이 종이더미 사이로 빼꼼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행정관은 느릿하게 움직여 서재 안에 유일한 사무용 의자에 끙 하는 신음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오래된 가죽의자는 옆면이 튿어져 있었고, 바닥과 등받이 부분은 나이 든 감시자의 자세에 맞춰 움푹 패여 있었다. 행정관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발리야에게 손짓했다. "오늘은 어떤 편지가 도착했누?"

  "아..." 발리야는 허둥대며 가방을 내려놓고 두루마리와 봉투들을 뒤적였다. "이건 비질 요새에서 온 겁니다. 하나는 데너림에서 왔는데 죄송하지만 이게 백작의 인장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자마랑, 스탁헤이븐에서도..."

  "남쪽에서 온 건? 올레이라든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는 남은 뭉치에서 인장과 봉인을 확인했다. "겉으로 보기엔 없어 보이네요, 적어도 제가 알아볼만한 건요. 혹시 제가 놓친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음." 행정관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감은 눈으로 의자에 몸을 깊이 묻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자네가 맞을 거야. 그냥 이 주책맞은 늙은이가 왜 감시자 사령관 클라렐이 요새는 연락을 안 하나 궁금해하던 참이라 그래...그냥 당장 필요한 게 없어서일 텐데 말이야. 사람들이란 필요한 게 있을 때나 연락을 하지 잘 지낼 때는 감감무소식인 법이거든. 혹은 뭔가 꿍꿍이가 있을 때도 그렇겠지만. 어느 쪽이든, 대수로울 건 없지. 비질 요새에선 뭐라고 하누?"

  발리야는 밀랍 인장을 손톱으로 벗겨낸 뒤 접혀있던 봉투를 펼쳤다. 그는 처음 몇 줄을 눈으로 흝은 뒤 고개를 저으며 멋쩍은 미소를 던졌다. 행정관의 말이 맞았다. "새 감시자 사령관께서 최근에 있던...어, 악령에 씌인 나무와의 전투에 대한 보충을 위해 리륨과 무기, 갑옷 몇 구를 공손하게 요청해왔습니다. 불에 탔다고 하는군요. 자세한 내역은 여기 적혀있습니다."

  "그러셨겠지." 행정관은 코웃음쳤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그리고 데너림의 수상쩍은 백작에게서 온 편지는?"

  그 또한 원조 요청의 내용이었다. 백작부인이 술병을 가지러 저장고에 내려갔다가 젠록 한 마리를 본 것 같다고 주장했고, 백작은 분명 그의 와인저장고에서 이어진 지하대로에서 침입했을 어둠의 피조물을 해치우기 위해 회색 감시자 한 무리를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목격 당시 백작이나 백작부인이 얼마나 취해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나머지 편지들은 그보단 덜 사소했지만 어쨌든 내용만큼은 이것저것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마법사와 템플러 양쪽 진영 모두 자신들 편에서 싸워달라 요청해왔고, 템플러도 마법사도 모두 피난처를 찾고 있었다. 안더펠스 쪽 정찰요원들은 어둠의 피조물을 목격했다는 소식과 그들의 활동이 특정한 양상을 띠는 것 같다는 보고를 전해왔다. 드워프들도 지하대로의 어둠의 피조물 활동에 대해 비슷한 소식을 전해왔고, 그와 함께 최근에 콜링에 응하러 향했던 감시자들의 도착과 출발, 죽음에 - 추정이든 확인된 것이든 - 대한 소식을 보내왔다.

  발리야가 오자마로부터 온 이름들을 전부 읽었을 때에야 행정관은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됐네." 그는 서재를 나가도 된다는 뜻으로 손짓했다. "충분해. 가보게나. 다른 할 일도 있지 않나. 나머지 편지는 두고 가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한 뒤, 젊은 엘프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다른 호스버그 마법사들과 함께 조사에 합류하기 위해 개러헬의 기록이 모아진 작은 방으로 향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졌는지 동료들은 이미 점심을 먹으러 간 후였다. 도서관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곤 그 여자 템플러, 레이마스 뿐이었고 그는 책상 위에 덮여진 책 하나를 올려둔 채 홀로 앉아있었다.

  발리야는 그 여자가 덮힌 책을 보며 뭘 하고 있든 간에 기꺼이 내버려두고 떠나고 싶었지만, 레이마스가 조용한 도서관 안을 가로질러 그를 불렀다. "거기. 발리야였죠."

  엘프는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어쩔 수가 없었다. 호스버스 마탑에서 수 년간 생활한 덕에 그 반사작용은 이미 각인돼 있는 거나 다름 없었다. 의식적익 노력으로 긴장을 풀고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지워낸 그는 겨우 그 중년 여성을 향해 돌아섰다. "네?"

  "이 쪽에 잠시 앉았다 가지 않겠습니까?"

  발리야는 다시 굳어졌다. 굳이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고,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여긴 마탑이 아니다. 템플러는 와이스하웁트에서 어떤 권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오랜 습관 같은 공포는 어쩔 수 없었다. "왜죠?"

  "얘기 좀 하자고요. 정말 얘기만요." 사색으로 그늘진 주름이 습관처럼 배어있는 여자의 길고 야윈 얼굴 위로, 어색한 느낌의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한 와중에도 진솔하게 느껴지는 요청에, 발리야는 머뭇거리며 책상 맞은 편 의자로 다가갔다. 바로 맞은 편 자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거리를 두고 싶었으니. 맞은 편 하나 옆 자리 의자에 발리야는 골라 앉았다. "뭐에 대해서요?"

  "당신은 우리를 믿지 않는군요." 레이마스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리며 읽지 않은 책의 표지를 덮었다. 커다란 손은 굵은 손가락과 굳은살 박힌 손바닥 덕에 남자 손처럼 보였다. 손등 위의 오래된 흉터가 군데군데 하얀색, 보라색 선을 이루며 그물 같은 모양을 그렸다. 군인의 손이었다. 템플러의 손. "당신네 마법사들 중 우리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지만...당신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를 경계하는 것 같군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레이마스의 눈빛 너머로, 오랫동안 묵혀둔 낡은 상처 같은 게 흔들렸다. "우리는 이곳에 당신들을 잡으러 온 게 아닙니다. 템플러들이 전부 마법사들을 짓밟는 걸 즐기기 위해 그 길을 택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데요?" 발리야는 짜증을 감추지 않지 않고 맞받아쳤다. 일부러 소리나게 의자를 밀쳐내며 일어나자 돌바닥 긁히는 소리가 도서관 안을 울렸다.

  "온 종일 탑 안에서 두렴과 좌절감에 빠진 마법사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기로 결심할만한 더 나은 이유가 있긴 한가요?"

  "있기도 하죠. 저는 그랬으니까요." 템플러는 올이 가는 흑갈색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시선을 내려 자신이 읽고 있지 않던 책 위로 떨구었다. 발리야는 그게 기도서라는 걸 깨달았다. 설교와 창조주께 바치는 찬송집. 책등의 뻣뻣함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책을 읽은 사람은 얼마 없는 것 같았다. "제가 기사단에 들어간 건 당신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 참 고결한 마음씨로군요. 왜인지도 여쭤봐드릴까요?"

  "그러고 싶으시다면요. 저희 아버지는 마법사였습니다. 그리 대단한 능력은 없던 것 같지만요. 그분은 수련 같은 건 하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을 숨기는데 최선을 다하며 사셨습니다. 자식들 중 누구에게도 그 능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죠. 과연 어머니께는 말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마 어머니는 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 주변에선 종종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했으니까요. 닭이 품고 있던 달걀들이 밤 사이 얼어붙은 일이 있었죠. 횃불이 푸른색, 혹은 녹색으로 불타오르기도 했고, 이따금 그 불꽃 안에서 작은 얼굴이 보이거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바깥 사람들에게 해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구든 혹시 아는 이가 있었다면 - 물론 몇 명은 분명 알고 있었겠지만 - 그들 역시 우리의 비밀을 지켜줬습니다."

  "그리고는요?" 발리야가 느끼던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대신 묵직한 예감이 그 자리를 메꿨다. 그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고, 동시에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기도 했다.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은 언제나 훈련받지 않은 마법사들이 어떤 식으로 악마에게 홀려 타락의 괴물이 되는지 경고하는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레이마스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비극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굳이 달가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결국 말을 해버렸고, 템플러들이 찾아왔습니다." 레이마스가 말했다.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알게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고요. 제 아버지는 그리 강인한 분이 못 되었습니다. 용기란 걸 가져본 적이 없는 분이었죠. 템플러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주머니 가득 돌멩이를 채워넣고 호수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엄지손가락끼리 단단히 얽혀있었고, 손가락 마디가 억누른 감정 덕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윽고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펴서 책표지 위에 내려놓은 뒤, 손가락 사이에 놓인 제목을 내려다 봤다. "저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요. 저는 템플러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들이 차갑고 오만한 태도로 제 어머니를 심문한 일이나, 저와 형제들이 무슨 전염병 보균자라도 되는 양 마법 능력이 있는지 캐물어댄 일에 증오심을 느꼈죠. 수 년 간 저는 그 분노과 증오를 품고 살았습니다. 마주치는 누구에게든 싸움을 걸어대며, 화풀이 할 곳을 찾아가며 살아갔습니다. 언제부터 그게 달라졌는지, 왜였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어느 날, 저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저희 아버지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도록 하는 거라는 걸 깨달았고, 그러려면 그 안에서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게 진실되게 성직자의 길을 걸을 만한 신앙심은 없었습니다. 창조주에 대해선 털끝만치도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마법사들을 지킬 수 있는 건 템플러 뿐이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하는 건- 제대로 임무에 충실하기만 한다면요. 그리고 저는 그럴 생각이었고요."

  "그래서 떠나온 건가요?" 발리야는 나직하게 질문했다.

  "그래서 떠나온 겁니다." 레이마스는 마침내 그와 눈을 마주했다. 나이 든 여인의 유리 같은 두 눈이 반짝였다. 눈물 때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발리야는 알 수 없었다. 도서관의 희미한 회색빛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으니. "기사단이 그들의 본질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제게 이런 말을 해주는 이유가 뭐죠? 뭘 원하는 겁니까? 당신네 기사단에 대한 용서? 아니면 아버지 일에 대한?"

  레이마스는 짧게 웃어보였다. 그는 소매로 눈가를 훔쳐 거기 있었을지 모를 뭔가를 닦아냈고, 어느 새 다시 평소의 감성적이고 사색적인 태도로 돌아가 있었다. "만약 그래도 된다고 허락 해주신다면 굳이 거절하진 않겠지만, 그런 이유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그럼 뭐죠?"

  "템플러 기사단은 자신의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습니다. 분명 다시 바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지만...지금은 아닐 거고, 제가 그렇게 만들 수도 없겠죠." 레이마스는 설교집을 옆으로 밀어 두 사람 사이를 비워냈다. "하지만 회색 감시자는 여전히 시대를 아우르는 영웅입니다. 우리는 둘 다 이곳에 와버렸고, 이들과 합류하길 원하고 있죠. 제가 당신에게 이야기 나누자고 한 건 당신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당신이 화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저 밖의 무너져가는 세상으로부터 피난처가 필요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사명을 찾고 있고, 믿을 수 있는 동지를 찾고 있죠. 제가 말하고 싶던 건 그 뿐입니다."

  "그래요." 발리야는 그렇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그는 앉았던 의자를 다시 책상 안으로 밀어넣었다. "충분히 말하신 것 같군요."

  "잘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레이마스가 물었다.

  발리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 템플러를 읽힌 적 없는 기도문과 함께 남겨둔 채, 개러헬의 기록이 모여있는 방으로 돌아갔고, 읽고 있던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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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여성형 대명사 she를 '그녀'로 번역한 부분을 전부 '그'로 수정하였습니다. 오역 / 오타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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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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